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율 칼럼] 대한민국 국력 강화법 
[이승율 칼럼] 대한민국 국력 강화법 
  •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0.08.1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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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소회

75주년 광복절을 맞으며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 가보고 싶었으나 가족들이 허락지 않으니 싸워 가면서까지 갈 일은 아니라는 비겁한(?) 생각이 들었고, 마침 얼마 전 미국에서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여동생이 일시 귀국했는데, 지방에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후 광복절 전날 상경했다가 광복절 당일에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 동생을 먼저 만나 보는 게 더 급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치과 원장으로 활동 중인 아우네와 함께 모처럼 형제자매가 얘기 꽃을 피웠으면서도, 정치 얘기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국내정치에 이토록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존재였던가? 실은 한밤중에 일어나 이 글을 쓴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내가 애국자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명색이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을 맞은 날인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잠시라도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고 간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끝에 지난해 출판했던 졸저 ‘길목에 서면 길이 보인다’를 꺼내 들고 몇 장을 뒤적이며 읽다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두 기둥, 한미동맹과 한국기독교’란 글에 시선이 꽂혔다. 아! 그렇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두 기둥을 붙들고 가는 길이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솟구쳐 올랐다.

거기에 더하여 이젠 그 두 기둥 위에 ‘린치핀 코리아’란 지붕(한반도중심축국가론)을 올려세우는 일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사명감이 어렴풋이 떠 올랐다.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고 안도감이 생겼다. 그렇다. 사람이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책임을 떠안고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도 이젠 더는 외면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안고 그 짐을 함께 지고 가는 게 국민 된 도리를 다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동맹이 걸어온 길

IT 기술산업의 3대 요소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로 구성된다. 이런 구조적 요소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적용해 본다면, 하드웨어 역할은 단연코 한미동맹이 근간을 이루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1882년 고종이 미국과 수교를 맺었지만, 열강의 세력 판도에 휘둘리다 마침내 일제 강점기를 맞았고, 그 후 해방된 지 불과 몇 년도 안 돼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 연합군의 참전으로 가까스로 나라를 지키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은 중공군과 북한군, 유엔군 간에 정전협정(7/27)이 맺어지자 그 다음 달 미국을 몰아세워 마침내 1953년 8월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가조인)했고 그해 10월1일 공식 조인을 했다.

6·25전쟁 직후,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군사동맹조약은 그 후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기반으로서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과학 기술 등 온갖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되어 주었다. 예컨대 북한 공산주의에 맞서는 굳건한 안보태세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고, 나아가 이를 통해 현대적인 국가 발전과 번영을 꾀하는 동시에 유학 및 기업의 해외 진출 등 글로벌 지평을 열어 가는데 획기적인 도우미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내기까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굴욕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한국군 단독의 북진통일을 고집하고, ‘미국은 한반도를 갈라놓은 배신자, 자유 통일은 미국의 의무’라고 외치며 마침내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여 판문점 휴전회담을 중단시키자 “이승만을 죽이라”라는 처칠과 아이젠하워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일화는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그토록 동맹을 기피하던 미국을 굴복시키고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원조까지 받아낸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과 전략은 그 후 한국을 부강의 길로 이끄는 위대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지금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스스로 한미관계를 ‘린치핀 동맹’이라고 까지 치켜세우며 협력을 구하고 있으니, 실로 감개무량하다. 이는 즉, 소련 해체 후 급부상한 중국이 G2 신냉전을 벌이며 미국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자, 중화주의(中華主義)의 팽창을 저지하고 남중국해 자유항로를 지키기 위해’ 인도-태평양전략(Indo-Pacific Strategy)’으로 미국과 일본의 안보영역을 수호하는 최전선 보루로 한국을 이용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런 도중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반미 정서가 커지고 이에 더하여 반일감정을 국내 여론에 활용하는 등 정치적 이변이 속출하면서 한미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또 하나의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아베 정부가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또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및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 등 악화 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의 여파는 한미동맹에도 심각한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3차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북한 비핵화 및 남북 교류협력 문제를 다루는 입장에서 여전히 많은 이견과 불협화음을 노정하고 있는 것은, 상호신뢰가 생명인 한미동맹의 진로에 어떤 악재를 몰고 올지 자못 크게 염려된다.

더군다나 이번 가을에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방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무슨 일로 한국에 올까? 뻔하지 않은가! 막혀 있는 북한과의 중간 통로 길을 열어 주면서 한미 간 간극을 더 크게 벌려 놓으려는 의도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감히 묻건대, 진정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은 과거로 회귀하여 중화제국의 들러리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현 정부가 처하고 있는 여러 가지 대외적인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라도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길에 제동이 걸리거나 국가 안보적 근간을 흔드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한국기독교의 성장과 근황

구한말 한미수교가 있은 지 3년 후인 1885년 4월5일 부활절 아침, 해외 선교사로선 처음으로 언더우드(미국 장로회)와 아펜셀러(미국 감리교)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했다.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을 위시한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일제 강점기 및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어렵게 동고동락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발휘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신사회 기풍과 희망을 진작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사항은, “한국은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나라다”라는 점이다.

