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최용완의 ‘한반도문화論①’··· 한반도 민족의 정체
[해외기고] 최용완의 ‘한반도문화論①’··· 한반도 민족의 정체
  • 최용완 오렌지카운티 사랑방글샘터 회장 
  • 승인 2020.07.2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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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 남대문 중수공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막 나온 직후였다. 나는 1961년부터 시작하여 2년 반 동안 지속된 숭례문 중수공사에서 도면 책임자로 활동했다. 48장에 달하는 숭례문 설계도를 만드는 한편, 건축에 사용된 모든 부재의 규격을 측정해 그림과 함께 기록했다. 중수공사는 숭례문을 해체하며 도면과 실측 기록을 작성하고 다시 도면을 보며 정확히 복원하는 절차를 통해 진행됐다. 나는 당시 공사 현장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그때 숭례문을 바라보며 약속한 게 있다. 바로 한국 문화의 뿌리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자 나는 50년 동안 연구하고 정리해서 마침내 ‘동아시아는 인류 문명 문화의 어머니’라는 역사 에세이집을 지난 5월에 출간했다. 대한민국 국보 제1호 남대문과 약속한 그 마음 하나로 50년 간 고심한 끝에 책을 집필했다. 

한반도 민족은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한반도에서 시작된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2008년 숭례문 화재사건을 집에서 TV로 보며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부재 실측 기록과 중수공사 보고서 등을 모두 챙겨 한국으로 갔다. 기초까지 헐어내고 다시 지을 때 만든 자료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책을 쓰는 동안 세상이 백인 우월주의 착각 속에서 역사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과거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전혀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세계를 이끌어갈 마음을 챙기고 다짐해야 아는 때다. 

현대 인류의 세계 분포도가 발표된 것은 2008년이다. 과학자들이 인류의 혈액에서 유전인자의 시간과 연관을 찾아내어 만든 것이다. 인류의 고향 아프리카를 떠나서 6만년 전부터 동남아시아에 머물며 언어가 발달했다. 고고학 발굴유적이 나와 이를 뒷받침했다.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6만년 전 인류 유적이 발굴된다.

5만년 전경에 한반도에 이르렀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길러서 가을에 수확하는 농사짓는 생활 방법을 찾아냈다.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류의 능력도 커져갔다. 호남에서 시작한 한반도 민족이 만주에 이르러서는 개, 말, 양, 염소를 기르며 목축 생활을 시작했다. 한반도에 널리 퍼진 고인돌 문화는 열린 바닷길 따라 유라시아 대륙으로 옮겨갔다. 고인돌은 조상의 신전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인돌 문화인들은 한반도에서 초가집 짓고 갈대와 짚을 엮어 배를 만들었다. 물 위에서 생활하는 짚배 마을은 최근까지 호수나 바다에서 볼 수 있었다. 짚배를 타고 강 하구마다 찾아가며 마을을 세웠다. 강 하구마다 농지를 찾아 개척해 나갔다. 

한반도 인류 삶의 문화는 강 하구마다 나타났다. 한반도 북방과 만주 지역을 이주하며 흔한 석탄을 모아 석탄불을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무 불에 의존하다가 처음으로 석탄불의 고열을 찾았다. 석탄불로 질그릇을 구워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빗살 무늬 토기 마을은 몽골, 티베트를 지나 동유럽에 전해졌다. 

한반도에서 시작한 농사짓는 문화는 1000-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남단에서 이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곡식과 질그릇이 발굴됐다. 농사짓는 고인돌 마을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창, 화순, 강화에서 보여주는 고인돌의 호남지역 발생과 성장 과정은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다. 

한반도 안에 3만여 개 고인돌 유적이 있고 한반도 주위에 1만여 개 그리고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9만여 개의 고인돌 유적이 남겨져 있다. 영국 런던 외곽에 스톤헨지는 약 2,500년 전에 세워진 가장 최근의 고인돌 유적이다. 막걸리 술과 소금에 절인 김치, 여러 가지 젓을 비롯한 호남 음식은 겨울 동안 음식을 저장하는 가장 오래된 음식문화이다.

금속 도구를 사용한 금속시대는 요하 지역의 고인돌 마을에서 시작했다. 금속 도구로 호미와 쟁기를 만들면서 농업이 발달하고 인구의 증가는 더욱 빨라졌다. 인류는 석기시대를 벗어나서 금속시대의 문명을 이곳에서 맞아 시작했다. 소가 끄는 쇠쟁기와 소가 끄는 쇠바퀴 수레가 등장했다. 

금속 도구로 석굴을 파서 조각하고 옥돌을 다듬기 시작했다. 만주와 몽골 초원에 수없이 많은 바위에 음각화를 그렸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에 뜻이 전해지고 문자로 발달하여 인류의 문명이 시작했다. 고조선 문화로 알려지며 남쪽에서는 하상 나라들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흉노와 몽골로 이어졌다.

고조선의 뒤를 따라 고구려가 요하의 영토를 지켰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홍산문화의 뒤를 이어 세계적 최강국으로 성장했다. 요하는 압록강으로 불리고 요하의 동쪽에 고구려의 도읍 평양이 있어 동아시아 역사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한반도 남단에서 요하를 찾아간 한반도 민족은 중국의 동해안과 일본, 대만, 월남, 필리핀을 영토로 해양민족이었다. 오늘날의 몽골, 월남, 일본, 중국 대부분의 동아시아 사람이 한반도에서 시작했다.

홍산문화 민족은 인더스 강에 이주해 가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을 일으켰다. 더 서쪽으로 이주해 가서 수메르(Sumer)문명을 시작했다. 고구려 문명은 이집트로 전해져서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세우고 투탄카멘의 황금기를 이뤘다. 요하문화는 옥돌 조각 문명을 남기고 남쪽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하나라와 상나라 문명이 나타난다. 상나라의 청동문화는 세계 여러 나라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훌륭한 청동문화를 남겼다. 요하문명은 중미에 전해져서 마야와 아스택 그리고 페루문화로 이어졌다. 북남미 대륙의 원주민은 한반도 민족의 언어와 생활 풍습이 유사한 한반도 민족이다. 

필자소개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화재 전문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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