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예술교류 앞장서 온 강선희 조각가
한중 예술교류 앞장서 온 강선희 조각가
  • 강성봉 객원기자
  • 승인 2020.10.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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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내 작품만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 데리고 작업하는 게 힘들거든요. 어떻게 발표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중국 친구들이 전시회에 초대해줬어요. 그 친구 중 하나가 ‘색감이 좋으니까 유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 해서 유화를 그려보았지요. 2008년부터 유화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했

어요. 나를 이끌어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중국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됐지요. 중국작가들과 교류하다 보면 중국 그림을 알게 되고 중국 역사를 알게 되고 그림을 통해 중국인들의 좋은 점을 알게 되는 거예요.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한국작가들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걸 보며 예술교류를 통해 한국작가와 중국작가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2004년 12월 강선희 작가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북경에 온다. 딸이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을 예정한 상태. 아이들에게는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언어를 습득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자 했고, 자신은 미술가로서 전시회 준비를 위한 홀가분한 작업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달라진 환경도 한몫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개인 전시회도 개최했다. 쑹좡에서 만난 중국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베이징의 쑹좡은 한국의 인사동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작가들이 대략 만 명쯤 모여 있어요.”

강 작가는 중국작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2007년 연우 갤러리 그룹전에 참가하고, 2008년 ‘My Life My Love’ 개인전을 개최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초대전에 참가하는 등 한국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중국과의 미술을 통한 문화교류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원류는 조각이지만 조각적 누드화와 추상, 그리고 풍경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9차례의 개인전, 10여 차례의 그룹전을 개최했다.

“중국작가와 교류를 많이 했어요. 2008년 중국의 한국문화원을 활용해 일곱 나라 23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칠채석두(七彩石頭)’란 기획전을 했어요. 2010년에도 일곱 나라의 작가가 참여하는 ‘세기취합(世紀聚合)’이란 기획전을 했어요. 2011년에는 쑹좡의 동방민족유화관에서 한국 화가와 중국 화가가 참여하는 ‘중·한문화교류 9·9전’이란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고요. 저와 중국의 장준(張峻) 화백이 참여하는 한중양국화가전으로 ‘융합’이란 기획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는 한·일 8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새 시대 새 문화 교류전’이란 기획전을 주한일본공보문화원에서 개최하기도 했고요. 2015년에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한중당대예술교류전 ‘평화와 치유의 공간 靜’이란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어요.”

2012년 12월에 개최한 한·중작가 미술전시회, ‘자연의 노래’ 展은 이 당시 강선희 작가가 추구한 한중 작가의 교류활동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중국작가들과 함께 한 강선희 작가(왼쪽 세 번째[사진제공=강선희 작가]

“‘자연의 노래’ 展은 국제적으로는 아모이(Amoy)로도 알려진 중국 푸젠성 남부의 샤먼(厦门)시 북두각 갤러리에서 개최했어요. 중국작가와 한국작가 5명이 미술작품전시회를 연 것인데요. 바다와 인접한 중심 시가지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문교를 연상시키는 하이창 대교가 자연과 잘 어울리는 샤먼시에서 ‘자연의 노래’를 5중주로 연주하기 위한 작품전시회라고 할 수 있어요. 5중주는 여러 악기가 사용되므로 서로 호흡을 맞추기 어렵고, 따라서 완벽한 화음을 만들기 어렵죠. 그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 5인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 다르고 전공하고 활동한 분야도 다르며, 다양한 연령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쉼표를 주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재료를 천천히 조리하고 느리게 그 맛을 음미하면서 오감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슬로푸드가 생각나는 ‘자연의 노래’를 만들어 냈어요.”

역사적으로 예술의 중심은 경제의 중심과 함께 이동했다.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의 중심은 미국으로 이동했고, 다시 중국으로의 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로서 중국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한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국작가들의 위상 변화에 의한 중국 미술시장의 확대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더욱 예술 권력을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에 중국이 국내총생산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확고부동한 세계 경제 2대 강국이 됐고, 2011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중국작가들의 작품이 낙찰총액에서 세계적 거장 피카소를 누르고 1위에 오른 것을 보면 예술의 중심이 이미 중국으로 이동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중국 베이징의 유명 아트페어로 자리 잡은 AATS(Asian Art Top Show)는 2009년 제1회를 시작으로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강선희 작가는 중국 상무부의 허가로 2013년 1월27일부터 30일까지 북경에 있는 중국국제무역센터(中国国际贸易中心)에서 개최된 제5회 아시아예술박람회에 참가한다. 이 행사는 중국 내 유명한 작가 및 해외 30여 개국 130여 작가가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거행됐으며, 한국에서도 다수의 작가가 참가했다. 특히 (사)한중지역경제협회와 차이나매거진(China Magazine)은 국제협력기구 및 해외홍보매체 자격으로 한국의 유명 작가 5명을 선정해 출품했다.

2011년 발행된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도록. 한국작가로는 유일하게 강선희 작가만 수록됐다.

강선희 작가가 제5회 아시아예술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제목의 부조였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한 강선희 작가 자신의 작품평은 다음과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네 가지 감정, 즉 기쁨,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을 아우르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희로애락을 대학에서 전공한 조각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실체가 없는 희로애락을 몸을 사용해 춤이나 퍼포먼스로 표현할 수도 있고, 목소리를 사용해 노래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음악 연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조각으로 표현하면 되니까 전혀 고민이 아니었다. 그러나 춤으로도 표현하고 싶었고, 노래로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창의성을 먹고 사는 예술가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조각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하되, 춤 추고 노래하며 악기 소리도 들리는 그런 조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감정의 변화인 ‘희로애락’을 담은 나의 작품을 통해 감상자에게 인생을 반추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의 작품에는 각각 ‘희’, ‘로’, ‘애’, ‘락’, 또는 ‘희로애락’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감정은 복합적이면서 빠른 시간 동안 변화할 수 있어서 감상자가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작품 제목이 될 수 있다. 차라리 ‘무제’라는 작품 제목이 더 어울릴 수 있겠다.”

