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구소련의 식민통치가 뿌린 씨앗
[긴급기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구소련의 식민통치가 뿌린 씨앗
  • 오은경(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 승인 2020.10.02 00:01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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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의 역사...이주정책으로 아르메니아인 늘어나
오은경 교수
오은경 교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충돌과 교전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분쟁의 화약고가 되고 있는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식민통치와 분단을 경험한 아제르바이잔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소련이 남기고 간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아제르바이잔어로 “카라(Qara,Kara)”는 “검은”, “큰”, “거대한”이라는 뜻이다. “바그(bağ)”는 “가든(garden)”을 의미한다. 산악지역이라는 뜻으로 “Dağlıq”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어 아제르바이잔어로는 “Dağlıq Qarabağ”라고 불린다. 이 지명이 소련 지배를 거치면서 아제르바이잔어“Dağlıq”이 러시아어“Наго́рный”로 대체되면서 “나고르노 카라바흐”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2017년 아예 아르메니아식 이름인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지역의 갈등이 시작된 것일까? 1813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란은 귈뤼스탄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은 남북이 갈라지게 된다. 북쪽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에, 남부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에 속하게 된 것이다. 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갈등의 씨앗은 1828년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체결된 투르크만차이 조약부터 시작된다. 이란은 귈뤼스탄 조약 이후 국경지역의 귀속을 둘러싸고 다시 러시아와 싸워 패한 다음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러시아의 다음 행보가 문제였다. 광대한 카프카스 지역을 할양받은 러시아는 대규모 아르메니아인 이주·정착정책을 펼치게 된다. 터키와 이란의 무슬림 인구로 둘러싸여 있는 현실을 러시아는 위협으로 느꼈던 것이다. 종교와 문화가 유사한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켜 장벽을 두고 보호장치를 만들고자 했다. 완벽한 정치적, 법적 보장이 약속된 가운데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카라바흐 땅에 정착하게 된다.

카라바흐 주민 구성비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인을 넘어선 것은 바로 이주 정책 때문이며, 불과 이 년만인 1830년 목표를 달성한다. 아르메니아인 작가 스테판 자바르얀(Stepan Zavaryan)은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한 후 카라바흐 지역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들 마을 75개가 파괴되어 사라졌다고 전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이 독립정부를 이룬 것은 1918년이다.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 수립이다. 이때 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 영토로 공표되지만, 이 나라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모두 1922년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국이 된다. 나고르노-카라바흐 (Nagorno-Karabakh)도 1923년 아제르바이잔 사회주의 공화국 자치 지역의 지위를 얻는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이다. 모스크바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아르메니아 인들은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리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소련연방정부가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자치지역으로 인정한 이유는 터키 눈치를 살핀 결과라고 항의하면서 아제르바이잔 바쿠 행정부에서 분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드디어 1987년 10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시위가 열렸고, 시위 며칠 후 국경 지역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차르닥르(Çardaklı) 마을 아르메니아인들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지역주민 아제르바이잔인들을 공격했다. 사건은 점차로 확대되었고, 민족감정은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은 아제르바이잔으로,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인은 아르메니아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발전했다.

1988년 2월, 나고르노-카라바흐 국가위원회의 아르메니아 대표들은 지역 인구의 70%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닌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귀속을 요구하였다. 이 당시에도 이 지역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 주민 간의 충돌로 30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민족 간의 갈등은 골이 깊어져 갔다. 얼마 후 1989 년 11 월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통제권을 아제르바이잔 바쿠 행정부로 직접 이전하게 된다.

1991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소련 해체 후 각각 독립국이 되지만 갈등은 심화된다. 독립을 선언 한 후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자치권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바로 한 달 후인 1991 년 12 월 10 일, 나고르노 카바라흐 의회는 국민투표를 개최하고 아제르바이잔에서 분리·독립 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구의 20 %에 불과한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충돌 이후 국민투표를 거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의회는 1992 년 초에 독립을 선언했다. 아직까지도 국제사회의 UN 회원국 중에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아르메니아 조차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이 있다. 국제법상으로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명백히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분쟁은 확대되고 있고, 민간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2 년 2 월, 호잘리(Hocali) 마을에서는 아르메니아 무장 단체의 습격을 받아 최소 161 명의 아제르바이잔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가장 잔인한 학살 중 하나로 규정한 사건이다. 아르메니아 군대는 그 이후에도 슈샤와 아르메니아와 지역을 연결하는 라친(Lachin) 회랑을 점령했다. 1994년까지 대략 3만 명이 사망했고, 카라바흐 주변 7 개 지역도 이어 아르메니아가 점령했다. 이 지역주민 아제르바이잔인 약 60만 명은 하루아침에 고향과 재산을 잃고 난민이 되고 말았다.

분쟁은 해결될 수 있을까?

