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백의 백두산 기행-4] 시인 백석이 양을 치던 마을은 그 어디쯤일까
[안영백의 백두산 기행-4] 시인 백석이 양을 치던 마을은 그 어디쯤일까
  • 안영백 뉴질랜드 네이쳐코리아 대표
  • 승인 2020.02.1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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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교민 안영백(제임스 안) 네이쳐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9월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기행문을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산줄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고, 심대한 자연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도로를 따라 뚫린 하늘은 맑았고, 산새들이 바람결을 따라 날아다녔다. 9월 중순이지만 가을의 빛이 흠뻑 물들어 있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는 배가 쉬 고파왔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개울가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다 싶으면 도로 옆에 주저앉아 쉬었다. 해가 짧아지면서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멀지 않은 곳에 밀영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해가 기울면 숲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검게 변해갔다. 숲속에서 냉기가 끼쳐왔다. 우리는 밀영의 숙영지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었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하루를 뒤돌아보았다.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숲에서 약초, 나물과 온갖 꽃향기가 끼쳐왔다. 신비로운 숲의 향기가 모닥불 주위를 감쌌다.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갔다.

그렇게 간백산, 곰산, 압록강, 백두산, 선오산에 퍼져 있는 크고 작은 밀영들을 거쳤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었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이 있었다. 특히 다섯 선녀가 놀았다는 선오산(仙五山) 밀영과 청봉(靑峰) 항일투쟁숙영지는 어떤 경우에도 유리한 위치에서 적들을 물리칠 수 있고, 숲이 울창하여 부대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작은 능선들이 뻗어 있어 어느 방향으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밀영의 넓은 부지에는 현대식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전국에서 답사를 오는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묵을 숙소, 회관과 사진관이며 지붕이 뾰족한 식당, 관리 건물들이 계곡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펜션 마을 같았다. 도로 모퉁이에 정성 들여 가꾼 꽃밭 위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물을 때마다 너무 성실하게 대답해 주는 강사들에게 미안해서 꽃 이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리명수폭포(鯉明水瀑布)

건창항일투쟁숙영지를 지나자 도로와 산세가 누긋해졌다. 완만하게 펼쳐지는 내리막 능선에 수풀이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덤불 속에서 뛰어나온 짐승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산허리의 옥수수밭 아랫길에서 수레와 마주쳤다. 중년의 농부가 황소의 고삐를 잡았고, 수레에는 곡식이 실려 있었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뒤따라왔다. 아이들은 수줍어하면서도 피하지는 않았다.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렇게 순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속세에 오염되지 않은 것은 공기뿐이 아니었다. 그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들도 깨끗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수풀 너머 언덕 위에는 이깔나무들이 곧게 서 있었고, 내가 걸어갈 길이 언덕 옆으로 해서 산 뒤편으로 구부러졌다. 언제나처럼 우리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서서 걷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눈앞이 탁 트이면서 꽤 넓은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는 화려한 정자가 서 있었고, 정자 아래까지는 난간이 쳐있었다. 난간 아래는 꽤 넓은 바위벽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바위벽을 바라보았다. 물길이 없는 바위벽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새하얀 물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리명수폭포(鯉明水瀑布)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내원이 우리를 맞았다. 정자에서는 연못과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간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천지에서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산줄기를 흐르고 흘러서 이곳 바위틈으로 솟아 나오는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주었다.

백두산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진 명승지 중의 하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끔은 높은 압력을 받아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며 수만 갈래로 흩뿌려져 물안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벼랑 꼭대기에 매달린 고드름과 고드름 밑에서 자란 얼음기둥, 그리고 주위의 나뭇가지에 끼는 하얀 성에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고 말했다. 나는 정자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벽을 더듬자 손바닥에 물이 솟아나는 감촉이 느껴졌고, 손바닥을 입에 대자 시원하고 달콤한 천지의 물맛이 되살아났다. 과연 백두산이었다.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천지의 물을 마시게 해주는, 천지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물맛이나마 보도록 마음을 쓰는 백두산이었다.

베개봉 전망대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뒤섞인 베개봉 능선에는 풍력발전기들이 서 있었다. 현대식 전망대에서는 시야가 확 트였다. 오른편으로 산봉우리와 산들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었고, 산 아래 오목한 분지에 아름다운 도시가 들어서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

시가지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정돈된 도로와 다리가 건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언덕배기에 붉은 기와를 얹은 하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소라색 지붕이 많은 중심부에는 군데군데 십여 층 남짓한 건물들이 툭 불거져 있었다. 붉은 지붕은 주택인 듯했고, 소라색 지붕과 건물은 병원이나 관공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건물들 사이로 뻗은 도로들은 승용차와 트럭들이 오갔다. 타원형 스타디움과 반원형 지붕을 얹은 체육관, 바닥이 파란 테니스장도 보였다.

