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낙화무언(落花無言)
[미학의 사자성어] 낙화무언(落花無言)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20.09.0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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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는 크기가 있을까?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답다는 논리는 말이 되는 것일까? 아름다움은 세계를 표현한다. 우리는 원자 하나 속에도 우주가 있고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의 원자로 통한다고 하고 인간이 우주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면 그런 작은 원자 속의 아름다움과 큰 우주의 아름다움에는 그 크기의 차이가 있을까? 아름다움은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깊을수록 크기도 형체도 비교도 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이다. 그 크기가 우주만큼 크든 손바닥만큼 작은 그림이든 상관없이 아름다움의 실체는 감동이다.

사과 한 잎으로도 배고픔을 면할 때와 끝없이 펼쳐진 부페 식당에서 먹을 때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 하고 물어본다면 누구도 한 번에 답할 것이다. 바로 배고플 때다. 아름다움도 그런 것 같다. 가장 감정적으로 격해 있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 가장 깊다. 그것이 한 줄의 선으로 그려졌다고 하여도 한 점으로 표시가 되었다고 하여도 그렇다. 아름다움은 크기는 느끼는 감동의 크기이지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다. 

낙화무언(落花無言)이 말은 떨어지는 꽃은 말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이 나온 중국의 시가 있다. 당나라 시대의 시인 사공도(司空圖)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중에 6편 전아(典雅)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玉壺買春(옥호매춘, 옥으로 만든 병에 술을 사와)
賞雨茅屋(상우모옥, 초가집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한다)
座中佳士(좌중가사, 자리엔 좋은 선비들)
左右脩竹(좌우수죽, 좌우엔 기다란 대나무 숲)
白雲初晴(백운초청, 갓 비 개고 흰구름 두둥실) 
幽鳥相逐(유조상축, 그윽히 지저귀는 산새들 날아다닌다)
眠琴綠陰(면금녹음, 숲 그늘 속에서 거문고 베고 자는데)
上有飛瀑(상유비폭, 위로는 나는 듯 떨어지는 폭포수로다) 
落花無言(낙화무언, 말없이 꽃잎은 떨어지고)
人澹如菊(인담여국, 사람의 마음 담담하기 국화꽃 같도다)
書之歲華(서지세화, 이것을 한 해의 풍광으로 지으면)
其曰可讀(기왈가독, 사람들은 읽을 만하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 8언 절구 바로 앞에 보이는 낙화무언 인담여국(落花無言 人淡如菊)으로 이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낙화무언만큼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인담여국(人淡如菊)이다. 이 뜻은 사람의 담백함이 국화와 같다는 말이다. 즉 그 사람의 됨됨이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낙화무언(落花無言)과 인담여국(人淡如菊)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낙화무언(落花無言)은 앞에 서술된 비 오는 날 좋은 친구들과 거문고를 켜고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즐기는 그런 모습의 절정에 바로 낙화무언으로 마무리했다. 

즉 모든 아름다움의 끝에 있는 것이 말이 없다. 더할 말이 없는 것이지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다. 너무 감격하면 할 말을 잊는다. 바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비교할 수 없기에 떨어지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꽃보다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인담여국(人淡如菊)이라 구절도 그런 아름다움의 출발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움 것이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좋은 술, 좋은 풍경,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보다 더 할 수는 없다. 

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의 낙화무언(落花無言)은 최고의 미적 경지를 이름하는 것이다. 그런 미적 최고의 순간은 자연도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인간 세계의 아름다움과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의 경계에서 어쩌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살면서 가장 그리운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가끔씩 떠오르는 처마 밑 추억이다.

비는 내리고 멀리 구름은 바를 몰고 가고 새는 울어 조용히 날아가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조용히 소리를 내고 꽃잎 위로 떨어진 물방울이 후두룩 몸을 비틀며 떨어질 때 그때 느끼는 미적 감동은 오래 남아 있다. 그때 친구가 옆에 있었다면 더 없이 좋을 때다. 술이라도 한 잔 한다면 더더욱 좋은 시절이다. 세상의 소리 소문과도 담을 쌓고 그저 떨어지는 봄비를 보며 꽃잎 떨어지는 것을 본 당나라 시인 사공도(司空圖)의 마음이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낙화무언(落花無言)의 미학은 바로 절정의 미학이다. 가장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한마디의 말보다는 한순간이다. 극치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런 예술은 현대적으로 보면 사진예술이다.

사진예술에 담긴 그 절정의 순간을 본다면 가슴이 턱 막히는 순간이 밀려온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그 순간이 바로 절정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순간이다. 인간의 말로도 자연의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을 찍어낸 사진은 바로 낙화무언의 순간을 찍어낸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수만 장의 사진을 찍고도 그 절정의 순간을 찍은 사진만 공개한다. 어느 순간보다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진 속에 사람이 있다면 최고이다. 인물사진만 찍는 사람은 어쩌면 이런 이유로 인물사진을 찍는지 모르겠다. 가끔 이런 절정의 순간을 찍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절정의 미학은 수만 장을 찍는 노력 없이 불가능하기에 그저 사진작가들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에 그냥 찬사를 보낼 뿐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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