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거꾸로 살아가는 삶
[해외기고] 거꾸로 살아가는 삶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27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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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화두가 하나 떠올랐다. 만약에 사람이 먹어가는 나이의 삶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 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늙어가는 일반적인 생물 현상을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늙은이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점점 젊어지는 삶을 살다가 갓 태어난 아기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이 가상적인 이야기는 영화 ‘벤자민 버턴의 흥미로운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의 내용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벤자민(Brad Pitt)은 갓 태어났을 때는 80대의 주름살투성이 노인의 모습을 한 채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자라면서 머리 지능은 어린 나이에 맞게 성장해가며 몸은 점차 젊은이의 외모로 변해간다. 그는 40대의 모습으로 또 어느 시간대에서는 30대와 20대 그리고 10대의 어린이로 변모되어 가는 기적 같은 일을 겪는다. 주인공 벤자민은 40대에 한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또한 3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자신이 50대의 외형을 지녔던 시기에 만났던 어린 소녀가 20대의 매력적인 발레리나가 되어서 우연한 재회를 하며 깊은 사랑에 빠져들기도 한다.

벤자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자신의 특별한 질병에 절망하며 아기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전 재산을 남겨놓고 모터바이크를 탄 채 혼자만의 긴 여행을 떠나 버린다. 여자와 아기는 세월을 받아들이며 나이를 먹어가고 남자는 20대 초반의 어린 모습으로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지만 사랑하는 남편이며 딸의 아빠이기도 한 그 남자의 후퇴하는 삶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듬어 안게 된다. 그녀의 품 안에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는 마지막 모습이 주인공 벤자민의 거꾸로 살아온 인생 여정이다.

이 영화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한편의 픽션이라고 지나치기에는 강한 전달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하얀색의 원처럼 순수함을 지닌 채 이 세상에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는 절대로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현실 속에서 나이를 먹고 수명을 다하게 되어있다. 어느 누구도 벗어버릴 수 없는 제 무게를 어깨에 메고 정해진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벤자민은 방황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서 인도로 간다. 그것은 나를 찾아서 떠나는 길이며 삶의 여행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죽음을 해탈한 부처의 나라에서도 아무런 해답은 찾지 못한다. 바른길로 걸어왔든지 또는 반대로 살아온 길이든지 간에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시간의 정리가 필요한 것뿐이다.

거꾸로 가는 삶에 대한 화두를 어느 스님에게 던져보았다. “사람은 변화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생기기 때문에 삶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어깨가 눌러지는 무거움 때문에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답을 내려주었다. 내가 가야 하는 앞길의 여정에 직선보다는 곡선의 느긋함을 찾아가는 여유를 누리고 싶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한다. 그냥 사는 날까지 따스한 가슴을 잊지 않고 살도록 노력해 보는 거다.

딸아이가 휴가 중에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의 말레니에서 개최됐던 세계적인 예술 축제인 Woodford Art Festival에서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 일을 하고 돌아왔다. 현관을 들어서는 딸을 보니 마치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일 년쯤 갔다 온 모습이다. 산속에서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구속되지 않은 자유 속에서의 질서를 지키며 많은 것들을 마음 안에 담아 온 듯했다. 십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축제에 참석했으며 국제적인 행사로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창조적인 공연을 선보이며 풀밭에 앉은 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분명 거기에는 진실하고 부끄러움 없이 노출된 자연인들의 삶이 드러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이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 누구보다도 실감할 수 있다.

딸이 찍어온 K씨(한국에서 온 근육 마비 신체장애인 행위 예술가)의 공연 동영상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내 몸이 자유롭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늘을 날아서 가고 싶다.” 딸아이는 페스티벌이 끝나고 그 예술가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집에 초대해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온몸이 마비되어서 식사도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반찬을 덜어서 밥 위에 올려주는데 말로 표현하지 못할 뜨거운 감정이 울컥하니 치밀었다. 그 몸으로 행위 예술을 하는 작가, 그는 그렇게 혼자 우드포드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한국의 예술을 전 세계인이 모인 자리에서 선보였다. 붓을 입에 물고 가슴으로 쓰는 시를 하얀 실크 천에 힘차게 써내려 가는 그의 예술혼이 느껴졌다.

행위 예술가들은 그들의 가슴속에 담긴 끼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며 관중들과 말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예술은 영혼이 메말라 가는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신선한 충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해준다.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만남은 육체가 서로를 보기도 전에 영혼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다.”(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중에서.) 만약에 거꾸로 가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함을 먼저 가슴 안에 품어야 하지 않을까....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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