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⑩] “우리를 버티게 하소서”··· 삶의 파랑과 죽음의 절벽 사이에서 만나는 음악
[홍미희의 음악여행 ⑩] “우리를 버티게 하소서”··· 삶의 파랑과 죽음의 절벽 사이에서 만나는 음악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0.03.23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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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를 이겨낸 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조용한 추모, 알비노니의 주제에 의한 ‘아다지오 G단조’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 라크리모사(Lacrimosa)
만 개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피리, 만파식적

질병과 전쟁, 두려움과 공포는 인간의 존엄성과 영혼을 파괴시키지만, 인간은 그 아픔 속에서 더 큰 인류애를 경험한다. 음악은 슬픔에 가득 찬 인간을 위로하며, 두려움을 잊게 하고 심장을 뛰게 만들며, 영혼을 달래고 기도하는 역할도 한다. 어려움 속에서 음악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으로 마음 깊은 곳을 치유한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음악으로 위로를 받은 경우는 수없이 많다. 우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공격으로 900일간 봉쇄된 레닌그라드에는 사망자가 넘치고 먹을 식량도 없었다. 이 당시 러시아에서는 공격과 굶주림, 추위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교향곡 7번을 헌정했다. 당시 첫 연습에 나온 단원은 굶주림과 사망, 추방, 군인 등의 사정으로 15명뿐이었다. 이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병사들과 일반인까지 끌어모아 1942년 10월 9일 레닌그라드에서 초연했을 때 러시아 군인들은 적에게 선제공격을 하여 이 연주가 중단되지 않도록 했다. 당시 연주됐던 필하모닉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레닌그라드 전체에 중계됐다. 공포와 기아에 지친 시민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자존심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왼쪽 사진은 소방관 옷을 입고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를 지키고 있는 쇼스타코비치. 오른쪽은 1942년 7월 타임지 표지.
왼쪽 사진은 소방관 옷을 입고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를 지키고 있는 쇼스타코비치. 오른쪽은 1942년 7월 타임지 표지.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둘러싸인 사라예보의 시민들은 하루하루를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보냈다. 1992년 5월 27일 사라예보의 한 가게에서 빵을 판다는 소식에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으로 22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다음 날 오후 4시쯤 그 자리에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가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나타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연주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22명을 추모하는 의미로 22일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생존자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에 떠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슬픔을 잊었고 평화를 꿈꿀 수 있었다. 연주시간 동안에는 총성도 멈췄다.

종교와 음악은 인간의 나약한 내면을 위로해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레퀴엠(Requiem)’은 진혼곡이다. 라틴어로는 안식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으로 엄숙하고 예를 갖춘다. 가톨릭 미사의 형식은 엄격하다. 그중에서도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이니 얼마나 엄숙하고 예를 갖춰야 할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많은 작곡자가 기도와 추모의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했다. 그중에서도 모차르트가 사망하기 바로 전에 작곡한 레퀴엠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제3부 세퀜티아 6번 라크리모사(Lacrimosa, 눈물과 한탄의 날)는 아름다운 서정성과 애통함으로 모든 것을 잠시 잊고 깊은 슬픔 속에 빠지게 한다. 1791년 35세였던 모차르트는 이 곡의 8번째 마디까지 작곡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 뒷부분은 제자였던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 레퀴엠의 입당송 첫 구절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며 시작된다.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라크리모사의 합창부분은 다음과 같다. “눈물의 날, 그날,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하오니 그 사람을 어여삐 여기소서. 하느님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죽음, 그래서 더욱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 죽음의 공포와 슬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음악, 보내는 사람과 떠난 사람 모두를 위로하는 음악, 그것이 진혼곡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급등하고 전 세계는 공포에 빠져있다. 21세기에 전염병으로 인간이 인간을 피하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가 모두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중 이탈리아는 하루하루 사망자와 누적확진자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렇게 암울한 이탈리아에서는 도시의 발코니와 창문에 ‘다 잘될 거야(Andr‘a tutto bene)’라고 적힌 그림을 걸으며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모습이 발견된다.

발코니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인.

그리고 각 집의 발코니에서는 플래시몹을 하기도 한다. 원래 플래시몹이란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플래시몹은 어떤 의미나 목적이 없이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지만 요즘 이탈리아에서 보이는 플래시몹은 ‘정오에 전국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박수치기, 오후 6시에는 ‘Andr‘a tutto bene’를 외치며 노래 부르기, 남비나 악기 두드리기, 오후 9시에는 촛불을 들고 발코니로 나와 노래하기 등 서로를 격려하고 희망을 찾아가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공포로 마비된 세상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음악을 통해 사회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용기를 주는 모습은 굳센 인간애를 느끼게 한다.

신라시대 문무왕은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아들로 통일신라를 이루고 신라의 발전을 꾀했던 왕이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여 동해에 뿌려 달라. 나는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킬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용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양문에 입구를 낸 감은사를 지었다. 이후 682년 5월 동해 바다에서 떠다니는 거북바위가 발견됐는데 이는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보낸 것이었다. 섬 위의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태풍이 멈추며 물결은 평온해졌다. 신문왕은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이름 붙이고 월성 천존고에 간직하였다. 만파식적은 만 개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피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적(笛)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나무로 만든 피리다. 당시에는 ‘젓대’를 말하며 ‘저’라고 부르기도 했다.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악기는 ‘삼현삼죽’이다. 삼현삼죽은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 대금, 중금, 소금, 대금으로 통일 이전 삼국의 악기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삼죽 즉, 세 개의 피리 중 적(笛)은 대금을 말한다. 현재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는 대금은 상쾌하고 맑은 소리가 아닌 깊고 부드럽고 어두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산조대금(위)과 정악대금.
산조대금(위)과 정악대금.

이러한 대금의 깊은 소리는 허수의 구멍인 청공에서 나오는데 이 청공 위에는 갈대의 얇은 막을 채취한 청(淸)이 붙어 있다. 그래서 청의 진동이 커지면서 장쾌하게 떠는 음을 내는 중후한 소리는 대금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다. 예전에는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들이 악기를 수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5월이면 청을 따러 가곤 했다고 한다.

대금은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에는 풍류 음악의 주요 악기로 편성됐고, 조선시대에는 향악의 대표적인 악기로 종묘제례악, 향악과 당악에도 빠지지 않았다. 현대에도 대금은 매력적인 소리로 시나위, 산조 등에서 많이 연주되고 있다.

질병이 창궐하는 요즘 동해 바다 어딘가에서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을 용 한 마리가 보이는 듯하다. 이럴 때 내 한 몸 바쳐 너희들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듬직한 용과 만파식적 같은 피리가 있으면 좋겠다. 한 번 불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또 한 번 불면 모든 질병이 없어지는 전설의 피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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