중국의 ‘아편전쟁’을 한번 비교해 보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상대국을 파탄에 빠뜨린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반면에 한국(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낡은 관습과 탐관오리의 만행에 신음하고 있는 민중을 계몽하고 구제하기 위해 교육(학교 설립)과 의료 지원(병원 설립) 및 빈민층 구제(보육원, 사회복지관 설립) 활동에 치중하는 한편, 공개적으로 일제의 폭정과 비리에 저항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이 너무나 컸다. 또한 이후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는 가운데 자신의 안전을 불사하고 피난민을 돌보면서 온 세계를 대상으로 구호와 원조의 손길을 끌어오는 등 눈물겨운 첨병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한국과 한국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적 본분에 충실한 복음주의 선교 활동을 실천한 것이다.

이것이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한국을 급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즉 이들의 협력에 힘을 입은 한국 각 계층의 리더들(특히 정치, 교육, 경제, 의료, 문화, 기술 분야 지도급 인사들)이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계가 추진하는 각종 사회봉사 및 구제 활동에 참여했으며, 또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기독교에 입문하는 등 한국 사회 전반에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를 이룸으로써 급기야 세계에 유례없는 교회 성장과 기독교 부흥을 가져온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선교사들로부터 제자 훈련을 받거나 국제 선교단의 지원을 받은 한국 교역자 및 기독 단체들의 수고와 헌신은 말할 것 없이 컸고, 또한 국가 행정적 차원에서도 많은 혜택과 지원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아무튼, 구한말 한미수교와 함께 전래해온 기독교의 선교 활동을 통해 서구식 신교육과 의료 및 빈민층 구제사업에 힘입은 바는 세계선교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한국기독교는 그 후 시대사적 변천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대한민국 역사 발전에 때로는 저항하면서, 때로는 선도적으로 참여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성장이 ‘기득권의 덫’에 걸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쳐 있다.

교회의 대형화, 조직화, 난립 분파 현상에 따른 부작용으로 점차 그 본질적인 복음주의 정신이 쇠퇴하고 물질만능주의와 정치사회적 권력에 편승하는 경향에 빠져들면서 한국기독교 전체가 무기력해지거나 불량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영적 타락과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한국기독교의 위기는 오늘날 현 정국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부터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보수 측(우파)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를 여러 군데서 들었다. 그리고 각 교회의 목회자와 중진들 가운데는 진보 측(좌파) 인사들도 많이 포진해 있다는 게 또한 각 교단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적 본질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한마음의 신앙공동체로 뭉쳐 있어야 할 교회가 정치적 이념편향과 진영논리로 좌우 대립양상을 보이며 혼재해 있다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결국, 지금의 한국교회는 한마디로 말해, 종교적 예배를 제도화해 놓은 사회단체의 하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한반도중심축국가론(‘린치핀 코리아’)의 의미

‘린치핀(Linchpin)’은 수레나 자동차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고정하는 핀으로 오바마 정부 때부터 한국을 지칭하는 외교 용어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린치핀 코리아’는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공동번영의 중심축국가로 우뚝 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에서 동일 제목의 책(공저)을 출간한 지 이제 약 5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의 세미나와 포럼을 거치면서 많은 지식인과 대학 및 관련 (연구) 기관으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 14명의 전문가가 6개 분야(여섯 개의 축)에 집필진으로 참여하여 1년여 동안 심층 토의와 치열한 논쟁을 거쳐 배태한 국가전략서라고 할 수 있다.

집필진 가운데는, 소위 말하는 진보 측 인사도 있고 또한 보수 측 인사도 있으며 이 두 진영을 소통시키며 합목적적인 대의를 이끌어 내고자 애쓴 중도적 인사도 함께 참여해 있다. 나는 재단의 대표자로서 늘 제3의 중도적 입장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국가전략을 이끌어 내고자 애를 써온 셈이다.

이 책의 구성은 서문과 6대 추진 전략, 정책 제안과 한반도 중심축 추진 로드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핵심 부분인 6대 추진 전략은, ‘한미동맹과 다자안보 병행’, ‘북핵 폐기’,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한반도 물류중심축 구축’, ‘평화협정 체결 및 법체계 정비’, ‘갈등구조 해소와 통일 교육’ 등으로 짜여 있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대한민국이 동북아 주변국 간의 국제협력(한미동맹과 다자안보협의체)을 기본 틀로 삼아 이 기초위에 북한 핵 폐기에 상응하는 뉴딜(New Deal)정책을 도입하여 남북경제공동체와 같은 융합형 신경제물류체계(New Normal Economic System)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지경학적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구현함으로써 명실공히 한반도가 북극항로의 확장과 더불어 동북아지역의 평화 및 번영에 중심축 역할을 하도록 이끄는 콘텐츠의 집적체 ‘한반도중심축통일국가전략서’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너무 거창해졌는가? 그러나 나는 이 국가전략적 대안을 기꺼이 수용하고 신뢰한다. 우리가 아무리 좌 진보, 우 보수로 나뉘어 싸운다고 해도, 결국 한국과 한반도를 못 떠나고 한솥에서 밥을 먹고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적 한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설사 정권이 바뀌고 이념적으로 각 진영 간에 논리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정(process)상에 서로 양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수월성의 문제일 뿐 우리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국가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차제에 서로 각자의 한계(’이념과 진영의 덫’)를 한번 뛰어넘어 보자. 그래서 토론의 큰 마당을 열어 놓고 진보, 보수 양 진영의 선수들이 나와서 1년이 걸리든지 아니면 그 이상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치열한 논쟁과 심층 토의를 거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앞에 도래한 이 동북아시대를 선용하여 한국과 한반도가 중심축 역할을 해낼 수 있겠는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남북한이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이루며 한민족 천년대계를 준비하는 길이 되겠는지, 공개적으로 페어플레이하면서(정치적)목숨을 걸어놓고 치열하게 논의해 보자. 그리고 마침내 국민과 양 진영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결론이 도출되면 뒤돌아보지 말고 그 결론을 부여잡고 한마음으로 새 시대를 맞이해 보자.

