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53] 상하이(上海)의 미련
[유주열의 동북아談說-53] 상하이(上海)의 미련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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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스노(1905-1972)는 1930년대 중국 섬서성 옌안(延安)에 칩거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당시 장개석 국민당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마오쩌둥 및 저우언라이의 소재를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책은 장개석의 부패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국 젊은이들의 옌안행을 촉발시켰고 후에 마오쩌둥의 부인이 된 장칭도 그중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에드거 스노는 미국 캔자스 출신으로 대공황 직전에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섰다. 그가 중국에 먼저 발을 디딘 곳은 상하이였다. 동서고금의 매력이 혼재된 상하이는 에드거 스노를 빨아들였다. 그는 더 이상 세계여행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상하이에서 자신의 전공인 저널리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상하이 주재 미국영사관에서 근무하는 헬렌 포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헬렌 포스터는 에드거 스노가 옌안에서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 김산을 인터뷰하여 님 웨일스의 필명으로 「아리랑의 노래」를 출간했다.

에드거 스노를 푹 빠지게 한 상하이는 동서양이 만나는 국제도시로서 당시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 중심지였다. 한때 미국 최고의 하버드 대학 졸업자가 미국 외 가장 많이 일하면서 거주하는 곳이 상하이였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의 돈과 사람을 끌어모아 ‘동양의 파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베이징의 대사관 근무 시 출장 또는 휴가 등을 이용하여 상하이에 수없이 내려갔다. 딱딱한 관료 분위기의 베이징과는 달리 상하이 공기는 자유롭게 느껴지고 쉽게 올드 상하이의 역사 속에 빠져들었다.

상하이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청조)이 1842년 난징조약으로 개방한 작은 어촌이었다. 이 어촌은 영국을 위시한 서방 세력들이 조차(임차)하여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상하이 조계지는 여권도 비자도 필요 없는 중국 속의 외국으로 1949년 신중국 건국 시까지 15만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 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도 조계지 안에 수립됐다.

상하이에 도착하면 와이탄(外灘) 난징루(南京路)의 ‘사순 하우스’를 찾는다. 지금은 허핑(和平)호텔의 북루인 페어몬트 피스 호텔 건물이다. ‘사순 하우스’는 청동색 원추형 지붕을 가진 10층 건물로 황푸강을 오르내리는 선박의 등대 역할을 했을 정도로 멀리서도 눈에 띈다.

1920년대 말 건축된 아르데코(장식풍) 스타일의 이 건물은 동양의 로스차일드라는 별명이 붙은 유대계 재벌 빅터 사순(1881-1961 Victor Sassoon)이 지었다. 당시 중국을 의미하는 ‘캐세이’라는 이름으로 동양의 최고급 호텔로 개업하여 찰리 채플린, 조지 버나드쇼 등 세계 일류 명사들이 다녀갔다. 상하이의 랜드마크였던 이 호텔의 10층 펜트하우스는 사순 가족이 거주하여‘ 사순 하우스’로 통용됐다.

1930년대 상하이는 동양의 재즈 메카로 알려질 정도로 재즈가 크게 유행했다. 사순 하우스의 1층 재즈바를 위시하여 시내의 수많은 나이트클럽에서 댄스 뮤직으로 재즈가 흘러나왔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발상되어 1920년대 재즈 에이지를 통해 미국에서 유행된 재즈가 지구의 반대편인 상하이에서도 대인기였다. 두 도시가 미시시피강과 황푸강을 낀 하항(河港) 도시로 북위 30도 선에 놓여있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프리카 고향을 떠나 애달픈 생활을 하는 미국 흑인들의 정서와 상하이 드림을 쫓아 전쟁을 피해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정서가 통했는지 모른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1930년대 상하이의 골든 에이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태양의 제국’ 그리고 우리 영화 ‘암살’ 등이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중 나에게는 상하이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추억의 영화가 있다. 2005년도 제작된 ‘상하이의 백작 부인(The White Countess)’이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는 혁명 세력과 반혁명 귀족 세력 간의 적백(赤白)내전이 일어났다. 귀족 세력은 혁명군에 밀려 시베리아를 거쳐 중국의 동북지방 하얼빈에 다수 이주했다. 일부는 상하이로 내려와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피아라는 백작 부인은 남편을 잃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재즈가 흐르는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이 찾으면 춤을 같이 쳐 주는 택시 댄서로 일하고 있었다.

이 나이트클럽에 토드 잭슨이라는 전직 미국 외교관이 찾아온다. 그는 윌슨 대통령 휘하에서 베르사유 조약 체결에 관여한 유능한 외교관이었으나 불행하게도 폭탄테러를 당해 부인과 딸을 잃고 자신은 부상으로 장님이 됐다. 그는 상하이에서 사교클럽을 운영하고자 하는 꿈이 있어 전 재산을 경마에 베팅하여 그 상금으로 작은 나이트클럽을 경영하고 있었다. 토드는 소피아를 설득 자신의 클럽에 마담(principal hostess)으로 고용하고 클럽의 간판도 ‘화이트 카운티스(백작부인)’로 바꾼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 각본을 쓴 사람은 일본 태생의 영국인 이시구로 가즈오(石黑 一雄)다. 이시구로는 일본 나가사키 출신으로 5세 때 영국 해양연구소에 취직이 된 해양 물리학자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이주했다. 영국에서 자라면서 작가로 성공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35세 때인 1989년 발표된 소설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부커상을 받았고 2017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됐다. 이 작품은 영국의 귀족 달링톤 경의 대저택에서 20년 이상 일해 온 집사(butler)의 시선을 통해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근대와 현대가 교차되고 가치관의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세계에 군림했던 대영제국 몰락의 초라한 모습과 새로 부상하는 미국의 위용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아있는 나날」은 미국 영화계의 거장 제임스 아리보리 감독이 1993년 안소니 홉킨스를 집사역으로 하여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각 분야에서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로 선정되는 등 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로 아이보리 감독과 이시구로의 조합이 성공하자 10여년 후 다시 만든 것이 ‘상하이 백작부인’이다. ‘남아있는 나날’이 1930년대 영국의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그 무렵 동양의 마도(魔都) 상하이를 배경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작가 이시구로는 1930년대 상하이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가 당시 상하이에서 비즈니스를 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어릴 때부터 상하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지 모른다. 

이 영화를 만들 때에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뉴욕 무역센터 공격으로 미국이 중동전에 적극 개입하여, 많은 사람이 전쟁을 피해 고향으로 떠나 난민(refugee)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쟁터가 됨에 따라 전쟁 난민이 몰려든 1930년대 상하이 사정과 유사해 보였다.

이 영화는 세트장이 아니고 현지 상하이에서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아이보리 감독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의 뒷골목을 구석구석 누빈 것은 난민 문제는 과거에 끝난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문제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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