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서 ‘2차대전과 한반도해방 75주년 기념 학술회의’ 온·오프라인 개최
모스크바서 ‘2차대전과 한반도해방 75주년 기념 학술회의’ 온·오프라인 개최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0.09.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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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과 한반도해방 75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학술회의가 온라인가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됐다.[사진제공=모스크바 프레스]
‘2차대전과 한반도해방 75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학술회의가 온라인가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됐다.[사진제공=모스크바 프레스]

全러시아고려인연합회가 지난 8월28일 모스크바민족회관에서 ‘2차대전과 한반도해방 75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학술회의를 열었다.

주러한국대사관과 모스크바프레스가 후원한 이날 학술회의에는 알렉산드르 보론쵸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학과장, 김영웅 고등경제대 교수(전 소련연방의회 의원), 니콜아리 부가이 한국학 학자, 김 안드레이 全고려인연합회 모스크바지역위원회 위원장, 텐 발렌틴 고려인신문 편집장, 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전 모스크바한인회장) 등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여했다. 학술회의는 줌(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모스크바 프레스에 따르면 행사 진행을 맡은 김 모이세이 全러시아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문화학자)는 “올해는 역사적인 한러수교 30주년과 한반도해방 75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라며, “예상치 못한 코로나 확산으로 한러 양국 간에 준비됐던 거의 모든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학술회의가 진행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첫 번째 발표자 알렉산드르 보론쵸프 교수는 “한반도의 해방에 소련의 역할이 컸음에도 남한은 미국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북한은 스스로 힘으로 해방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진공전에 참여해 전사한 소련군 병사 1400여명을 위한 묘지가 평양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반도해방에 대한 소련의 기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련군과 일본군의 교전 후에 해방된 지역들인 원산, 청진 등 북한 여러 곳에서도 소련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당시 미국 측은 소련군의 참전이 없었으면 대 일본전은 길게는 2년 가까이 더 지속되면서 미군 희생자가 약 100만명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소련의 대 일본전 참전은 그 어떤 영토적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었고 미국의 적극적인 요청에 동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항복 결정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소련군의 참전 선언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던 중국과 한국에 대한 진공작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영웅 교수는 소련은 대독일전쟁에 함께 동맹을 맺고 참여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등과 함께 협력하여 2차대전 승리 후에 평화로운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미국과 서방 세력은 전쟁이 승리하니 곧바로 소련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으로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도 세계적인 코로나 위기를 맞이해 러시아는 미국 서방과 협력하여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자 하는 데 반해서 미국 서방은 러시아의 이러한 노력을 폄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차대전 이후 소련의 점령지 정책은 미국 서방의 신 식민지주의와는 차이가 컸다는 점을 지적하며 소련은 점령지를 착취하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점령지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꾸준히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소련의 북한점령 시에도 소련은 일본이 두고 떠난 부동산 등을 소련군이 차지한 것이 아니라 즉시 북한에 조직됐던 인민위원회에 돌려주었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소련당국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런 건물(과거 일본인 소유)을 인민위원회로부터 구입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전했다. 소련의 정책에 대해서 북한지역에선 전면적인 지지를 받았고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신의주에서 단 한 차례의 반소련 시위가 있었던 것과 비교해서, 미국이 점령했던 남한지역은 수년 동안 미국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시위와 폭동들이 이어졌음을 지적하며 이 부분만을 비교해 보아도 당시 대한반도 정책에서 소련의 적합성이 드러난다고도 했다.

김 안드레이 회장은 “자신의 할아버지는 애국자이셨는데 생전에 자신에게 남한도 북한도 모두 우리 고려인들에게는 조국”이라면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자주 가슴 아파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25년 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던 한국 사람들이 자신에게 “당신은 누구냐”라고 물어보면, “자신은 소련사람 혹은 러시아사람이라고 대답했다”면서 그 후 자신 삶의 여정은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고려사람”이라고 대답하곤 한다며, 고려인 동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정임을 지적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김원일, 리 엘자, 김영웅 박사(왼쪽사진) 알렉산드로 보론쵸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한국몽골학과장(오른쪽 사진)
이 행사에 참석한 김원일, 리 엘자, 김영웅 박사(왼쪽사진) 알렉산드로 보론쵸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한국몽골학과장(오른쪽 사진)

한 참석자는 당시 “당초 미국의 계획은 일본 곳곳에 수십 개의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면서 이러면 수백만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수 있었다”며 소련군의 참전으로 이러한 계획이 취소됐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다른 참석자는 한국에 아직 신탁통치안이 소련에 의해 제안됐다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신탁통치 10년 안을 제안한 것은 미국이라면서 그나마 소련의 노력으로 신탁통치 기간을 5년으로 줄였고 내용도 한국민의 자치를 크게 보장하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또 다른 참석자는 미국, 중국, 남북한 어디에서도 러시아학자들의 자료접근에 대해서 협조적이지 않아서 1945년~1950년까지의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원일 박사는 “오늘 학술회의 발표와 토론내용들이 지나치게 러시아에 편중된 시각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해방과 이어진 남북 분단에 대한 러시아학자들의 생생한 입장과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뜻깊고 유익했다”며 “차후에라도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학자들이 함께하는 학술회의가 폭넓게 이루어져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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