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율 칼럼] 실향민 정주영과 ‘현대가’의 통일 비전-3
[이승율 칼럼] 실향민 정주영과 ‘현대가’의 통일 비전-3
  •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0.10.0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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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의 혈류를 타고 흐르는 통일비전

#1.
‘소 떼 방북’을 통해 남북 분단의 벽을 허물고 새길을 열어 놓은 정주영 회장은 후속 조치로, 5남(*장남 몽필씨, 4남 몽우씨가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해 몽구, 몽근 회장에 이어 실질적으로는 3남이다) 정몽헌을 현대그룹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가 ‘현대가’의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1998년 ‘소 떼 방북’ 때였다. 그리고 연이어 1999년에 대북사업을 전담할 부서로 현대아산(주)을 세우고 정몽헌을 회장으로 취임시켰다.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대북사업과 더불어 한반도 전역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새로운 글로벌 경영전략을 구상하면서 이를 후계 구도의 핵심 대안으로 삼고자 했고 그 리더십으로 정몽헌 회장(서울 보성고, 연세대 국문과 -문과대 수석 졸업, 미국 페어레이디킨스대학 경영학 석사, 현대상선 사장을 거쳐 현대전자를 세계 5위권 반도체로 키움, 내성적이고 합리적인 스타일, 외모로 보면 정주영 명예회장과 가장 많이 닮았다)을 앞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 후계 구도가 순탄하게 이어지진 못했다. 그다음 해 2000년에 들어와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은 공동회장인 동생 정몽헌 회장이 외국에 나가 있는 사이 현대증권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익치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보내고 대신 자기 사람인 노정익 현대캐피탈 부사장을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하려 했다. 이에 정몽헌 회장 측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익치 회장도 인사에 승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 귀국한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를 찾아가 이익치 회장의 원직 복귀는 물론 형의 현대그룹 회장 타이틀마저 박탈하는 데 성공했다. 

정몽구 회장은 다시 여기에 반발하여 아버지의 사인(sign)을 들먹이며 공동회장에 복귀한다는 선언했다. 그러나 결국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 “현대경영자협의회 대표는 정몽헌 단독으로 한다”고 선언, 끝이 났다. 하지만 ‘왕자의 난’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3월 정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형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그룹을, 동생 정몽준 회장은 중공업 그룹을 이끌고 결국 현대를 떠나고 말았다. 형제들 사이의 반목과 분열로 현대그룹은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동아일보 이영래 기자의 글 참조)

#2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그룹은 대북사업에 주력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금강산관광을 들 수 있다. 1989년 1월 남북 분단 후 처음으로 방북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김일성 주석과 만나 금강산 ‘남북공동개발의정서’를 체결한 데서 논의가 시작된 이 사업은, 그 후 9년만인 1998년 ‘소 떼 방북’을 통하여 극적인 타결을 보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금강산 관광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18일 관광객, 승무원 등 총 1,365명을 태운 ‘현대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한 것이 금강산관광의 첫걸음이 됐다. 그 후 2002년 9월에는 금강산관광의 새로운 육로관광을 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가’에 불어 닥친 ‘왕자의 난’의 여파는 이미지 면에서 현대그룹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재정 면에서도 주가 폭락 및 유동성 위기를 맞게 한 주요인이 됐다. 그러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이보다 더 크고 결정적인 치욕을 안겨 준 사건이 바로 남북회담 및 경협 대가로 지원한 5억 달러(6천억 원으로 현물제공 포함)에 대한 검찰 조사였다.   
 
검찰 조사결과 박지원 전 장관은 2000년 4월 남북 협상 중에 정몽헌 회장에게 정상회담 준비용으로 1백50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총선을 전후한 시기여서 이 돈은 대북협상용이 아니라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또 정 회장은 박지원 전 장관뿐 아니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도 총선 전후 수백 원대의 비자금을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조사 결과다. 검찰은 이런 혐의를 잡고 정 회장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한 것이다. 정몽헌 회장으로선 사면초가인 상황이었다. 

