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돈(錢)
[이영승의 붓을 따라] 돈(錢)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20.04.0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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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만물 중에 돈보다 더 고귀하고 절실한 것이 또 있을까? 내 생각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돈보다 비정하고 무서운 것도 없으며 또한 돈보다 깨끗하거나 추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목숨을 건 인간의 수많은 분쟁도 알고 보면 결국 돈과 결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돈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위력은 어디까지일까?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바로 돈이 아닌가 싶다.

지방에서 직원으로 근무할 때이니 지금부터 40년도 넘은 얘기다. 내가 근무하던 영업소에 출입하는 30대 중반의 젊은 협력업체 사장이 한분 있었다. 직원 한 두 명만을 데리고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는 작은 규모의 ‘2종전기공사업체’였다. 그는 성품이 워낙 착하고 진실하여 모든 직원들로부터 신뢰와 호평을 받고 있었다. 나도 그와 사생활까지 서로 털어놓으며 격의 없이 지냈다.

어느 날 그가 간암 말기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말 충격적인 비보였다. 그와 충분한 위로의 시간을 갖고 싶어 퇴근 후 조용한 시간대에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병문안 온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손만 꼭 잡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자 그가 차분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그가 했던 말의 요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제가 너무도 어렵게 성장하다보니 정말 돈밖에 모르고 억척 같이 일만 했으며, 그 결과 적지 않은 돈도 모았습니다. 아마도 30억(지금 가치로 백억이 훨씬 넘을 듯)은 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타고난 저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단 하나, 그토록 지독하게 모은 돈을 의미 있게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것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지금 저의 심정 같아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돈을 옥상에 올라가 뿌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제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마저도 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절규를 토해 내었다.

그날 그가 했던 말은 실로 나의 심금을 울렸으며, 두고두고 내 뇌리를 맴돌았다. 만인이 그토록 집착하는 돈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4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어렵기만하다.

거액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돈까지 쓸 형편이 못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거액이든 소액이든 쓸 형편이 되는데도 아까워서 못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현실이다. 이보다 더 불쌍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의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돈의 마력이 아닌가 싶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누구나 그 돈을 다 쓰지 못하고 떠난다. 이는 자신의 생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토록 소중한 돈은 실로 벌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돈은 벌기보다 잘 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성싶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만고의 진리라 믿는다. 그 사장님 덕분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분이 하던 말을 생각하며 ‘내가 만약 어느 날 운명이 다하게 된다면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을까?’를 자문해본다. 솔직히 나는 여한이 전혀 없을 자신이 없다. 그날 이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나는 돈을 잘 쓰자’고 다짐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신이 없으니 이일을 어찌하랴!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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