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지부상소(持斧上疏)
[선비촌만필] 지부상소(持斧上疏)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09.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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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폐하(陛下)께서 부르짖던 민주는 절반의 백성에게는 약탈이고 절반의 백성에게는 토벌이며… ”
“이 나라는 폐하와 더불어 백성들이 합쳐 망친 나라로 역사에 기록될 것···”

‘시무(時務) 7조 상소문(上疏文)’의 ‘스스로 일신하시옵소서’ 제하에 나오는 상소문의 구절이다. 코로나19가 재차 확산하고 있던 8월, 온 국민이 불안에 떨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재난의 시대에 진인(塵人) 조은산이라는 필명의 30대 평범한 시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왕조시대 버전으로 올린 ‘시무 7조 상소문’ 신드롬이 실로 가관이다.

왕조시대에 신하나 백성들이 임금에게 문서로 국정에 대한 건의나 청원, 진정 등을 올리는 것을 상소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의 ‘신문고(申聞鼓)’도 일종의 상소였고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같은 집단 상소나 어떤 도구를 이용하는‘격쟁상소(擊錚上疏)’도 있었는가 하면 도끼 같은 흉기를 휴대하고 상소하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엽기적인 방식의 상소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의 ‘상소’라는 제도는 절대 권력자인 왕에게 신하나 백성들이 정책이나 민심을 전달하는 소통 시스템이었는데 국왕은 이런 상소에 ‘비답(批答)’이라는 회신을 반드시 해주도록 했다. 왕조시대에도 민심을 수렴하고 이를 소중히 다루었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조선 시대 선비들이 국왕에게 올렸던 상소 중에는 상소인이 몸소 상소문과 함께 도끼를 휴대하고 대궐에 나아가는 ‘지부상소(持斧上疏)’가 특이했다.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소인의 목을 쳐 달라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직언이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상소 방식이라 할 수 있다.

1591년 중암(重峯) 조헌(趙憲)의 신묘상소, 1876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병자 상소처럼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주장하는 상소가 역사에 기록된 지부상소였다.

16세기 이전에는 성균관이나 4학(四學) 유생들의 상소가 많았으나 조선 후기에는 지방 사족(士族)이나 유생집단들이 상소를 주도했다고 한다.

정조 때인 1792년 장헌세자 신원을 요구하는 ‘영남 만인소’를 시작으로 집단 상소가 유행했다.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명분으로 한 ‘영남 만인소’에 이어 1884년까지 수 차례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 상소가 있었으나 상소 내용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수구적인 주장이었다고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격쟁상소(擊錚上疏)’도 있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임금의 행차를 기다렸다가 이목을 끌 수 있는 징, 꽹과리, 북 등을 쳐서 임금 앞에 나아가 억울한 사정을 직접 호소하는 상소 방식이다.

정조가 화성에 행차했을 때 84건의 민원을 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런 격쟁상소는 고단했던 백성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또 당쟁(黨爭)의 수단이 되기도 했던 ‘벽서(壁書)’도 일종의 상소 방식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의 대자보 같은 것으로 임금이나 권세가를 익명으로 공격하거나 비행을 폭로함으로써 범인 색출 과정에 많은 정적(政敵)이 희생되는 사화(士禍)로 기록되고 말았다.(나주벽서, 양재역 벽서)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상소들이 조선왕조 국정 개혁이나 민생 해결에 기여한 경우는 드물었고 오히려 정쟁(政爭)으로 비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왕조 국가의 한계였다고 보인다.

지난 8월 세간에 화제가 된 시무 7조 상소문은 평범한 30대 직장인이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풍자나 해학이 넘쳐난다.

‘시무(時務)’란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이라는 뜻이다. ‘시무 7조’라는 용어는 신라 최치원의 상소문과 고려 때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라는 상소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진인 조은산의 시무 7조 상소문의 문장이 워낙 탁월하여 시중의 전문 문필가조차도 그의 필력에 놀라워하고 있다.

촌철살인 하는 비유법에다 왕조시대 임금이나 황제에게나 썼던 ‘폐하’, ‘통촉’, ‘대신’이란 용어를 구사하여 흥미를 돋우는가 하면 서민들의 속마음을 재치 있게 풀어냄으로써 많은 이들이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그 후 조은산은 ‘거천(擧薦) 삼석(三石) 상소문’을 추가로 게시했는데 이를 탄핵한다는 ‘영남 만인소’도 등장했다. 시무7조 상소문을 올린 조은산을 탄핵한다는 영남 만인소는 그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는 현 정권의 정책이나 인사를 비웃고 풍자하며 비판한 또 다른 명문장 상소문으로 소문나 세인들의 열독율(熱讀率)을 높이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인 1970년 5월, 잡지 <사상계>에 게재됐던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 필화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통렬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무 7조 상소문’이 50년 전 ‘오적’ 시와 오버랩되고 있다.

국민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개설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토록 신랄하고도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청원이 올라왔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상소 내용이 민심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와 함께 조롱과 풍자로 일관하여 엄중한 국정상황을 희화화(戱畵化)했다는 비판도 있는 것 같다.

독재시대도 아닌 민주정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적(五賊) 시에 버금가는 상소문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앞으로 또 어떤 강호(江湖)의 문사(文士)들이 나타나 ‘21세기판 지부상소문(持斧上疏文)’을 게시할지 벌써 호기심이 발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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