[이영승의 붓을 따라] 자연인이 따로 없다
[이영승의 붓을 따라] 자연인이 따로 없다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20.02.0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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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연인(自然人)에 대한 방송프로가 인기를 끈다. 한 방송사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다른 방송사에서도 유사프로가 생겨나고 있다. 뉴스와 스포츠 중계 외에는 거의 TV를 보지 않는 나도 이 프로는 가끔 즐겨 본다. 첩첩산중에서 홀로 약초 등을 채취해 먹으로 고독을 극복해가는 초자연의 생활이 참으로 매혹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보다 자연인이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 연유가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대개가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실패 혹은 부부결별 등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난치병을 얻어 마지막으로 자연의 힘에 의해 병을 치유코자 입산한 사람도 있다.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이유는 입산 후 몸과 마음을 완치하여 현재 만족하게 살고 있다는 감동적인 결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나도 요즘 준 자연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과 같은 산속에서의 생활은 아니다.

첫눈 속에 태어난 백설 공주 외손녀가 어느덧 첫돌이 지났다. 딸이 1년간 휴직을 내어 키웠는데 복직을 하게 되었다. 직장 내에 유아원이 있는데 딸아이는 부부가 직원이라 외손녀가 1순위로 사내유아원 모집에 추첨되었다. 출근길에 아기를 맡겼다가 퇴근길에 데리고 나오면 된단다. 하지만 외손녀는 이제 막 첫돌을 지나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며,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를 염려한 딸아이가 아내에게 1년만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내도 이미 각오했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딸아이는 정부의 공기업 지방분산 정책으로 충남 태안에 살고 있다. 아내가 태안에 거주하면서 돌봐줄 입장이 되지 못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 늦은 차로 내려갔다가 금요일 늦게 올라온다. 주말이라 차가 워낙 막혀 일찍 출발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마을버스와 지하철 타는데 1시간 이상 걸리고, 고속버스 타는데도 2시간이 넘으니, 편도 3시간 반의 먼 거리다.

아이 돌보는 일도 벅찬데 오르내리는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토요일은 미혼인 아들집에 가서 청소와 세탁물을 교환해줘야 하고, 일요일은 내가 일주일간 먹을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장만해 냉장고에 채워야하니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 그야말로 일인삼역의 세 집 살림을 사는 셈이며, 마치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빈틈없는 일정이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우며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노라면 온 몸이 지친단다. 회사일이 바빠 딸아이 부부가 모두 9시 지나 퇴근하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하니 어찌 녹초가 되지 않겠는가. 재롱부리는 손주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지만 혈육이 아니면 천금을 준다 해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누누이 말했다.

아내가 처음 태안으로 내려가던 날 딸아이와 맺을 계약서를 작성해 내게 보여줬다. 모두 여섯 조항인데 월 보육료와 각자 수행할 가사 분담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서로 오해 없도록 하기위해 각자가 할 일을 분명히 해놓겠다는 의도 같았다. 보육료는 얼마를 받든 별 의미가 없다. 무슨 명목으로든 결국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줄 테니 말이다. 내가 한 조항을 추가한 후 2부를 작성 출력해주었다.

추가 조항은 ‘어떤 상황이라도 가슴에 상처가 될 말을 할 경우에는 처음 한번은 경고로 넘어가지만, 두 번째는 무조건 보따리를 싸서 올라온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젊은이들 자기 생각만 하지 부모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데 내 딸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손주 키워주며 겪는 고충과 갈등 얘기가 남의 일이 아닌 듯 새삼 걱정되기도 했다.

평소 지나치게 ‘의존형(依存型)’인 내가 혼자 제대로 살 수 있을까를 아내는 몹시 걱정했다. 거기에 대한 우려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8주째 접어들었는데 주어진 숙명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다보니 차츰 적응이 되어갔다. 솔직히 일주일치 먹을 음식을 모두 준비해 놓으니 차려먹기만 하면 된다. 밥이 싫증나면 라면도 가끔 끓여먹고, 어쩌다 한 번씩 혼자 외식도 한다. 혼밥을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될 수도 있는 인생, 나는 요즘 홀로서기를 제대로 연습하고 있는 셈이다.

혼자 사는 것이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잔소리를 듣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으니 편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면서도 아내로부터 늘 고생한다고 위로받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칭찬까지 받는다. 나는 요즘 산속의 생활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했던가? 그렇다. 나야말로 금년 한해는 결혼 후 처음으로 누려보는 대자유인이다. 그리고 동경하던 자연인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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