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역병과 문명의 발전
[대림칼럼] 역병과 문명의 발전
  • 엄정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일본)
  • 승인 2020.04.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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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의 역병(Plague in an Ancient City, 미첼 스위츠)
고대 아테네의 역병(Plague in an Ancient City, 미첼 스위츠)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역병과의 전쟁을 반복해왔는데 이런 전쟁은 인류 역사와 문명의 변화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장 오래된 감염증 유행 기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의 역사를 기록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인데 거기에는 그리스 아테네의 역병에 대해서도 기록돼 있다.

이 전쟁에서 해군력이 막강한 아테네는 거의 무적의 육군을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와 동맹국들을 이기기 위해서 우세한 아테네해군으로 스파르타군을 해변에 묶어두려 했다. 아테네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성벽 뒤로 후퇴시켰는데 원래 인구가 많던 도시에 주위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아테네는 질병의 온상이 돼버렸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를 태우는 장작불 위에 주인 없는 시체들이 던져졌다. 부모는 자식을 잃고 자식은 부모를 잃고 3년도 안 되어 성벽 내 주민 중 1/3을 잃음으로써 아테네는 전력을 잃게 됐다. 

거기에다가 “전쟁 초기에 그리스 군대를 이끈 페리클레스마저 전염병의 희생자가 되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북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전쟁 초기에 물리쳤을 것이고, 그랬다면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아테네 전염병과 펠로폰네소스전쟁)

1531년, 에스파냐의 식민지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의 군대가 168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쟁보다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열어놓은 길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병균을 전파하는 경로가 됐고 이는 원주민들의 문명을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16세기 유럽인들은 14세기에 페스트로 인한 2차 대역병을 치르면서 온갖 병원균을 지닌 병원체가 됐는데 면역력 없는 원주민들은 그런 유럽인들을 접촉만 해도 병에 걸려 몰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같이 역병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살상 무기가 됐는데 다른 한편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하면 사람들은 사무라이(侍)나 닌자(忍者)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런 사무라이의 탄생은 역병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나라 도다이사의 대불
나라 도다이사의 대불

그 뿐만 아니라 지금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나라(奈良) 도다이사(東大寺)의 대불(大佛)도 역병이 없었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대불의 제작이 시작된 것은 서기 745년. 쇼무천황(聖武天皇)이 왕위에 올랐던 8세기 전반이다. 덴표(天平) 9년(737년)에 일본에는 천연두가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당시 국정을 담당하고 있던 후지와라 4형제마저 천연두로 잇따라 사망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덴표시대는 연년(連年) 가뭄·기근이 지속했고, 덴표 6년(734년)에는 대지진으로 크게 피해가 생겨 사회가 불안해진 시대였다.

도다이사(東大寺) 대불의 건립계획은 쇼무천황이 이러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역병이 대불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천년이 지나는 동안 이 대불은 수차 손상되기도 했으나 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천연두의 종식 후 저조한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민의 토지 사유를 인정하는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이 시행됐는데, 이것은 역병에 의한 피해로부터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사회 부흥책으로서의 일면이 강했다. 그런데 점차 ‘사유화’가 종신권리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무사(武士)가 필요했고 그렇게 태어난 무사가 조직화되면서 귀족과 황족을 위해 일하는 사무라이(侍)가 생기게 됐다. 역병이 없었다면 사무라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14세기에 유행한 흑사병이 르네상스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은 1000여 년간 신(神)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흑사병 창궐에 무기력했던 사제들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며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보카치오는 1348년 페스트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듬해부터 『데카메론』(Decameron 1353)을 집필했다.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흑사병이 만연했다. 이 역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체 높은 젊은 부인 일곱 명과 귀족 청년 세 명이 피에솔레 언덕의 아름다운 별장으로 피신가게 됐다. 그들은 하루에 한 명씩 왕이 되어 그날의 주제를 정한 뒤 각자가 한 편씩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는데 수난일을 제외하고 2주에 걸쳐 열흘간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난 끝에 행복을 찾는 이야기, 역경을 이겨 낸 연인의 이야기,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 기발하게 상대를 조롱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 아래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춤과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했는데 보름째 되는 날 그들은 각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성과 쾌락에 관계된 재미난 여흥 거리 이야기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데카메론』은 구체적인 사물과 체험을 구체적인 언어로 재현하는 리얼리즘의 방식으로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종교의 억압적인 지배하에 숨 막혔던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체적인 인성에 눈을 돌리게 했고 생명의 힘을 느끼게 했다.

