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율 칼럼] 유언을 통해 배우는 교훈
[이승율 칼럼] 유언을 통해 배우는 교훈
  •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0.06.0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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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에 얽힌 불편한 진실

매주 토요일 아침 조간을 읽으면서 인간적으로 가장 큰 감명을 받는 글이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김형석의 100세 일기'다. 오늘(6/6) 현충일 아침에도 예외 없이 그분의 글을 읽다가 한 주 전에 읽었던 글("두 사람의 유언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자꾸만 되살아나서, 그냥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심경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여기서 '그냥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심경'이 든 것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김홍업, 김홍걸 두 이복형제간의 유산 다툼 공방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법적 분쟁이 벌어진 유산은 감정액 약 32억원 상당의 서울 동교동 사저와 남은 노벨평화 상금 8억 원이다. 지난달 29일 매체 보도에 의하면, 올해 1월 김대중평화센터 김홍업 이사장이 민주당 김홍걸 비례대표 국회의원(초선)을 상대로 김 의원 명의로 된 사저에 대한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이에 김 의원 측이 4월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그리고 김 의원이 인출해간 노벨상금에 대해서도 김대중기념사업회(김대중재단)에서 '재단으로 돌려달라'며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분쟁의 발단은 이희호 여사의 유언에 따라 재산을 처분하기로 한 3형제(고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의 '확인서' 내용이다. 김 이사장 측이 연합뉴스에 제공한 '확인서' 사본을 보면, 2017년 2월 1일 형제 3인이 어머니 이희호 여사의 유언 취지를 받들어 △상금 8억 원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액 기부하고 △유증받은 부동산은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기로 적혀 있다.

만약 지자체나 후원자가 사저를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할 경우, 보상금 3분의 1은 김대중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를 3형제 측이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는 조항도 있다. 김 이사장은 생전 이 여사의 뜻과 3형제의 약속을 어기고 김 의원이 유산을 가로챘다고 주장한다. 이에 김 의원은 유언장이 무효이며 본인이 유일한 법적 상속인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법에 따르면 부친이 사망하면 전처의 출생자와 계모 사이의 친족 관계는 소멸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종전의 혈족 관계는 부정되고 따라서 계모자 관계에서는 상속권이 발생할 수 없게 된다.

법적으로는 김홍걸 의원이 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상속인인 셈이다. 김 의원은 이를 근거로 형제 3인이 어머니의 유언 취지를 받들어 작성했던 '확인서'는 유언장으로서 효력이 없으며 자신이 부모가 남긴 부동산과 상금에 대한 유일한 법적 속인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홍업 이사장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3형제가 동의하고 합의서에 인감까지 찍었으므로 이희호 여사의 유언대로 유산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형제간의 재산 싸움이 아니라 재단에 갈 재산을 (동생이) 가로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홍업, 김홍걸 두 이복형제간의 유산 다툼 공방전이 어떻게 진전될지 알 수 없지만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여간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재벌기업의 경영 승계나 유산 상속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시민들은 혀를 차며 분개하고 욕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을 통해 이룬 민주화 대업과 남북한 소통 및 협력을 감안하면 그의 피를 이어받은 두 형제간에 일어난 이러한 반목과 대결 구도의 정서는 우리로 하여금 재벌기업의 행태 그 이상으로 참담한 심경이 들게 하고 심지어 억울한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들의 아버지는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 수많은 의혹과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에 새길을 열었고 마침내 그 공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것이 전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받은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후 노무현 정권을 창출했고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더불어민주당을 압도적인 위세로 역사의 전면에 세우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공과는 차치하고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민주주의의 최고의 이념은 한마디로 '갈등을 통합하는 화해의 정신'이었다. 군사독재와의 투쟁 끝에 자신을 핍박한 가해자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으며, 마침내 동족상잔의 원흉인 공산독재자와 두 손을 맞잡고 '역사를 기록하는 세계 언론' 앞에 민족 화해의 포즈를 취했다. 갈등을 통합하려는 의욕이 없으면 발상하기 힘든 일을 그는 실천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아들들이 화해는커녕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과 상금을 두고 서로 비난하며 법적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게 어디 개인의 집안일인가? 국가 차원에 오점을 남기는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닌가?

