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56] 차이니즈 고든과 수단
[유주열의 동북아談說-56] 차이니즈 고든과 수단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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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천하통일 후 늙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었다. 그는 서복(徐福)에게 동쪽 바다 건너 삼신산에 가서 불로장생약을 구해 오라고 지시했다. 서복은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수년 전 중국의 절강성 츠시(慈溪)에서 서복에 대한 국제세미나 참석 초청장을 보내왔다. 츠시의 달봉산(達蓬山)에는 서복이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을 찾아 동쪽으로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어 서복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츠시는 태평천국의 난(1850-1864)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 해군이 청나라 군대와 협력해 태평천국의 거점인 닝보(寧波)를 공격해 승리한 츠시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상하이의 민병조직인 상승군(常勝軍)의 활약이 컸다. 상승군이라면 찰스 고든 사령관을 기억하게 된다.

오래전 국내에서 개봉된 ‘하르툼(Khartoum)’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고든 장군이 수단의 마흐디 반란군에 의해 하르툼에 포위돼 최후를 맞이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찰턴 헤스턴이 고든 장군으로, 로오렌스 올리비에가 반란군의 수령 아흐마드로 분장, 열연을 펼쳤다.

영국의 보호령인 이집트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속지인 수단에서 1884년 반란이 일어났다. 영국은 군대를 파견, 진압하고자 했으나 지하드(聖戰)를 주장하는 반란군의 예상외 역습으로 피해가 늘어나자 전쟁영웅 고든 장군을 보내 하르툼의 철수를 지시한다. 고든 장군은 반란군이 하르툼을 점령하면 수단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안전도 위협받는다면서 나일강의 2개 지류 ‘청나일’과 ‘백나일’을 방패 삼아 하르툼 사수에 나섰다. 10개월간 포위당한 채 물자가 부족해 굶주림에 지쳐있는 사이 반란군은 나일강의 갈수기를 이용해 하르툼을 함락시키고 고든 장군의 목을 잘라 효수했다.

현직에 있을 때 수단의 수도 하르툼(카르툼)에 출장 간 기회에 고든 장군의 비극적인 최후를 현지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당시 수단 정국의 혼란과 낙후된 경제로 하르툼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고든 장군이 방어선을 펼친 나일강을 가봤다. 현지 안내자는 ‘나일’이 강(江)이라는 뜻이 있고, ‘하르툼’은 두 강이 만나는 합수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해 우간다를 거쳐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고원의 타나호에서 발원하는 청나일이 합수되는 곳에 건설된 하르툼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청백의 구분은 강물의 투명성으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육안으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서복세미나 참석차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주최 측이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츠시로 향했다. 자동차는 36km의 해상교량 항저우만 대교를 건너 닝보의 동쪽 외항인 츠시로 갔다. 지금은 전자제품 생산으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어업의 중심이었다는 츠시의 남쪽으로는 흑조(黑潮)가 흐르고 있다. 중국의 서복연구자들은 이곳에서 배를 띄우면 조류를 따라 북상하여 제주도 또는 일본 규슈 도착을 알고 있던 서복이 산동성에서 내려와 츠시에서 출발(東渡)했다고 믿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영국의 상류층에서 유행했던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열풍)로 중국의 도자기, 비단 그리고 차의 수입이 급증해 무역적자가 쌓였다. 영국은 마약 아편을 팔아 적자를 해소하자 이를 거칠게 항의하는 청국을 전쟁을 통해 굴복시키고 난징(南京)조약을 맺어 홍콩섬 할양과 배상금도 챙겼다. 대국의 위상이 손상된 청국은 전비와 배상금 마련을 위한 증세가 불가피했고,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아편전쟁이 일어났던 광동성 출신의 홍수전은 수차례 과거시험에 낙방해 방황하는 사이 어느 날 자신의 꿈에서 본 여호와(상제)를 모시는 상제회를 조직했다. 모든 사람은 상제(上帝)의 자녀로 평등세계인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면서 흉흉한 민심을 달랬다. 1850년 홍수전은 국호를 ‘태평천국’으로 하는 그리스도 교리를 따르는 신정국가를 세우고 자신은 하느님(天父)과 예수 그리스도(天兄)를 모시는 천왕(天王)이 됐다. 홍수전은 만주족 오랑캐를 물리치고 한족의 나라를 세우라(滅滿興漢)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모두 변발을 자르고 머리를 기르게 하여 장발적(長髮賊)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청나라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불연합군과 싸우면서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해야 했다. 조정은 지방의 향신(鄕伸)을 중심으로 향용(鄕勇)을 조직하게 해 태평천국의 확대를 막도록 했다. 호남성의 증국번 형제들은 상군(湘軍)을, 리홍장은 안휘성에서 회군(淮軍)을 조직해 대항했으나 태평천국의 세력은 호북성 우창(武昌)을 점령하고 창장(양즈강)을 내려가 1853년 3월 역대 한족의 수도였던 난징을 함락해 그들의 수도(天京)로 정했다.

