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칼럼] 디지털시대에 꼰대의 라떼
[박대석칼럼] 디지털시대에 꼰대의 라떼
  • 박대석 칼럼니스트, (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 승인 2020.09.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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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latte)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뜻한다. 카페 라떼(caffè latte)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를 곁들인 커피 가운데 하나이다. 요즘 같은 가을날 어울리는 커피다. 라떼는 또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른바 ‘꼰대 어른’들의 말투를 희화화한 말로 쓰인다.

꼰대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남성인 아버지, 선생님, 직장 상사 등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그러니 꼰대가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시작하면 그 말은 들으나 마나 한 잔소리나 쓸데없는 말로 치부되는 것이다.

과거의 무용담이라고 자처하는 알량한 몇 가지 사례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무기로 알고 과거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의 다른 말이라 본다.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유난히 옛날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이다.

심지어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고는 한다. 다행히 필자는 일복이 많아서 지금도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의 일은 하는데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는 정도라서 아직은 그 라떼 쓰는 꼰대 반열에는 안 들었다고 자평한다. 착각은 자유.

자서전 또는 회고록은 이제 새로운 삶의 도전을 접었을 때 지난 일을 회상하며 쓰는 슬픈 글이다. 물론 그 글을 통하여 젊은이들이 미리 좋은 경험을 당겨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자서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나’ 일 것이다. 나는 어디서 언제 태어났고, 나의 가정환경은 어땠으며 나는 어느 초중고를 거쳐 직장을 다니고 어떤 친구를 사귀었고 누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훌륭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만나서 이러저러한 성공과 실패를 했으며 자식은 이렇게 되었고 지금은 이런 상황이라고 기술하게 된다.

사실 자서전은 ‘나’라는 자(者)가 타인을 만나서 생긴 일을 기억하여 적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서전이 가치가 있으려면 평생 만난 타자에 관한 기록이어야 한다. 태어나서 평생 만난 타자에 따라서 과거의 나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쓰지 않는다면 자서전은 별 의미가 없는 지루한 주민등록등본이나 호적등본에 적혀있는 글과 같을 것이다.

따라서 자서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내가 만난 타자들이다. 나는 그저 비어있는 작은 카페의 주인 또는 종업원일 뿐이다. 수많은 타자가 내 카페에 들러서 차를 마시며 툭툭 나에게 말을 건네거나 아니면 내가 호기심에 말을 붙여보다 시간이 되면 가버린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 카페를 정리하며 지난날 오간 타자 중 특별한 기억을 되살려 쓰는 글이 바로 회고록이다.

하지만 피히테(Fichte, 1762년 5월19일 - 1814년 1월27일)는 자서전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했던 독일 철학자였다. 

인식의 밑바닥에는 의식의 자기 동일성 즉, ‘나는 나다’라는 퍼스널리티(Personality)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제 만난 황홀한 사랑을 나눈 연인을 오늘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인식은 분열증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반면에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인 니체에게 있어서 피히테는 낙타와도 같은 사유를 대변하고 있는 무거운 정신의 소유자에 지나지 않았다.

니체는 기억이라고 볼 무거운 정신의 짐을 지고 있는 낙타가 사막을 서둘러 가다가 사자로 변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낙타는 사자가 됨으로써 창조를 하고 비로소 자유를 얻어 사막(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은유적으로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숙명처럼 짐 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낙타에 비유한 것이고 낙타는 절대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자유의지로 살지 못하는 상징으로 표현한 멋진 말이다.

니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은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기억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이 서양철학사를 관통하고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삶이란 기억하는 것이라는 이른바 상기설(想起說, doctrine of relativity)의 이데아(idea)는 일종의 기억으로 발견된다. 하이데거는 진리가 망각의 강인 레테를 거슬러 가는 운동 즉, 기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성현들의 생각이 대부분이다.

중관(中觀·Madhyamaka)을 주창한 인도의 불교 승려 나가르주나(용수 龍樹: 150년경~250년경?)는 공(空)을 말했고, 장자는 허(虛)나 망(忘)의 가치를 긍정했으며, 선불교의 혜능도 무념(無念)을 강조했다. 공자와 공자의 유명한 제자 안회와의 대화인 장자 대종사 편의 한 구절을 보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공자가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됐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얼마 후 다른 날 다시 안회가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되었어! 하지만 아직은 미흡해.”

다시 며칠이 지난 후인 어느 날 또 안회가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저는 좌망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너는 정말 현명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겠다.”

안회는 앉아있는 채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좌망(坐忘)의 경지를 말하는 대목이다. 

현실적으로 현대 생활에서 자신도 잊을 만큼 참선을 하며 살기에는 힘들어도, 쓸데없는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비울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인데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한정된 공간인 메모리도 수시로 비워서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AI 등 첨단기술의 4차산업혁명 시대이고, 언택트 비즈니스가 중심이 되며 디지털 자산, 디지털 금융이 중심을 이루는 디지털 경제시대라고 여러 매체를 통해 역설했다. 한마디로 디지털시대인 것이다. 

대표적인 자연자원 빈국 한국이 우수한 인문자원을 바탕으로 현재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강대국 문턱에 다다른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는 한국이 한 단계 뛰어넘어 세계 톱 클래스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환경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현상을 쫓아가는 수준이고 한국 사회 상류층, 리더 층은 디지털에 대하여 그다지 썩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현재 한국디지털자산금융협회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받아 활동 중이다. 최근 그 일환으로 국내외 디지털 자산, 뱅킹 등에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인 통 블록의 이진길 대표와 장·차관 및 재계 거물들을 만나며 아무런 이득이나 사심 등 조건 없이 디지털에 대하여 스터디 모임을 자주 가진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그분들이 디지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래야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이 디지털 경제를 제대로 더 빨리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서전을 쓸랴 하면 내가 아닌 기억 속의 타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더 활기찬 인생을 사려 하는 멋진 꼰대가 되려면 지난날 중 쓸데없는 기억들은 망각의 강으로 흘려버리자.

 그리고 비워진 그 공간에 도전하는 새로운 기억의 씨앗,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창조적인 기억의 씨를 심으면 어떨까?

박대석 칼럼니스트, (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박대석 칼럼니스트, (주)예술통신 금융부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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