기적을 불러일으킨 유언장

지난 5월30일 아침 조간에서 김형석 교수는 두 사람의 유언을 통해 배운 교훈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두 분이 남긴 유언장의 내용을 전하면서, 그 속에 담긴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성과 숭고한 희생 정신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소개한 한국인, 즉 김형석 교수의 65년 전 제자이자 중국 연변과학기술대의 총장을 역임했다고 소개한 'K총장'은 다름 아닌 김진경 총장이다.

필자와는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사역을 통해 30년간 동역해온 분이며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과도 같은 분이다.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10월 초, 북경호텔에서다. 당시 필자는 산둥성 칭다오 석노인관광지구안에 18홀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다닐 때다. 농민들의 토지보상 문제가 어려워 북경에 가서 양상쿤 주석의 아들 양샤오밍이란 분을 만나 도움을 청하려고 갔던 자리에서 우연히 김진경 총장을 만났다.

나보다 훨씬 연배라서 먼저 말씀을 하시라 하고 나는 옆자리에서 경청을 했다. 그때 그분이 "나는 한국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자다. 유럽에 가서 공부했고 그 후 미국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또 사업가로 일하면서 돈도 제법 벌었다. 이제 곧 한중간에 문호가 열릴텐데,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와서 연변 자치주 연길시에 기술전문학교를 하나 세우고자 한다. 당신 아버지가 실력자이니 나를 도와달라, 나는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조선족 후예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 왔노라"라고 말씀하는게 아닌가!

나는 옆자리에 앉아 경청하다가 그 말씀을 듣고 자신에 대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나는 골프장 사업으로 돈 벌러 왔지만, 이분은 자기 재산을 팔아서까지 남을 도우려고 하는 분이구나 라는 감동이 밀려왔고, 그때 느낀 감동의 물결이 지금까지 나의 인생 후반전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의 능력이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새로운 희망과 비전의 고지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김진경 총장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그후 연변과기대 설립 및 운영에 동참(대외부총장 역임)했을뿐 아니라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본격화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하나로 남북간 국가급 교육합작사업인 평양과기대를 건립하는 일에도 동참하여 기획 및 건설위원장,대외부총장을 겸하여 사역해오다 지난해 부터 대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필자가 이렇게 김진경 총장과의 관계를 소상히 이야기하는 이유는, 김형석 교수님이 조간을 통해 밝힌 김진경 총장의 유언장에 대한 내용이 결코 과대 포장됐거나 위증이 아니며, 오직 김진경 총장 그분만이 그런 유언장을 쓸 수 있었음을 보증하기 위해서다.

김진경 총장과 우리 재단(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이사장 곽선희 목사)에서는 연변과기대 개교(1992년 9월)후 곧바로 1993년 가을, 함경북도 나진시에 또 하나의 과학기술대학을 세우고자 현지 방문 후 대학캠퍼스 기획안을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이 제안은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준비 아젠다로 채택됐다.

그래서 다음 해인 1994년 봄에 대학부지를 결정하고 건설에 필요한 장비 반입 계획을 세우고 있을때 현대중공업 정몽준 회장께서 큰 도움을 주셨다. 6월 말경, 울산에서 도쟈, 포크레인, 덤프, 크레인 등 10대에 가까운 건설 장비를 시핑(shipping)하여 나진항에 도착시킨 후 7월 중순 부지 정지공사에 돌입하려는 데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타계함으로써 나진과학기술대학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3년간 문상 기간이 끝나고 난 다음 김진경 총장께서 다시 나진과기대 건립을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당시 나선자유무역경제특구 책임자로 있던 김정우 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옹립하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부패혐의로 숙청당할 때 그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전복음모죄로 구속되어 42일간 조사를 받았고 끝내 사형선고까지 받는 일이 벌어졌다. 신문에 게재된 김진경 총장의 유언장 내용은 그때 작성된 것이며 이를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김진경 총장은 가족에게 남긴 말 외에 “?(중국정부에게) 연변과학기술 대학을 유지, 성장시켜 달라 ?미국 정부는 나를 핑계로 북한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하지 말아달라 ?내 신체는 아직 건강하니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시신은 해부학 연구에 써달라고 했다."

