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대체할 수 없는 세상
[해외기고] 대체할 수 없는 세상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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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라는 말이 세계인들에게 화두처럼 떠올랐다. 산불, 홍수의 재난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가 한 몫을 덧보태서 사람들의 삶을 무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일상의 날들이 씨줄과 날줄로서 반듯하게 정렬되지 못하고 뒤엉켜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자연에 속하는 숲, 개울, 흙, 새소리 하나에도 애정을 가지고 돌보지 못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땅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공해에 짓눌리며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 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산불뉴스를 보면서 타오르는 불길 속을 달려가는 캥거루, 나무에 매달린 채 거슬린 코알라의 비참한 모습은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생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도하며 빌고 또 빌었다.

나는 비를 기다리면서 ‘비를 내리는 나무’를 기억해내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이 가뭄이 들면 비를 부르는 제례의식을 행하면서 흔들었던 전설의 나무라고 전해 들었다. 오래전, 아이들과 함께 골드코스트에 있는 씨월드(Sea World)에 구경을 가서 기념품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가게 한편에 작은 통나무를 자른 듯한 나무 막대기들이 통에 담겨있어서 한 개를 들고 아래위로 흔들었더니 쏴~~아 하는 소리가 났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는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포기하고 나왔지만 이제야 후회가 훅하니 밀려온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메마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비를 내리는 나무’를 팔이 아프도록 흔들었다면 우연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물에 잠긴 집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의 장면을 보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대체 할 수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일까.

학교는 1월28일, 공식적으로 개학은 했지만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많은 중국 유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해서 별도로 교육을 하게 됐다. 학생들을 교실로 안내하고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 전에 몇 학생들에게 “너 어디에서 왔니” 하고 물었더니 “중국, 하지만 나는 우한에서 오지 않았어요”고 재빨리 대답했다. 학생들 앞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마스크를 할 수도 없었다. 일부 재학생들의 부모는 불안해서 당분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이미 도착했던 중국 유학생들은 홈스테이 집에서 자가 격리(Self –isolation)를 하게 됐다. 14일이 지나야 의사의 진단서를 받은 후에 출석하도록 통보를 해주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운동장 한편의 벤치에 몰려서 떠들썩하게 모국어로 수다를 떨던 중국 유학생들의 모습을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 어느 한국 유학생은 홈스테이 집에서 황당한 경우를 당하기도 했다. 외국친구들과 외식을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것으로 오해한 홈스테이 부모가 불만이 적힌 이메일을 학교에 보내서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일도 생겼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에 심한 기침과 감기 증세를 보였던 중국인 선생은 스스로 보건부에 신고하고 자가 격리를 하는 소동을 벌리기도 했었다. 강한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어서 발생한 냉방 감기라는 의사의 진단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들려오는 급작스런 환자증가의 뉴스에 가슴은 콩닥거리고 불안하기만 하다. 마음 졸이며 지내는 이 시간이 언제쯤 정리가 될지 그저 두 손 모으고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묶여있고 연결되어있다고 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사람이 만든 일이며 사람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정부에서는 산불 사태에 대한 어떤 뚜렷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린 학생들조차도 환경보호와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는 데모대에 가담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현실을 직시하면 좋으련만.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누군가 버렸다고 욕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으면 거리가 깨끗해질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집을 짓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오늘 하루 중 한 순간인 이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소중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변함없이 가져야 할 것이다. 북미 인디언들은 2월은 물고기가 뛰노는 달이며, 홀로 걷는 달, 삼나무에 꽃바람이 부는 달이라고 표현했다. 달을 표현하는데도 자연과 관련된 언어를 쓰며, 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들의 순수한 영혼이 존경스럽다.

진실이 담긴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서로 믿고 사는 세상,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회, 멀리 바라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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