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감춰진 ‘축복’
[대림칼럼] 감춰진 ‘축복’
  • 이미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0.05.15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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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를 확인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코로나19가 하루가 다르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삶도, 일상도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잠식당하고 있다. 아직 요원하다고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감염의 확산과 함께 일상에 침투된다. 평온한 일상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 되고, 심리적 충격이 여진처럼 다가온다···” 

2월 중순에 한국연구재단의 청탁을 받고 코로나 시대의 연구자의 시선에 대해 썼던 칼럼이다. 이 칼럼을 쓴 지가 석 달 지났다. 5월 중순, 다시 원고 마감을 앞에 두고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으로 그때 칼럼을 다시 꺼내 보니, 웬걸 그때와는 달리 내 마음도 상황도 많이 변해 있다. 고작 3개월, 마음은 축 늘어진 기타 줄 마냥 느슨해졌고 변화된 일상에도 그럭저럭 적응해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코로나 수습기”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사실 무엇이 문제였는지조차 점차 망각되고, 눈부신 5월이 되어서는 얼어붙었던 마음마저 해빙처럼 살살 녹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이태원 집단 감염이 다시 터져버렸다. 코로나가 갓 불거진 2월만큼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진 않았으나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음을 경고해 주는 듯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3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인간의 생각과 습관과 가치관까지 변화시킬 만큼 긴 시간도 아니다. 특히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집단문화가 발달한 한국사회에 있어서 3개월은 참을 만큼 참은 인내심의 한계치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서울의 한 유흥가라는 작은 집단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라도 해도, “빙산의 일각”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잠재된 집단 무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술과 모임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 또한 “이런 삶은 너무 퍽퍽하지 않은가?”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들”에 대한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게 했으니까. 

코로나가 갖고 온 변화는 침체된 것처럼 보이는 삶–위축된 경제와 단절된 관계와 불투명한 미래까지-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규칙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 등 삶의 전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코로나 이후의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이지만 반대급부도 분명 존재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차가운 현실의 이면에는 분명 또 다른 내용의 속지가 숨겨져 있다. 코로나로 인해 ‘국가의 감염병 예방 시스템이 새롭게 정비되고 방역 의료체계가 발전하고 환경오염이 줄고’와 같은 거창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홀로 있음의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의 마음 들여다보기가 가능해졌다. 

늘 연결되고 확장하기를 원했고 뜨거움을 지향했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열기를 식히고 외부보다는 내면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보려고 하지 않았던 삶의 내면을 우리는 외부와 단절되면서 마주할 기회를 문득 갖게 되었다. 무리를 따라 다녀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안의 자아, 그 내면의 자아가 체득한 삶의 비밀들, 구석구석 숨겨져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비운 뒤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만 만날 수 있는 메시지들.
 
어느 한 시인은 “마스크 쓰는 것을 통해서 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얼굴을 가리고, 손 씻기를 통해서 그동안 했던 나쁜 일을 그만 두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나의 방식이 옳은 가를 점검하여 네모난 가치관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성급하게 입을 열고 손의 것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재촉해 왔는가. “시간은 금”이라고 외치며 시간을 분절하여 쓰고 공간을 넘나들며 무수한 사람을 만나고 외적 경험을 끊임없이 축적하는 분주함 속에서 살아왔다. 자신을 부단히 확장하는 것만이 삶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바람직한 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을 향해서 속력 있게 달려온 삶이 어느 날 문득 멈출 수도 있다는 것, 어느 순간 질병과 죽음은 삶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삶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코로나는 묵직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이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겹다. 과거에 비해서 축소된 일상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 또한 앗아간 측면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삶의 변화가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해서 미래의 어떤 점에 다다르게 될지도 알 수 없고 함부로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나 코로나가 준 선물은, 삶의 방식에 대한 탐구와 함께 내면의 발견에 있으며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오롯이 ‘오늘’을 살아내는 것에 있음을 알게 한다. 어느 날 문득 코로나가 왔던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코로나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변화된 삶은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필자소개
이미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서울대학교에서 한·중 현대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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