다행히 미 국무부의 노력과 UN 및 중국의 지원으로 추방 형태로 중국으로 풀려 나오게 된 이후에도 김 총장은 매체와의 인터뷰 및 정보기관 접촉을 일절 배제하고 조용히 연변과기대 운영에만 전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원해 왔던 방식 그대로 매월 북한 어린이돕기(나진유치원 운영 및 함경북도 고아원 집중 지원)를 계속했다. 북한 지도부에서는 김진경 총장의 이러한 태도 및 지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으로 감복했던 것은 바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람이 남긴 유언장의 내용이 그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김진경 총장이 중국으로 추방된 지 3년이 경과한 2001년 1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푸동지역을 공식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김 위원장은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크게 놀라고 고무되어 귀국 후 곧 국가경제개선조치를 준비하게 됐는데 그때 중국 정부 요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김진경 총장에게 진사사절단을 보내 그를 3년 만에 다시 초청했다.

"박사 선생! 나진에 세우려고 했던 과학기술대학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수다. 그 대학을 평양으로 위치 변경해 줄테니 여기에 연변과학기술대학과 같은 국제대학을 세워 주시라우요" 이것이 그때 김 위원장이 김진경 총장께 부탁한 내용이고 이를 김 총장이 수락한 후 한국 정부와 협의한 다음 남북간 국가급 합작교육사업으로 설립 추진한 대학이 바로 현재의 평양과학기술대학(개교 2009년 9월,개학 2010년 10월)인것이다.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단순히 김정일 위원장의 인간적 배려와 호기 또는 국가사업의 필요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 총장의 유언장에서 보듯이,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과 진실성을 지키며 남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헌신한 박애주의적 희생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이라 믿어 진다.

김진경 총장을 북경에서 우연히 만난 다음 지금까지 만 30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동역해 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도 바로 이와 같은 '투철한 신앙심과 영적 감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그 점에서 나는, 평생 굴하지 않는 비전을 품고 중국과 북한 양대 공산국가에 대학을 세우고 세계 여러 곳에서 자비량으로 참여한 교수진들과 함께 국제화 교육을 통해 그들(중국과 북한)의 미래 변화를 꿈꾸며 헌신한 '희망 전도사' 란 점에서 나는 김 총장님을 무한히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 김진경 총장의 박애정신과 민족사랑 그리고 교육가로서의 헌신도를 높이 평가하여 후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이희호 여사(신촌 창천감리교회 장로)의 조언으로 그 상금을 평양과기대 후원금으로 지원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김진경 총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우리 대학 관계자들은 얼마나 고맙게 여기고 큰 위로를 받았었던가!

그런 그 귀한 상금을 이제 부모님들이 안 계신다고 자식들끼리 서로 유산 상속 분쟁을 펼치고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애가 탄다. 분하고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 자식이라고 개인들이 함부로 좌지우지할 돈(노벨평화상금)인가? 그 상금은 진정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해 귀히 사용되어야 한다.

필자는 김형석 교수님이 쓴 '유언을 통해 내가 배운 것'에 대한 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김홍업, 김홍걸 두 이복형제간의 유산 다툼 공방전에 대한 문제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심경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됐다. 유언을 남기신 부모님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법적인 판단을 넘어, 형제들 간의 화해로 공의에 입각한 선한 결과를 만들어 주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진정한 화해'야 말로 개인, 집단, 국가를 막론하고 인간사회를 관통하는 최고의 선이고 최선의 대책이 아니겠는가?

필자소개
연변과학기술대학, 평양과학기술대학의 대외부총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장 역임
현 참포도나무병원 이사장, 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 북경대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중앙민족대학 민박동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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