강선희 작가가 요즘 천착하고 있는 ‘희로애락’ 연작 중 한 작품.
강선희 작가가 요즘 천착하고 있는 ‘희로애락’ 연작 중 한 작품.

한중 작가들의 예술교류 활동에 매진하던 그에게 중국의 예술세계를 깊이 탐구하고 중국의 작가들과 좀 더 활발히 교류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쟝미첸(張謐詮) 교수의 추천으로 베이징에 있는 수도사범대학에 초대작가로 선정돼 1년간 이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수도사범대학에서의 1년은 강선희 작가에게 중국의 미술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세계를 풍성하게 하는 많은 자양분을 습득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강 작가는 수도사범대학 초대작가 생활을 마치며 그동안 제작한 작품들을 모아 2015년 5월14일부터 28일까지 수도사범대학 소유의 전시공간에서 개인 전시회를 개최하고 작품집도 발행한다.

강선희 작가는 중국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산발적인 교류가 아니라 한국의 작가들과 중국의 작가들이 상시적으로 교류하며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고정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강 작가는 2016년 마침내 베이징 쑹좡(宋莊)에 최초의 한국 갤러리인 喜갤러리를 개관하기에 이른다.

희갤러리를 개관하며 그가 가졌던 일차적 목표는 한중 양국 화단의 교류 활성화와 세계적 아티스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통해 세계에서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갤러리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갤러리 개관 소감으로 강 작가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은 정말 가까운 나라이다. 그럼에도 순수 미술 분야의 교류는 활발하다고 보기 어렵다. 서로의 능력이나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 갤러리를 통해 이런 서로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는 무대를 계속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세계적 작가를 키우는 동력을 얻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선희 작가가 한중예술인들의 깊은 교류를 위해 야심 차게 시작한 희갤러리는 사드 사태로 한중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작가들이 쉴 수 있는 공간, 중국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희갤러리를 개관했습니다. 방 두 개 생활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50평 정도의 전시공간도 만들었는데 개관한 후 1년 정도 지나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한국작가들이 오면 호텔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됐어요. 전시할 때도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2년 정도 버텨봤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요.”

희갤러리는 문을 닫았지만, 한중 예술인들의 교류를 위한 강 작가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매년 한 번씩 개최되는 명동국제아트페스티벌에 중국작가들을 한국에 초대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제가 명동국제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이거든요. 작년에 젊은 작가 2명, 2018년에 5명, 그전에도 1년에 3~4명은 초대했어요.”

또한 베이징저널의 ‘중국의 당대 미술 프리즘’이란 코너에 중국작가들을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쑹좡의 친구들을 소개하는 글을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건데요. 한 달이 정말 빨리 돌아오네요.”

강선희 작가는 코로나19로 중국과의 왕래가 어려워지자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조각은 무게도 많이 나가고 부피도 커 전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요즘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고 강하면서 운반하기 쉬운 재료가 무엇인가 찾고 있어요. 흙에다 한지를 붙여서 석고 대신 떠내 보기도 하고, 투명폴리를 이용해 ‘희로애락’을 주제로 부조를 만들기도 합니다. 희로애락이라고 하지만 내용으로는 희와 락을 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작품이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돌죠.”

‘희로애락’은 강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왔던 주제다. “희로애락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다 이제는 점점 단순화하고 있어요.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변화하고 있고요. 희로애락 부조로 가고 있고 앞으로 계속 그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기자가 지난 7월 10일 강선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자기 나름의 작가론 작품론도 피력했다.

제7회 명동국제아트페스티벌 개막식 테이프커팅 장면(오른쪽 네번째 강선희 관장).

“작가는 순수성과 함께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도 알고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작품은 일단 완성돼서 작가의 손을 떠나면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고, 각자 자기가 느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작품의 표제를 다는 것 자체도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강선희 작가는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경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민주평통 북경협의회는 다른 지역협의회와 문화교류 활동 많이 한다. 강 작가는 민주평통 북경협의회가 미국 지역협의회와 교류할 때 작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민주평통에는 북경지역의 다문화 가족에게 한국을 어떻게 알리면서 교류할 수 있을까,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예술가로서 어떻게 하면 평화 통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 참가했어요.”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는 코로나19로 중국과의 왕래가 어려워지자 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임시로 서울사업부를 만들고 강선희 작가가 임시회장을 맡았다.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 서울사업부는 7월25일 DMZ&임진각 걷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걷기 대회를 마친 후 강선희 작가는 ‘동행, 아름다운 시작’이란 제목으로 랜선 하우스 미니 문화 콘서트를 국악인 김지희와 함께 유튜브와 아프리카TV를 통해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동행, 아름다운 시작’은 ‘예술로 그림으로 글로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을 극복해보자’라는 차원에서 서울에서 5명이 모여 시작한 일이에요.”

강선희 작가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인상과 당부도 전했다. “중국동포들은 훌륭한 인적 자원입니다. 정말 부지런합니다. 열심히 돈도 모으고요. 내국인들과 서로 존중하고 선한 마음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상호 발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날 강선희 작가는 작가로서의 소망을 기자에게 명확히 밝혔다.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슬픈 사람도 내 작품을 보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일의 만족보다는 오늘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감사하고, 화가 나더라도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인생을 좀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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