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샌디에고, 수 억 겁의 인연이 쌓인 땅
[Essay Garden] 샌디에고, 수 억 겁의 인연이 쌓인 땅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0.07.2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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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한 나이에 은퇴한 후 남편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초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처음으로 탔던 미묘한 감정들. 또한 지금의 현대식 공항, 유리 집 빌딩과 달리 활주로에 내린 우리를 비행기 가깝게 걸어와 맞이해 준 25년 만에 만난 언니와 미국인 형부.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공항을 빠져나와 작은 아치 모양의 다리가 있는 163번 숲길 고속도로. 자기 영어 이름 석 자와 알파벳 정도만 알고 온 딸은 어느 사이 이곳 대학에서 우리나라 역사가 포함된 인문계열의 한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으니 참 세월은 빠르다.

긴 세월 살고 있는 이 땅과의 인연을 뒤돌아본다. 사실, 겨울 동안의 우기를 제외하면 샌디에고의 날씨는 일 년 중 거의 맑은 태양과 푸른 하늘이다. 귀여운 새들의 합창소리로 아침을 여는 작은 행복. 나는 이웃 산의 정상에 오르면 멀리 코로나도 다리와 인근 호수가 보이는 오래된 동네에 살고 있다. 가끔 친구와 지인들이 찾아와 “참 좋은 곳에 사시네요” 라는 말을 들었지만, 당시엔 아름다운 바다도 가보지 못하고 살기에 급급하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학창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였지만, 잊어버려 벙어리로 살아왔던 나의 이민 초기. 집 근처 한인이 운영하던 옷가게와 샌드위치 가게에서 잠시 일해 본 후, 난 딸의 중학교에서 수학보조교사를 했다. 일하면서 미국학교의 환경과 문화충격의 현장을 보며 딸의 답답한 마음의 고통을 눈물로 이해하던 지난 시간들. 그 후, 나는 대체 보조교사로 배정된 시내 학교를 찾아다니며 운전 실력을 기르며 교육자로 다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가족에게 위급한 상황들이 연달아 일어났기에 난 그런 꿈도 접어야만 했다. 작은 수입으로 알뜰한 살림을 꾸리기로 작정한 후, 여태 이 집에 살고 있다. 늘 마음 한 구석엔 고국의 향수에 빠져 살면서, 뉴욕의 9/11 사태가 나고서야 드디어 우리는 미국 시민이 되었다.

오래전, 나는 군함이 순항하다 들렸던 샌디에고의 연중 온화한 기후에 반하여 해군들이 은퇴 후 찾아 와 이룬 도시라고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초창기 한인회도 미군남편을 만나 결혼한 한국여인들이 크게 활약했었고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다. 1971년 김병목 의사부부가 라호야에 정착할 때엔 주변 땅이 텅 비어있었다고 전했다. 이민 초기, 세탁소와 술가게를 하여 잘 사는 한인도 많았기에 언니는 장사를 해 보라고 나에게 권했지만 자본도 없고 적성도 아니어서 거절했다. 그동안 한인 유학생과 은퇴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서울, 제일 등의 한인 마켓들이 있다 사라졌고, 구멍가게였던 시온 마켓은 대형마켓으로 변했다. 지금은 H마트가 두개나 들어와 한국산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정말 우리는 살맛이 난다.

하루는 직장인이던 딸이 한국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며 모국으로 돌아갔다. 마침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라 나에게 자유로운 시간들이 찾아왔다. 대학 때부터 틈틈이 쉬지 않고 쓰던 글쓰기가 여고친구(국효문 교수)의 권고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문학 강좌(성기조 시인)를 듣던 인연으로 등단했고 3권의 수필집을 냈다. 두 번째 수필집 출간 후로 고정 칼럼을 쓰게 되었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나와 우리 동네는 그대로인데, 유명한 관광지인 항구도시 샌디에고는 지금 많이 변했다. 1980년대에도 동서로 뻗은 8번 고속도로 주변은 빈 땅들이 많았다. 내가 사는 동안 근사한 패션 벨리 쇼핑몰이, 그 주변에는 새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뻗어있는 샌디에고 카운티엔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다. 미국 각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사람들도 온화한 기후에 반해 이사 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길가에 서 있는 대형 광고판을 보면서도 난 실망한다. 도박장이 여러 지역에 있다고 들었지만, ‘V 카지노로 놀러오세요’라는 문구가 언제나 슬프다. 한인 중에는 남편의 연금, 목돈을 홀랑 써버린 여인도 있다. 또, 주민발의 안이 통과되더니 치료제인 마리화나를 언제든지 배달해 줄 테니 구매하라며 선전한다. 현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마음과 세상은 이글거리는 탐욕으로 퇴화되면서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발보아(BALBOA) 파크에는 백 년 전의 기업가인, 스프렉클 형제가 영원히 샌디에고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연주해 달라며 기증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야외음악당(SPRECKELS ORGAN PAVILION)이 자원봉사자들의 운영으로 지금도 건재하며 시민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중앙도서관도 현대식으로 확장되어 이사했다. 최근에는 유일하게 바닷가 푸른 잔디밭 위에 인형 집 같은 상가들이 모여 있는 시포트빌리지(SEA PORT VILLAGE)가 역사 속에 사라지려고 토론 중이어서 나는 매우 불안하다. 서퍼들이 즐기는 델마의 태평양 연안은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로 출입 금지되었다가 얼마 전 개방되었다.

한국이 무척 가난했던 시절, 두 미국인의 도움을 받아 1960년대 의학 공부하러 온 큰 오빠가 솔크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보낸 인연으로 우리 가족이 와 살게 된 땅이기도 하다. 나는 동네 산속에 있는 작은 인디언 샘터를 걸으며 남편에게 가끔 농담을 보낸다. 혹시 수 억겁 년 전에 당신이 인디언으로 여기서 말을 타고 뛰어다녔던 땅이 아니었느냐고. 우리가 이민 오기 전, 텍사스에서 교육을 받고 귀국하면서 들렸던 언니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선택한 도시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이고’ 주필 역임,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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