또한, 인쇄술도 없었고 종이도 귀한 시대에 설화(說話) 형식의 단편 문학은 일반 민중들에게 전달되기 쉬워서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이탈리아어는 이른바 보카치오식 산문이라는 것으로서 오래도록 산문의 본이 됐다.

요즘 일본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 정부는 오늘 ‘긴급사태 선언’을 내렸다. 회사는 물론이고 학교도 휴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는 17세기의 유럽에서도 일어났었는데 그때도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했다. 그 때문에 당시 잉글랜드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니던 아이작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휴교로 사색할 시간이 많아졌던 뉴턴은 그 와중에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미적분도 이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위기가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쩌면 그 휴교가 없었다면 인류의 발전에 혁신을 일으킨 만유인력이 발견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달이 왜 지구를 둘러싸고 도는지도 몰라 인조위성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정부로부터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학교는 휴교나 인터넷수업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경제의 발전에 브레이크를 건다. 토요다(豊田) 같은 대기업에서마저 일부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있으니 중소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의 생산 규모가 축소되자 경영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신입사원 인입을 취소하는 바람에 올해 졸업생 중에는 취직 내정(內定)이 취소된 학생들이 많다. 이미 아파트를 빌려 이사까지 한 그들에게 갑자기 취직이 취소되니 4월부터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가 문제가 됐다. 다행히 정부가 6조엔의 원조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급한 불은 끄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하던 4차산업혁명의 도래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다. 4차산업혁명에서 주되는 사업인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및 빅데이터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AI)산업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를 공제하고 억제하는데 아주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중국 IT 기업 “알리바바” 산하의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는 2월11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으로서 “알리페이 건강 코드”를 본사가 있는 저장성 항저우시 등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하여 1주일 만에 100개 도시로 확대했다고 한다.

알리바바 산하 앤트파이낸셜이 운영하는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건강 코드’는 애드온 앱으로 알리페이의 사용자 건강상태를 녹색 노란색 빨간색 QR코드로 표시한다.

이 QR코드는 사용자가 입력한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되며 초록색이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나 노란색의 경우 1주일, 빨간색의 경우 2주간의 자택 대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노란색’ ‘빨간색’ 판정은 자진신고 해야 하며 건강상태 외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와의 접촉, 감염지역 출입 등이 기록되며, 대중교통 이용 데이터도 담겼다. 덕분에 제때 감염자를 알아낼 수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았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앱을 인입 했는데 확진자의 격리장소, 동선(動線) 같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확진자들이 방문했던 곳을 점으로 찍고, 선으로 연결해 이동 경로를 쉽게 보여주어 신속한 업데이트가 될 뿐 아니라 전체 통계도 볼 수 있어서 코로나 19를 현명하게 피하는 수단이 됐다. 

또한 ‘코백 플러스’를 이용하여 주위 약국의 마스크의 현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구매 확률을 높여줬고 코로나 19와 관련된 국내 현황, 세계 현황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확진자 발생지역 역시 확인 가능했다. 이런 앱을 이용함으로써 한국은 코로나 19를 보다 유효하게 억제한 나라로 인정받게 됐다.

일본은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되어 이때까지 이런 앱 사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일본도 인터넷 앱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세계적으로 의료붕괴를 일으키고 있다. 불어나는 환자 수에 대응할 의료진의 수가 모자라는 상황 속에서 의료용 로봇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이미 의료붕괴가 일어난 이탈리아에서는 의료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환자에 대한 치료 간호가 앞으로는 로봇을 통해서 진행된다면 의료 종사들이 감염되어 의료붕괴가 일어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인류역사상에서 IT산업과 AI의 신속한 발전을 필요를 하고 있으며 이는 4차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를 촉진할 것이다. 
지금은 상황 때문에 피동적으로 인터넷으로 수업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미래 교육의 실험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 도쿄와 오사카 등 7개의 도(都) 부(府) 현(県)에 「긴급사태선언」이 내렸다. 외출 자숙령이 내렸고 “환기가 잘 안 되는 ‘밀폐공간’, 다수가 모이는 ‘밀집장소’, 가까이서 대화나 발성을 하는 ‘밀접장면’을 피면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불편해지고 감염자가 더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겨울이 길고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역병이 무서워도 인류는 역병과의 전쟁에서 이겨왔고 그때마다 인류의 문명은 발전했다. 코로나 19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번 고난을 이겨낼 때 인류는 또 한걸음 크게 성장할 것이다. 

필자소개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길시 10중 국어교사,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국어교사, 길림신문사 기자로 활동.
1997년부터 일본에 거주.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 한국어강사.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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