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한가롭지 못한 여유를 누리며
[해외기고] 한가롭지 못한 여유를 누리며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7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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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쌀쌀해진 늦가을의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하며 나뭇가지에 드리우는 옅은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집안에서만 생활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긴 시간을 실내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은근히 쌓여가는 듯하다. 마음도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는지 수고하는 의료진을 위로하며 박수를 보내는 텔레비전의 홍보영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서 눈물이 솟구친다.

이 기다림은 무엇을 뜻하며 어떤 미래와 희망을 품게 만드는 것일까. 기다린다는 말에는 어떤 바람과 설렘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지금의 힘든 대전염병의 시간이 지나가도 결코 이전처럼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며 달라지는 미래사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런 세상은 대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이기심은 자라나고 서로 얼굴을 맞대며 손을 붙들 수 있는 ‘연대’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는 사회가 될 것만 같다. 한가롭지 못한 시기에 누리는 지금의 여유가 결코 편치만은 않다.

요즘 규칙적으로 생긴 습관은 명상과 단전호흡을 하는 일이다. 유튜브(You Tube)에서 편안한 힐링음악을 찾아서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해본다. 치유의 주제나 음악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사람들이 겪는 갈등이나 문제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존감 수업, 내 인생사랑 법, 행복한 마음 습관에 대한 감사, 잠으로 안내하는 수면 여행, 인생 후반전을 두려움 없이 준비하기’와 같은 다양한 주제로 나뉘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편안함을 전해준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귀에 스며들 듯이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호흡 조절을 하게 된다. 내가 즐겨 찾는 명상은 혜민 스님의 ‘잠으로 안내하는 구름 휴식 명상’이라는 수면 여행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의 별자리를 찾는 꿈을 꾸면서 천천히 잠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마치 어린왕자가 우주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처럼...

지금의 나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태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을 두려움 없이 준비하기’라는 명상을 들어 보았다. 침체와 상실의 변화를 겪게 되며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내면으로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꿈 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했다. 융은 인생의 정오를 44살로 보았는데 이 말은 약 100여 년 전에 했던 말이니 현대의 오십 대 초반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만약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는 전환기를 맞이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갖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전에 견딤과 기다림의 공백을 가지고 평정심을 지니라는 충고를 들려준다. 이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자존감이 필요하고 세상의 모든 것은 머물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감을 잘 극복하고 기다림의 여유를 가져야 할 텐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어렵고도 멋진 말이 있지 않은가.

행복 점수라는 게 있다. ‘나의 행복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이 행복을 습관처럼 만들 수 있을까?’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려(Up in the wind)’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용은 주인공 청위멍은 가난한 시골 집안 출신이며 야망 있는 여성으로 상하이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큰 잡지사의 기자로 일한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 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취재를 위한 출장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되면서 네팔의 한 작은 관광 마을인 포카라로 가게 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네팔에 왔다는 관광 기사를 쓰도록 회사에서 강요받으며 그녀는 회한에 빠진다.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을 볼 수 있고, 힌두문화가 공존하는 고대 불교문화가 살아있으며,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과연 네팔은 그런 행복의 나라일까.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것은 영혼이 잠시 먼지에 뒤덮여있기 때문이니, 바람이 불어와서 날려버릴 때가 온다”는 요가스승의 답을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점차 자신감을 잃어간다. 높은 산 속의 어느 마을을 관광하다가 네팔 정부 군인들과 육탄전을 벌이며 데모하는 고산 원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꿈을 위해 싸우자.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시위대의 외침은 청위멍의 가슴 안에 맺혀있는 그녀의 절규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가 산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대도시의 삶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과 네팔의 대자연을 대비시키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결국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허전함과 씁쓸함을 엿보게 된다.

작은 것 하나에서도 느끼는 기쁨과 감동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준 영화였다. 집에서 보는 좋은 영화 한 편이 답답함을 씻어주니 감사하고 그 또한 행복한 일이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처럼 지니기 위해 애를 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을 허락받은 오늘 하루가 축복이며 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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