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내 마음에 남겨진 아이들
[해외기고] 내 마음에 남겨진 아이들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1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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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눈부신 아열대 도시의 겨울도 계절의 추위를 실감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새벽녘에 기온이 영상 5~7도까지 내려가면 으스스한 한기에 온몸이 졸아드는 느낌이다. 브리즈번의 한겨울은 눈이 쌓여 얼어붙는 한국의 겨울과는 다르지만, 살갗에 스며드는 찬 기운이 제법 매섭다. 뜨끈한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이 계절에 바이러스까지 한 몫을 보태니 어깨가 더 움츠러드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집에는 온돌방과 다다미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식구들은 주로 큰 온돌방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모여서 놀았다. 장작불로 뜨끈뜨끈하게 데워진 온돌방의 아랫목에는 널찍한 솜이불을 깔아놓았는데 온장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따뜻한 솜이불 밑에서 언니 오빠의 발들이 뒤엉킨 채 엄마가 만들어 준 다양한 군것질거리를 먹었던 그 겨울의 추억들이 그립다. 내가 기억하는 온돌방의 온기는 한국 사람이 지닌 따뜻한 심성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갓난아기 때부터 혼자 침대에 눕혀놓는 서양 사회보다는 두툼한 솜이불이 깔린 온돌방에서 엄마의 팔을 베고 잠들었던 우리들의 속정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삭막해지는 요즘에 따끈따끈한 아랫목 같은 인간관계가 필요한 시간이다.

우연히 펼친 일간지 신문 한 면에 중년의 한 남자가 어려 보이는 십대 소녀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사연을 대충 정리해보면 그 여자아이는 겨우 십대 중반의 나이로 음식과 마약을 사기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팔며 홈레스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십대의 시기를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방황하고 혼란을 겪었던 평범한 소녀였다. 이른 새벽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중 순찰 중인 경찰에게 붙들렸다. 그 여자아이는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것뿐이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마약도 사고 음식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돈을 조금 더 모으게 되면 엄마가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비행기 표를 사고 싶었다고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빠는 망가진 자신의 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또 무엇을 느꼈을까. 그 아이는 아직도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이며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응석을 부리면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며 누가 벌을 줄 수 있을까. 주변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관심을 보였다면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십대 하이스쿨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은 참으로 큰 인내심이 요구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지의 정령을 믿으며 자연을 사랑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는 자연 그 자체를 스승으로 삼아서 겸손하고 순종하며 침묵하게 만드는 참된 교육을 했다. 그리고 진정한 예의는 말보다 행동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모닥불 앞이나 나이 든 어른들, 특히 손님 앞을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장애인이나 못생긴 사람을 놀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인성교육을 시켰다. 예의 있는 행동과 절제된 모습의 교육을 가르쳤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현명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날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참교육의 본보기 같아서 공감이 간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라라를 만나서 딸 부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젠 삼십대 초반으로 접어든 라라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서너 살의 어린 데로만 보인다. 라라는 두 살 무렵 호주 양부모에게 입양된 한국 딸이다. 지금은 어엿한 의사가 되어서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를 오가며 병원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나와 라라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한글학교에서 맺어졌다. 나는 삼십여 년 전 한인회 정기모임에서 호주인 양부모들과 한국 입양아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와서 옷고름을 매어 달라고 부탁을 했으며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오는 감동을 받았다. 양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한국문화와 언어를 배우게 하고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인연으로 한글학교에 특수반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양부모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호주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한 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던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서 열심히 가르쳤다. 호주양부모와 입양 어린이들은 훌륭한 학생들이 되어 주었으며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추억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호주 엄마, 아빠와 맺은 인연과 우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나의 가장 좋은 호주 친구들이며 입양아들은 나의 사랑하는 또 다른 한국인 자녀들이다. 그리고 마음에 남겨진 예쁜 내 아이들이기도 하다. 나는 성인이 된 아이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새 부부에게 축복을 보내며 호주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두 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아차린다. 양부모들은 입양한 자녀들을 위해서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의 고향을 같이 방문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가르쳤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는 멋진 사회인이 되어있다. 딸이 중학생이었을 때 내게 했던 약속이 생각난다.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아이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어요.” 내가 양부모들에게 왠지 빚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었는데 그 의미를 잘 이해했던 것 같다. 요즘은 딸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입양아 아이들과 친구를 맺어서 서로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딸 덕분에 내 마음에 남겨진 아이들과 소통이 쉬워지고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김치를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볼 만큼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호주인 양부모와 같은 삶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면 거리에서 헤매는 아이들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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