그가 운명을 걸고 앞장섰던 대북사업도 북핵 위기 등으로 주춤하게 되면서 그의 사업 전반은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다. 금강산 등에 쏟아부은 투자액에 발목이 잡히면서 현대아산, 현대상선의 경영 상태는 극히 악화한 상태였다. 막대한 손해를 감내하면서 대북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자신이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치부되면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되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걸핏하면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는 등 변덕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북한 또한 정 회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이영래 기자의 글 참조)   
 
2003년 8월 4일 새벽 5시 40분경 현대 계동 사옥 화단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청소부 직원이 발견했다. 술에 취해 쓰러진 취객인 줄 알았던 사람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인 것으로 확인된 것은 몇 시간 후였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세 통의 유서를 남겨 놓고 투신했다. 1백여 명의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왔고 세계 유수 언론들도 정 회장의 죽음을 토픽으로 보도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놀라서 물은 질문은 ‘도대체 왜 자살했을까’하는 의문이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은 검찰의 과잉 수사와 짓궂은 가혹행위를 자살 동기로 들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자살하기 하루 전인 8월2일에도 12시간이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한 측근은 “현대를 공중분해 하겠다는 검찰의 협박에 밀려 비자금에 대해 모두 자백했을 것이다. 평소 착실하고 내성적인 성격인지라 그 자괴감에 스스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설명을 합치면 가장 정확한 답이 나오리라 본다. 그렇게 그는 떠나갔다. 아버지가 타계한 지 2년 반도 안 되는 시기(노무현 정부 출범 6개월쯤 되던 시기), 아버지가 맡긴 대임과 기대를 잔뜩 남겨 놓은 채 스스로 비운의 길을 택한 것이다.


#3
남겨진 유가족으로서의 짐도 짊어져야 하지만 현대그룹의 경영과 현대아산이 풀어가야 할 대북경협의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남편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의 수장으로 취임한 현정은 회장의 각오와 대책은 남달라야 했다. 현 회장은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으며(1955년생) 경기여중·고, 이화여대 사학과-대학원 석사,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 인성개발 석사를 거친 재원이다. 1976년에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낙점을 받아 결혼했으며 1남 2녀를 두고 있다.   
 
40대 후반에 현대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보여 준 경영 스타일은, 한번 결정을 내린 것은 후회하지 않는 스타일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2002년 12월 토지개발공사와 현대아산이 사업 주체가 되어 북한으로부터 부지를 매입, 공단을 조성한 후 국내 민간기업에 분양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개성공단부지조성공사(1단계 100만 평)는 정몽헌 회장의 유고로 난관에 부닥쳤으나 현정은 회장은 기본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당한 투자를 단행하는 등 뚝심 있게 밀어붙여 2007년 12월, 5년 만에 준공했다. 

신원 에벤에셀을 필두로 123개 업체가 입주를 완료했으며. 2006년 말까지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 1만 명을 확보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피살 사건이 일어나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설상가상으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발하자 이명박 정부는 대북 제재안으로 5.24조치를 발동했으며 또한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자 남북관계는 최악의 경색 국면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 일관했던 대북 제재 및 경색 국면을 완화하고 남북 간에 새길을 찾아보려고 2013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평양 방문을 단행(통일대박론 대두)했다. 경제사절단(79명)의 일원으로 동행한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의 대북사업에도 새로운 전기가 올 것이란 기대가 부풀었으나 그 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잦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극단적인 대북 제재를 가하게 된 것이 2016년 2월에 단행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와 일방적 철수 지시였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그다음 날 ‘폐쇄 조치’를 취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래 약 3년 반 동안에 친북 정책을 기반으로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며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조업 재개 등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유엔과 미국의 북한 제재를 완화해 보려고 외교력과 국내 여론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 현 정부의 실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친북 정책에 힘입어 2년 전인 2018년 8월 정몽헌 회장 15주기 추모식과 동년 11월 금강산관광 20주년 남북공동 행사를 주관했던 현정은 회장은 평소의 뚝심을 드러내며 “단 1명의 관광객이라도 있으면 금강산 관광을 계속하겠다”라며 남북 양 지도자들을 향해 7전 8기 하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런 현 회장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유엔 및 미국의 제재 강화와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그리고 이런 와중에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미숙한 중재자 역할에 반발하여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20년 6월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함으로써 남북 간에 극도의 이완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나의 심경도 이리 착잡하고 억울한 데 현정은 회장과 현대아산 관계자들의 심정이야 오죽 답답하겠는가! 더구나 온 세계가 코로나 팬테믹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남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신냉전 구도, 즉 미국의 대중국 무역전쟁 및 기술전쟁, 인도-태평양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충돌을 위시한 미·중 간의 대립 격화는 좀처럼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현대아산의 대북경협 사업도 더 큰 난관에 부닥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1998년 ‘소 떼 방북’ 사건 이후 면면히 이어온 ‘현대가’의 통일비전의 혈류는 장차 어디로 흘러가려 하는가!

