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약초, 한련화처럼
[Essay Garden] 약초, 한련화처럼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0.05.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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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련화가 조금 일찍 만발하여 절정이다. 주황, 노랑, 연분홍색 꽃들이 초록빛의 작은 연잎 사이로 참말로 앙증맞고 예쁘다. 꽃이 지면서 노랗게 시든 잎들을 잘라주며 손질하는 동안 나는 꽃의 독특한 향기에 묻혀 작은 행복을 느끼는 아침이다. 하루는 퇴근하여 들어오던 딸이 현관에서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흐뭇하여 나에게 전해준다.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던 한 엄마가 아이들에게 우리 정원의 꽃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 한참 집 뜰 앞에 머물러 있더라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가족이 함께 동네를 걸으며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는 정서도 풍성해지려나 보다.

사실 나는 좋은 중년의 날들은 연이어 우리집 가족을 돌보아야 했던 상황이라 마음먹었던 여행은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뜰이라도 예쁘게 만들어 작은 별장처럼 살자며 오래전부터 힘든 노동일을 시작했다. 한번은 이웃 정원에 한련화가 피어 있어 씨앗을 얻어 왔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꽃의 영어 이름이 퍽 외우기가 어려워 나는 몇 번이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어느 봄날 한국에서 찾아온 여고 동창이 저녁을 먹으며 우리집 마당에 한련화 생잎을 따서 즐겁게 쌈을 싸 먹었다.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는 친구는 우리 뜰에 나가 라호야에 사는 딸 가족에게도 준다며 한련화 잎은 물론 엔다이브 상추도 가득히 뜯었다. 그때 나는 엔다이브가 한국말로 치커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치커리는 동양화 공부를 함께 하던 일본인 친구 집에서 얻어 와 심었는데 씁쓸한 맛을 가족이 즐겼다. 당시는 비가 자주 오던 때라 한련화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치커리는 좋아해서 지인들과 많이 나누어 먹었다. 차츰 나는 한련화 잎을 먹는 법을 개발하여 호박잎처럼 살짝 쪄서 먹기도 하고 전을 지져도 먹고, 샌드위치에도 넣는다. 익혀 먹으면 연잎처럼 깊은 맛이 난다.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한련화 꽃이 요리나 샐러드에 곱게 장식되어 있다. 문득, 자연의 나무나 풀, 바다에서 약을 구해 먹으며 지혜를 발휘했던 문명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한련화의 마른 씨앗을 갈아서 항생제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집은 20년 넘도록 벌레 죽이는 약이나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 땅이다. 가끔 두더지가 와서 땅속의 지렁이까지 파먹곤 했지만, 오랜만에 집 안뜰이 온통 빗물에 풍덩 잠겨버린 봄이어서 모든 생명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날씨가 뜨거워지면 일년생 한련화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죽는다. 오늘도 나는 향수처럼 향긋함이 풍기며 매운 겨자 맛이 나는 한련화 꽃을 한 컵 가득히 뜯어 가족의 밥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명상에 잠긴다. 

너무나도 편리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풍부하여 고마움을 알기보다는 전화기를 만지는 물질주의에 빠지는 환경 속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된 지가 오래되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에서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 미국을 비롯하여 유엔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처럼 자유를 누리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가 있었을까. 그때도 종종 남의 돈을 사기 치는 나쁜 사람은 있었지만 요즈음 세상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자식에게까지도 거짓과 허영의 삶을 가르치고 보여 주는 정치가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참으로 나는 슬프다. 우아한 꽃과 가느다란 줄기 그리고 잎까지도 다양한 약초로 쓸모가 있는 한련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부끄럽다. 창고에 쌓아놓고도 부족한 명예와 부를 찾아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는 그 사악한 인간들. 바보 같고 착하기만 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나는 약초인 한련화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어진다.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이고‘ 주필 역임,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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