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나는 이렇게 해외특파원이 됐다–4
[해외기고] 나는 이렇게 해외특파원이 됐다–4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0.10.02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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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동포 기자의 이민 40년 취재증언(證言)

새벽 6시경 옆 대동강가 벤치에 홀로 앉은 김대(김일성종합대) 1기생이라는 노인과 대화했다. 그는 “우리나라(북한)가 아주 망태기(망했다는 뜻)가 됐어”라며 탄식했다. “공장에선 기계 부속도 막 뜯어가고 전선도 잘라가고 큰일”이라는 것이다. 평양 도심에는 처음 등장한 ‘꽃제비’가 계속 따라다니며 구걸을 했다. 책임지도 안내원은 “꽃제비들 때문에 골치”란다. ‘꽃제비’, ‘고난의 행군’ 이름도 이때 내 북한취재로 지방지에서 먼저 한국 언론에 소개한 명칭이다. 이해 4월엔 북 황장엽 비서가 한국에 망명해 있었다. 한국 역시 1997년 늦가을 IMF 사태로 온 국민이 난리를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지방 5개지 공동특파원제도는 더 이상 파견, 진행이 중단됐다.

한번은 모스크바 외국도서관에 책 분류 도움을 준 적이 있다. 매주 월요일 2시간씩 무료봉사했다. 월요일은 현지에 신문발간이 없는 날이라 조금 시간 여유가 있었다. 외국도서관에는 1950-60년대 북한 서적이 꽤 있었다. 내 얼굴을 익힌 여자 도서관장(러시아 도서관 직원들은 100% 여성)이 한국 및 북한 서적 분류작업 협조를 구했기 때문이다. 6개월 후엔 더는 시간 내기가 힘들었다. 도서관장은 “그간 고마웠다. 어디 한 군데 가봐라. 거긴 폐기할 오래된 외서들이 많다. 원하면 그냥 가져가라. 단, 독일 서적만은 돌려줘야 하니 안 된다”며 장소를 알려줬다. 지적해준 건물지하실에서 북한 50년대 조선연감, 중국, 일본고서 등을 발견했다. 1910-40년대 외국 서적들도 상당수 있었다. 일반에 공개 안 된 특수공간에서 횡재를 만난 셈이다. 입수 서적들은 후에 박물관에 기증했다.

양구 근현대박물관 자료 기념비 건립(2014년)
양구 근현대박물관 자료 기념비 건립(2014년)

지난 1998년 가을 故 안형순 강원도민일보 회장이 도움을 청했다. 도민일보는 90년대 재벌 동부그룹이 강원일보를 재인수하면서 태어난 또 하나 강원도일간지다. 당시 해직된 일부 강원일보 임원과 기자들이 창간했다. 1999년 1월 해외특파원(부장) 사령장을 받았다. 모스크바 특파원 때와는 사뭇 일의 양상이 달랐다. 10여 년간 주로 강원인 관련 취재로 북미를 순회했다. 뉴욕 북부 산 중턱 어느 한인별장에 초청받아 힐러리 클린턴을 만난 일, 이희아 장애인 피아니스트의 국제 코디네이터 역할 등이 기억에 새롭다.

이희아는 열 손가락 중 오직 네 손가락과 두 무릎 아래 다리가 없는 1급 장애인 소녀다. 그녀의 악보 없는 피아노 연주는 용기와 감동을 주고 세계를 울렸다. 미국, 캐나다, 일본, 동남아 등 세계 TV 방송국에 그녀 소개를 했다. 가톨릭 신자인 희아 모녀는 또 북한 장애인 돕기에 적극 힘썼다. 2008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을 통해 설탕 15톤, 유완영 당시 한국ITF 회장과 함께 휠체어(일명 사륜차) 250대 기증에 앞장섰다. 피아노 한 대 없는 함북 나선지구 학생들을 위해 첫 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

30여 년간 해외 현장만 줄곧 누비다 보니 굵직한 사건들도 접했다. 박정희 시절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소련 KAL007 격추사건, 명성황후 초상화 발굴 건 등이다. 그 사건들은 비록 미제로 남았지만, 실마리 정보를 갖고 있다. 당시 사건책임자와 인터뷰 등 대면, 자료를 가진 이유다.

이희아 장애인 피아니스트와 함께(2000년대, 캐나다 몬트리올)
이희아 장애인 피아니스트와 함께(2000년대, 캐나다 몬트리올)

명성황후 초상화는 2006년 토론토에서 발굴됐다. 살아생전(1894년) 오리지널 명성황후 초상화다. 아직 명성황후 초상화가 없는 것으로 아는 국민이 많다. 1895년 을미사변 명성황후 살해당하기 한 해(1894년)전 일본 황실화가 오카무라 마사코(罔村政子/1858-1936)가 찍어낸 석판화다. 그녀는 메이지천황 부처(소헌 황태후) 석판화를 먼저 그리고, 6개월 후 민비, 고종, 대원군 3인 초상화를 같은 형식으로 찍어냈다. 일본은 마사코 자서전을 출간할 정도로 그녀는 당대 유일한 일본 황실 초상화가였고 유명 인쇄소(신양당) 발행인이었다.

또 베트남 참전기록을 수정해야 한다. 첫 파병 날짜다. 대한민국 베트남 참전역사는 첫 정부 파병이 정식 1964년 9월로 공포돼 있다. 그러나 1963년 5월 당시 113명의 해병특공대(대장 허영 중령)가 시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극비리에 베트남 중부 퀴논지역으로 처음 파병했다. 특공대원 113명은 1년여 만에 현지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고 6명만 상이군인으로 살아남았다. 이 엄연한 사실이 역사 속에 묻혀 있고 은폐돼 있다. 지금 생존자는 2명으로 70세 중반이다. 한 명은 한 눈이 실명된 채 아프리카에, 한 명이 토론토에 살고 있다. 당시 6명 생존자는 미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지난 2014년 9월. 강원도 양구군에 근현대사박물관이 개관됐다. 이때 오랜 세월 수집해 왔던 역사자료 4,200여점을 박물관에 무상 기증했다. 고려청자 등 도자기, 고화, 대한제국 최초여권(고종), 해방 전 최초 한글 사전, 세계 최초 우표들, 1904년 러시아 및 일본강점기 조선엽서 등이다. 특히 북한 연대별 우표와 모든 지폐 종류, 조선 동전, 50년대 서적 등은 러시아와 북한, 일본 등지에서 수집한 자료들이다. 양구박물관 준공식 때 참석하니 옆 잔디밭에는 내 자료 기증비가 호젓이 세워져 있었다.

뉴욕 개인별장에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했다.
뉴욕 개인별장에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했다.

이제 나이 74세. 나이아가라 부근 세인트 캐서린(st. Catharine) 市 다운타운에는 내 조그만 2층 건물이 있다. 토론토 외곽에 사 둔 아주 오래된 상가건물이다. 거기 월세 수입과 연금으로 생활한다. 돌아보면 내 기자 첫걸음이 故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연방 총리 때 비롯돼, 현재 장남 저스틴 트뤼도가 수상이니 한 제너레이션(세대)이 순간에 지난 셈이다.

능력이 부족함에도 긍정적으로, 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추구해 왔다. 어려운 고비 때마다 행운이 따라줬음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영국속담에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란 말도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5월 중순인데도 아직 날이 차다. 코로나19로 캐나다정부 비상사태 아래 봄이 시나브로 지나고 있었다.

필자소개
(사)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 대표
(사)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현재)
(사)대한언론인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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