청와대에 문이 열려 있고 대통령의 집무실에 창이 열려 있다면 이 건의를 한번 진중히 받아들여 주기를 부탁한다. 그것이 또한 청와대의 직무와 대통령의 장래를 위해 국민에게 칭찬받고 추앙받는 길이 될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시대는 지나가고 인걸은 사라지지만 그들이 남긴 족적은 결코 후대의 평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형 국력 강화법(K-power)

한밤중에 일어나 곰곰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성경에 두 기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 입구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개의 놋 기둥을 세운 사건이다. “그가 세울 것이다”라는 뜻의 ‘야긴’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의 ‘보아스’라는 의미가 있는 두 기둥을 성전 입구에 세워 힘(국력)을 다해 성전을 지키고 떠받들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적 근간을 이루는 한미동맹을 생각하면, 이는 국가의 뼈대를 세우고 체제를 안정화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로서 ‘야긴’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 피가 통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적, 정신적 능력으로서 한국기독교가 미친 소프트웨어 기능은 ‘보아스’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두 기둥이 신생 대한민국이라는 국민의 집(國家)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떠받들어 온 실체였다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는 심령으로 결단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앞으로 한미동맹이 한국과 한반도를 동북아의 중심축으로 세우고 지켜주려면, 유럽 안보를 지켜온 나토(NATO) 형의 다자외교안보 시스템을 도입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고 이를 시금석으로 삼아 남북한경제공동체 기반을 조성하면서 장차 한반도 전체가 동북아경제협력체(동북아 FTA)의 중간 물류거점지역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관건이 되리라 본다.

이런 ‘Big Thinking’이 앞으로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이 지역에서 전체주의적인 중국의 패권 추구를 제어하고, 자유문명사회를 구축해나가는 바탕이 될 것이다.(’Communist China and the Free World’s Future’, 폼페이오 장관 연설문 참조) 이 점에서 미국은 ‘아시아를 향한 더 큰 포괄적 구상’이 주어져야 할 것이고, 현 정부는 친중 성향의 한계를 벗어나 한미 간, 한일 간에 더 진취적인 ‘전략적 신동반자관계’를 확립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기독교(한국교회)는 그동안의 독선과 ‘기득권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심령으로 결행해야 한다. 제도화되고 도식화된 옷을 찢고, 영적으로 나태해진 마음을 찢어 복음의 생명수 샘이 터져 나오도록 모든 세속적, 이념적인 울타리를 걷어 내야 한다. 초대교회의 순박하고 순전한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가 거기서 주어지는 말씀의 능력으로 약한 자를 돌보고 소외된 자를 위로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감화로 정치사회적 균형을 지키는’ 신뢰받는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결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는 신실한 종이 되어 이 나라의 국운을 지켜야 한다. 두 번 다시 이념편향과 진영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깨어 일어나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고 나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이상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를 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한민국의 하드웨어 기둥 위에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다자외교안보의 깃발이 높이 휘날리고, 한국사회를 새롭게 혁신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기둥 아래로 ‘한국기독교(한국교회)’의 진정한 참회와 갱신의 혈류가 하수같이 흐를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날의 여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그때 우리 다 함께 모여 ‘더 큰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선진국)을 위해 이 두 개의 기둥 위에 ‘린치핀 코리아’라는 새롭고도 웅대한 비전, 즉 21세기 신한국시대를 이끌고 갈 거대한 콘텐츠 지붕(한반도중심축국가론)을 올려세워 보자. 그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 땅을 통치하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빛이 삼천리 강토 위에 정오의 태양처럼 임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도록 기도하자.

’삼위일체형 국력 강화법’이란 이런 믿음과 희망 위에 피어나는, ‘합력하여 이루는 선(善)’으로서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아! 이런 ‘합력의 힘(K-Power)’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다음 세대들이 21세기 신아시아시대를 이끌며 달려가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제2의 광복, 그 찬란한 통일과 번영의 그 날을 향해 나아가는, 21세기 초일류국가의 고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그 위대한 청년들의 행군을 어서 속히 보고 싶다. 

필자소개
연변과학기술대학, 평양과학기술대학의 대외부총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장 역임
현 참포도나무병원 이사장, 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 북경대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중앙민족대학 민박동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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