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박원순 시장의 죽음
[이계송칼럼] 박원순 시장의 죽음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0.07.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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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 하면 고국으로부터 애석한 죽음(자살)의 소식을 접한다. 이번에는 대통령감이 그랬다. 나라의 동량들이 귀중한 목숨을 한순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질까? 정치 과잉의 사회, 또 하나의 진영논리라고 냉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청년 시절부터 박원순을 꽤 괜찮은 휴머니스트로 생각했다. 인권변호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을 창립, 뉴욕지부까지 만들어 활동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그를 특히 눈여겨보기 시작했었다. 서울시장이 되었을 때는 아주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그리고 이렇다 할 큰 대과 없이 3선 시장으로 시정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더 큰 일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자살의 원인이 미투 관련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다는 등 다양한 추측들이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가 너무도 가볍고,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 운영 같은 따뜻한 이웃사랑에서 출발한 그의 선행도 결국은 자신의 명예와 출세를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죽음은 지도자로서 국가에 대한 무책임도 무책임이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가족윤리를 저버린 잘못에 있다. 가족사랑 말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어찌 ‘미안하다’란 한 마디로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독종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가족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 박 시장이 휴머니스트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이 흔히 거창하게 얘기하는 이웃사랑, 민족 사랑, 인류애란 사실상 따지고 보면 별것이 아니다. 공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방대하고 추상적이다. 그것은 말, 느낌, 감정, 머릿속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멋진 가치를 갖고 있고, 멋진 태도이며, 기분은 좋은 것이고, 대단히 쉬운 것이다. 칭찬 받기 위한 것일 수 있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다 할 수 있고, 또 누구에게나 실제로 그런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한시라도 내가 귀찮거나 바빠지면 멈출 수도 있고 안 해도 되는 것이고, 평생 책임으로서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 시장이 팽개쳐 버린 가족사랑은 전혀 다르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사랑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쉽지 않다. ‘나는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과 내 옆에 있는 사람, 나를 귀찮게 하는 이웃을 증오하지 않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 감각으로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은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불굴의 용기와 인내는 물론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고려대 석영중 교수가 전해준 도스토에프스키의 ‘사랑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가족은 박 시장에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일보다 자기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더 가치가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가족은 자신의 출세를 위한 희생의 제물에 불과했던 것인가? 이런 물음은 박 시장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도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이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놓을 때가 왔다. 그가 누구든 국가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가족을 가볍게 여기는 좌파적 풍조의 유물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는 다름 아닌 우리가 청산해야 할 또 하나의 구세대의 착취적 산물일 뿐이다. 그것이 곧 자신의 출세와 명예만을 중히 여기는 이타를 가장한 이기적인 위선자들을 만들어내는 악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남겼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가 생전에 실수를 저질렀다면 용서를 구하고 죗값을 치른 후 다시 일어나 더 열심히 사회에 봉사하며 사는 것이 옳았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또한 정치인으로서 그의 의무였다. 더구나 그는 민초들이 키운 국가적 인재가 아닌가? 그의 죽음 자체가 국가적 대손실임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비슷한 케이스의 안희정을 보라. 안희정이 가족에 대한 의무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죗값을 치른다면, 그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선진국 대열에 선 나라, 이제 정치인의 자격과 선출 기준도 달라질 때가 되었음을 또한 강조한다. 인권변호사 같은 명성이 아니라, ‘아름다움재단’ 운영 같은 선행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인가가 최우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선진국 정치인들을 보라. 모범적 가족사랑의 모습을 애써 알리며, 자기야말로 진정한 리더라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아내의 취미생활을 돕기 위해,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미련 없이 장관직을 중도에 그만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아침 출근전 남편의 밥상을 반드시 챙겨주는 것을 하루 일과의 주요 의무로 삼았다는 얘기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가족사랑을 공직에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라고 할 것이다. 

기원전 고대 아테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도 일찍이 설파한 바 있다. “자기 가정을 훌륭하게 다스린 자는 국가의 일에도 가 치있는 인물이 된다”고 말이다. 사실, 가정을 지키는 일이 국가를 지키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정치의 최종 목표가 가정과 가정생활의 안전과 질적 향상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인 오소백은 “세계 속에 가정이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실은 가정 속에 전 세계가 들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왕이건 농부이건 가정에서 그 기쁨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괴테의 말도 이와 괘를 같이 한다.

박 시장이 사랑하는 가족,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가족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사정이 무엇이었을까?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까? 그의 죽음을 인간적으로 백방으로 이해하고 동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만, 그의 죽음을 결코 미화하고 싶지는 않은 여러 이유를 들어보았다.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죽는 것처럼 이기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속죄의 길도 아니고, 명예를 지키는 길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인식이 우리 사회에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이 기회를 통해서 다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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