태평천국은 천경을 중심으로 강소성, 절강성, 강서성 등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청나라 수도 베이징을 향해 북벌에 나섰다. 서구열강은 홍수전이 여호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임을 자처하는 등 기독교 교리와 다른 이단성을 보이는 데다가 아편전쟁을 통한 조약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와 함께 태평천국의 진압에 가담했다.

조약항으로 서양에 개방된 상하이에서는 상인들과 외국인이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호상 양방(楊坊)이 자신의 미국인 사위 타운센드 워드를 사령관으로 하는 양창대(洋槍隊)를 조직해 태평천국의 침공을 물리쳤다. 양창대는 서양인 장교와 중국인 사병이 구성하는 3,000여명의 군사조직으로 개인별 급료가 지불되는 용병대였다.

태평천국의 소식은 일본의 도쿠가와(德川) 막부에도 전해졌다. 당시 일본 주재 영국의 올코크 공사는 양창대를 위한 군마, 식량, 식용유 등 군수보급품을 조달했다. 막부는 보급품을 실은 선박을 나가사키항에서 출발시키고 다카스기(高杉晋作) 등 젊은 사무라이들을 선원 자격으로 파견,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다. 다카스기는 양창대(상승군)의 활약에 주목해 귀국 후 기병대(奇兵隊) 결성을 통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의 성공을 이끌었다.

양창대의 워드 사령관이 츠시전투(1862.9)에서 전사하자 부사령관이었던 미국인 헨리 버제빈이 사령관이 됐으나 용병들에게 지급할 급여를 횡령하는 등 사고를 일으킨 후 찰스 고든 소령에게 인계된다. 고든 소령(1833-1885)은 영국 육사를 졸업, 크림 전쟁에 참전하고 1860년 베이징에 파견된 후 태평천국의 난 진압을 지원하기 위해 상하이로 이동해 사령관이 된 것이다. 고든 소령의 지휘통솔로 양창대는 천경 주변의 태평천국 주요 거점을 탈환하면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상승군(ever victorious army)이라는 명예를 얻는다.

태평천국의 북벌은 실패하고 증국번의 상군과 고든의 상승군 활약으로 천경은 포위되고 점차 고립돼 갔다. 외부에서 식량 등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자 홍수전의 태평천국군대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홍수전이 병을 얻어 죽게 된다. “내가 천국에 올라가서 천부와 천형에게 군사를 빌려와서 천경을 지켜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1864년 7월 천경이 함락되면서 태평천국의 난이 끝나자 상승군도 해산되고 고든 사령관은 청 황제로부터 관복을 하사받고 ‘차이니즈 고든’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는다.

20년 후 1884년 수단의 마흐디 반란군에 의해 하르툼에서 포위된 고든 장군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을 것 같다. 홍수전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스스로 천왕으로 칭하고 만주족(청)을 축출하고자 한족의 기독교 국가(태평천국)를 세운 것과 수단의 아흐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스스로 마흐디(구세주)임을 선언하고 이집트를 축출하고자 수단인에 의한 이슬람국가를 세운 것과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홍수전이 난징을 함락시키고 세력 확대를 도모했으나 13년 만에 청나라와 외국군대에 의해 멸망됐던 것처럼 아흐마드도 하르툼을 함락시킨 후 13년 만인 1898년 영국군에 의해 멸망됐다. 당시 이익을 쫓는 서구 열강은 수단의 편이 아니었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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