전쟁 상태에 접어든 카라바흐는 1994 년 5 월 비슈케크 의정서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다만 그 이후에도 26 년 동안 여전히 분쟁과 갈등은 증폭되었다. 1993 년 헤이다르 알리예브 대통령이 집권 할 때까지 아제르바이잔의 내부 혼란상황 속에서 아르메니아는 도로와 철도 수송 연결망을 강화했고, 나고르노 카바라흐와 아르메니아 본국의 예산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결국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은 아르메니아공화국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나의 대(大)아르메니아(Great Armenia) 공화국 수립이라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국제사회는 카라바흐 분쟁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1994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관할 아래 민스크 그룹이 설립되었다. 터키, 독일, 이탈리아, 벨로루시, 스웨덴, 핀란드가 회원국이고, 프랑스, ​​러시아 및 미국이 의장국인 기관이다. 10 년이 넘는 지루하고 기나긴 협상 끝에 이 기관은 2007 년 11 월 29 일 양측 모두에게 긍정적이라고 받아들여질 만한 중재안을 내놓았다.나고르노 카라바흐 주변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관할로 이전하고, 나고르노 카라바흐에 일단 임시 지위를 부여한 후 최종 지위 결정을 위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 카바라흐 사이의 회랑 개통, 유럽안보협력기구 국제평화유지군 배치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2007 년 이후에도 최전선과 국경에서 갈등과 충돌은 수시로 발생하고 있으며, 양측은 휴전 위반에 대해 서로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형편이다.

고위급 회의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은 점령지에서 아르메니아의 철수를 요구한 적도 있지만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자치권을 주장하며 버티고 있기에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 속에서 분쟁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면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 러시아다. 아르메니아는 경제적, 군사적인 측면에서 막강한 러시아 영향력 안에 있다. 군사동맹국이며, 아르메니아 안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분쟁 해결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는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다. 카라바흐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해 이 지역을 러시아 영향력 안에 두고 싶어 한다.

터키 역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이다. 무엇보다 터키는 아제르바이잔과 민족적, 문화적 친연성을 가지고 있는 투르크 국가이다. “한 민족 두 나라”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두 나라는 밀접한 관계이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은 전면전(全面戰)에 대한 자신감을 표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두 나라가 연대했을 경우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러시아가 무기 공급을 하며 뒷배가 되어주기는 했지만, 최근 러시아의 터키와의 관계는 전적으로 아르메니아를 대놓고 지원하기도 어렵게 보인다. 국제사회가 긴장하는 것도 혹시나 이렇게 사태가 확대될 경우 국제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터키는 러시아에서 수입한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S-400을 사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은 현재 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일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왔다고 아제르바이잔 현지 언론은 밝히고 있지만 아르메니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전쟁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경우, 경제력이나 인구 등 현실적인 측면에서 결코 아르메니아에게 유리하지 만은 않은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종교갈등”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은 기독교 문화를 기반으로 그 안에 녹아있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을 봉합해 버린다. 국제적으로 여론전에 강한 아르메니아는 이러한 프레임을 등에 업고 서구사회의 통합된 지지기반을 얻어내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은 남북한 대치상황을 살고 있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들에게도 험난하고 어려운 여정이다. 역사 속에서 겹겹이 쌓인 문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중층적인 갈등의 고리를 찾아내지 않으면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기는 어렵다. 문제와 사태의 본질을 역사와 강대국 간의 권력관계 안에서 찾아낼 때 분쟁과 갈등의 해결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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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na 2020-10-28 03:32:45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1993년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 점령지를 확장하는 문제에 관해 4개의 의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의결안 제822호, 제853호, 제874호, 제884호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의 점령지는 즉시 해방되어야 하고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지역 국경을 존중해야 한다.
#ArmeniaIgnoresUNresolutions
#아르메니아는유엔결의를무시하고있습니다
#JTBC뉴스게시판을살펴보세요
#stoparmenianaggression

Armenia 2020-10-05 22:58:53
기사 읽어봤는데 참 어이가 없다 밖에 말이 안 나오네..
교수라는 사람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니 신기하고 실망스럽습니다.
학살? “ 인권단체들이 가장 잔인한 학살 중 하나로 규정한 사건이다. ” 장난해요? 아르메니아인에게 학살이라는 말이 나와?
이”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소설입니다. 터키가 돈 주고 산 소설.

내 마음을 이해하려면 일본과 한국 과거사를 살펴보세요.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게 아니라 한국이 일본을 지배한 것이다. 위안부? 위안부는 한국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일본 여성들이다..독도는 - 본 일본 땅이다. 뭐 이런 느낌?

교수님. 그 더러운 돈 좋게 쓰실 수 있으면 좋겠다.

Nana 2020-10-05 21:43:59
아제르바이잔이 직접 나와서 싸웠으면 몰라도
대신 터키 테러리스트나 시리아 테러리스트 쓴다는 자체가 인간적이지 않다고 봄. 인구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정직하게 싸울 수 없는거니? 민간인이나 죽이고..
그 땅 주인이래매~ 가서 싸워 왜 여기서 이 ㅈㄹ이냐고??
왜 대신 터키와 시리아가 싸워주니?ㅋㅋ 어이없다 진짜

이연정 2020-10-03 20:45:37
최근 타국인 터키까지 입장을 밝히면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라는 두 나라간의 관계에 대한 역사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정리해주셔서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민기 2020-10-03 18:12:05
저기요 교수님~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나라는 1918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아르메니아는 이미 301년에 세계 죄초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인데 도대체 뭘 비교하시는 잘 모름. 아제르바이잔이 땅이라는 자체가 없는 생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공 나라입니다.
투르크연구소장이 그것도 모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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