깨끗한 주택단지, 현대식 체육관과 운동장, 규모가 있어 보이는 학교, 정연한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들이 하나로 어울려 도시를 조성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시가지를 둘러싼 아득한 산줄기 너머 어딘가에 시인(詩人) 백석(白石)이 양(羊)을 키우고 별을 헤아리며 여생을 보낸 마을이 있을 것 같았고, 홍범도(洪範圖)부대가 휴식을 취하고 전의(戰意)를 가다듬던 숙영지가 있을 것 같았다.

삼지연(三池淵)

삼지연은 백두고원 중턱의 원시림에 잠겨 있는 세 개의 자연호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산마루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커다란 산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는 약 백여 리라고 하는데 마치 백두산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맑고 잔잔한 호수에 백두산의 그림자가 비쳤다. 바람이 만든 물결에 산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높은 산의 그림자와 울창한 침엽수림이 비치는 맑은 호수의 풍경.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사색에 빠지게 하는 풍경이었다. 산과 호수의 조화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호수의 한쪽은 혁명기념공원과 맞붙어 있었다. 공원은 엄청나게 큰 규모였고, 사람들이 많았다. 꼭대기에 횃불을 밝힌 석조 혁명기념비와 커다란 금빛 동상이 나란히 서 있었다. 넓은 바닥은 일정한 크기의 석재(石材)로 마감되었고, 경치가 좋은 곳곳에 당시의 모습으로 조성된 항일유격대의 기념물들이 서 있었다.

비가 온 후여서 난간 아래까지 맑은 물이 찰랑찰랑 닿아 있었다. 강변에 줄지어 있는 키가 큰 나무들 위로 새 떼들이 날아갔다. 백두산을 올려다보자 그동안 걸었던 길들이 눈앞인 듯 떠올랐다.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갈 때 또 백두고원의 울창한 침엽수림의 좁고 험한 길을 걸을 때, 나는 그 길에 끝이 없는 줄 알았다. 아무리 걸어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길이었고, 뒤를 돌아보아도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줄 알고 걸어왔는데 나는 처음 떠난 곳에 서 있었다. 길이란, 끝이 없지도 않은 그리고 돌아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베개봉 호텔

베개봉 호텔로 돌아왔다. 정상을 향해 떠난 지 닷새 만이었다. 개선장군처럼 로비에 들어서는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한 사람들을 직원들은 박수로 맞았다. 각자의 방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안락한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을 때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멋있고 잘생긴 사람들인지 미처 몰랐다.

일행 모두와 안내원들은 넓은 원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도토리 소주도 주문했다. 모두 마음껏 먹었고, 마음껏 회포를 풀었다. 화제는 백두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운 천지, 그리고 항일유격대의 활동으로 모였다. 삼지연의 아름다움도 빠지지 않았다. 똑같이 텐트에서 잠자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견뎠던 동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배경은 다른데 감회는 비슷했다. 모두는 한결같이 어느 트레킹보다 즐거웠고 어느 여행보다 뜻깊었다고 말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여러 사람에게 자랑할 것이며 널리 알리겠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배탈이 난 사람이 없었다. 밤이 되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서 야영했으면서도 누구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고 험한 산길을 헤쳐 걸었으면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낙오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동료가 되어준 것을 고마워했고, 다 함께 건배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가슴으로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밤늦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두산 아래에서 마지막 밤이었고, 내일은 평양으로 가는 날이었다.

기행문을 쓰기 전, 나는 내가 본 백두산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말로도 글로도 내가 본 것들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본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이 창피스러웠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포장을 하거나 장황하게 꾸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나름대로 열심히 쓰려고 했다.

필자소개
안영백(제임스 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교민으로 북한 전문 여행사인 네이쳐코리아 (www.nature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와 백두고원을 잇는 백두산 트레킹을 기획했으며 북한낚시 여행상품을 개발했다. 남북의 스포츠레저, 학술, 문화, 자연환경보호 등 민간교류 사업을 하고 있다.<Tel: +64 27 489 1801, Talk: natur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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