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52] 우빙젠(伍秉鑑)의 아편전쟁
[유주열의 동북아談說-52] 우빙젠(伍秉鑑)의 아편전쟁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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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외교부 소속으로 미국 뉴욕시에 소재하는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하여 국제문제 분야에서 2년간 수학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컬럼비아 대학이 중국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어느 대학보다 연구업적이 높다고 하면서 이 대학의 상징인 로우 기념 도서관(Low Memorial Library)의 유래를 이야기해 주었다. 기념도서관 건물을 기증한 사람은 후에 뉴욕시 시장을 지낸 로우(S. Low) 총장으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아비엘 로우(Abiel Low)를 기념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아비엘 로우는 일찍이 중국(淸)에 진출하여 중국의 차뿐만이 아니라 도자기, 비단을 수입하는 등 중국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다.
그 후 홍콩 총영사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홍콩 탄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홍콩은 경자년(1840)에 발발된 아편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난징(南京)조약(1842)에 의거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할양받은 곳이다.

어느 주말 아편전쟁을 알기 위해 광동성의 후먼(虎門) 박물관을 찾았다. ‘아편전쟁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후먼 박물관은 홍공과 마카오 사이를 흐르는 주장(珠江)에 가까웠다. 박물관 입구에는 중국이 당시 외국에 파는 물건으로 차, 도자기, 비단 등 3대 수출품이 전시돼 있었다. 세 가지 물건 중에 영국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차(茶)였다.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유니언 잭 깃발과 함께 신대륙 미국 등 영국인이 사는 곳에는 차가 보급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도 영국인의 하루가 차로 시작해서 차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한잔의 차는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차 수입으로 영국의 은(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국은 중국에 수출할 물건을 찾았지만, 자급자족의 중국에 팔 만한 물건이 없었다. 차 수입을 결제할 은이 부족한 영국은 아편을 수출하여 은을 확보하기로 했다.

인도대륙 동쪽 벵골만 근처에서 자라는 양귀비(poppy)는 무굴제국 시대부터 재배돼 인도 가정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인도 영국 상인이 가져오는 아편을 약재로 사용했지만, 육체노동자들 사이에 아편은 고통을 잊게 하는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하여 인기를 끌게 됐다. 중국으로서는 아편수입이 과다하여 은의 유출이 급격히 늘어날 뿐 아니라 중국의 남자 25%가 아편 중독됐다 할 정도로 아편은 마약으로써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아편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무역 전담 길드였던 광동 13행은 수요가 늘어나는 아편을 영국 상인으로부터 밀수입해서 팔았다. 중국정부는 린쩌쉬(林則徐, 1785-1850)를 광저우에 파견했다. 강경파 린쩌쉬는 광저우 창고에 쌓여 있는 아편을 몰수하여 폐기처분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서신을 보내 영국정부의 도덕성을 비난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파마스턴 외상은 중국 정부의 아편 몰수 폐기로 영국인의 사유재산이 불법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영국 상인들의 요청에 따라 중국에 원정군을 파견, 이른바 아편전쟁이 시작됐다.

후먼 박물관 전시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아편이었다. 진흙 덩어리처럼 보인 아편을 박래니(舶來泥, foreign mud)라고 불렀다. 전시실의 지도에는 양귀비가 밭을 이루고 있는 인도의 동쪽 갠지스강의 중상류를 보여주고 있었다. 양귀비의 화려한 꽃이 지고 나면 씨주머니가 생긴다. 씨주머니 속에는 씨를 보호하고 나중에 싹이 틀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할 찐득찐득한 우윳빛의 수액(유액)이 들어있다.

여기에 예리한 칼로 생채기를 내면 유액이 흘러나온다. 이 유액을 채취해서 적절한 가공과정을 거쳐 둥글게 뭉친 것이 아편이다. 대포알 같기도 한 진흙 덩어리를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망고나무로 짠 상자에 싣는다. 아편 상자는 갠지스강을 따라 내려와 다시 동쪽으로 항해하여 마카오에 도착한다. 마카오에서 바닥이 평평한 작은 배로 바꾸어 싣고 주장을 거슬러 광동 13행의 창고에 쌓인다. 중국 사람들의 아편중독은 봄철의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광동 13행의 중심인물이 복건성 출신의 우빙젠(伍秉鑑, 1769-1843)으로 ‘이화행(怡和行)’을 창설했다. 우빙젠은 고향 복건성 무이산에 거대한 차 농장을 경영하면서 자신의 차를 미국과 유럽에 팔고 아편을 수입하여 큰돈을 벌어 당시 세계 최고의 재산가로 알려졌다. 우빙젠의 이화행에 세계의 은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었다. 언젠가 우빙젠 집안에 화재가 났는데 금고의 은이 녹아 강물처럼 흘러 내렸다고 전한다. 우빙젠은 난징조약의 배상금 1/3을 스스로 부담할 정도로 거부였다. 차를 팔고 아편을 수입하는 이화행의 서양거래자로 영국 상인 자딘(Willam Jardine)과 매시선(James Matheson)이 있었고 미국 상인 럿셀(Samuel Russell)과 컬럼비아 대학 로우 기념 도서관의 주인공인 아비엘 로우도 있었다. 

미국의 동부 매사추세츠 살렘 출신의 아비엘 로우(1811-1893)는 20대 초반 삼촌의 권유로 럿셀회사의 종업원으로 중국무역을 시작했다. 그 후 쾌속 범선(clipper)을 기반으로 독립을 한 로우는 차를 구매할 때 비싼 첫 수확(first pick)이 아니고 가격이 싼 두 번째 수확을 선택하여, 그의 빠른 배는 첫 수확의 차보다 먼저 뉴욕에 도착시켜 큰 이익을 남겼다.

차는 미국과 인연이 깊다. 미국 독립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보스턴 차 사건’(1773)으로 생각된다. 영국 정부가 중국차를 통해 식민지 미국인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분노한 미국인의 저항이 독립전쟁으로 연결됐다. 미국은 독립(1776) 후 드디어 중국차를 직수입할 수 있게 돼 최초의 무역선 ‘중국 황후호(The Empress of China)’를 중국에 파견(1783)함으로써 본격적인 중국무역에 뛰어들었다.

난징조약 후 광동 13행은 해체되고 홍콩과 상하이가 중국무역의 새로운 중심이 됐다. 우빙젠은 아편전쟁의 충격으로 홍루몽의 대관원 같은 자신의 별장에서 병사했다. 영국 상인 자딘과 매시선은 우빙젠의 ‘이화행’을 이어받아 ‘이화양행’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 지금도 홍콩에 건재하고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위시하여 홍콩에 거대한 기업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이화양행의 로고가 아편의 양귀비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한때 중국인의 분노를 자아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양귀비꽃이 아니고 자딘과 매시선의 고향 스코틀랜드 들판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야생화 엉겅퀴이다. 나비도 벌도 오지 않지만, 홀씨가 돼 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다니면서 스스로 뿌리를 찾아 나선다는 엉겅퀴는 가난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극동 아시아에서 뿌리내린 자딘과 매시선의 이화양행에 어울리는 로고인지 모른다. 

필자소개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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