#4
현정은 회장을 처음 만난 시기는 전성철 이사장이 창립(2003년 3월)한 세계경영연구원(IGM)의 1기 원우회 회장을 맡았던 2004년 봄이다.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반년이 지난시기였다. 대한전선(주)의 양귀애 고문, 배우 문희 등과 함께 IGM 2기 원우로 입회했다. 그들을 축하하는 환영식 자리에서다. 

그 후 몇 차례 조우하며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사역에 관한 자료를 전달했고, 그동안 현대그룹이 양교 발전을 위해 도와주었던 사례(취업 및 차량 지원 등)를 몇 가지 보고하면서 ‘현대가’의 주요 인사(현대그룹 회장)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특히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대건설 지도부의 총애를 받으며 일했던 각종 협력업체 프로젝트(서산간척지 산림훼손복구사업 포함)와  평양과기대 건설 초기에 ‘정주영체육관’을 공사했던 현대건설 현장 팀으로부터 기술 자문과 장비 지원을 받은 일을 자랑삼아 전해 주었다.   
 
그런 그를 만 8년 만에 다시 만났던 장소가 중국 길림성 훈춘에서 열린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 착공식(2012.9.10) 자리였다. 중국 중앙정부가 ‘창. 지. 투(창춘, 지린, 투먼) 개발 계획을 세우고 이를 북-중 나선특구 공동개발 사업과 연계해 그 첫걸음을 떼면서 한국 대기업을 투자파트너로 참여시킨 착공식 현장이었다. 

당시 착공식 주석단에는 중국의 쑨정차이 길림성 당서기, 장안순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서기, 이규형 주중 한국대사, 정준양 포스코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그리고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이 등단하여 테이프 커팅을 했다. 그날 현 회장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김진경 총장을 정준양 회장과 현정은 회장 두 분께 별도로 소개하면서 연변과기대가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 산학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설명하고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때 내가 강조해서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여기에 공장과 물류 창고를 짓고 최신 설비를 도입해 놓는 덜 이를 운영하고 관리할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연변과기대는 비록 사이즈가 작고 학생 수가 적지만 중국어, 영어, 한국어에 능통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국제감각과 인성이 뛰어난 인재로 키우고 있습니다.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에서 우리 학교와 MOU를 맺고 산학협력의 길을 열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런 취지의 발언에 두 분께서 크게 공감하는 눈치였다. 또한, 산학협력 MOU를 성사시키고 김진경 총장님을 이런 중요한 국제협력프로젝트의 착공식 주석단에 귀빈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날 훈춘 시장이 베푼 오찬장에서 나는 현대그룹 관계자들(현대상선, 현대아산 사장단 임원들)과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연변과기대 현황은 물론 평양과기대 개교(2009년 9월) 소식과 학사 운영 및 향후 비전에 대해 브리핑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원천적인 힘은 기독교 선교마인드에서 나왔지만, 이와 더불어 기업가 정신으로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치신 분은 정주영 명예회장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면된다’라는 현대그룹의 ‘현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에 정주영 회장님 같은 분이 두세 사람만 더 계셨더라면 벌써 통일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현대에 너무 큰 빚을 져 왔습니다.”   
 
그날 헤드 테이블에서 VIP들과 함께 오찬을 나눈 김진경 총장께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북아 국제협력의 비전을 제시하며 좌중을 압도했다고 한다. 낙후지역인 중국 동북 3성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두만강 유역 개발사업의 물꼬를 터서 훈춘과 북한 나선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을 때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제일 덕 보는 기업이 포스코와 현대그룹이 아니겠는가. 그때를 위해 연변과기대뿐만 아니라 이제 평양에도 대학(평양과기대)을 세워 놨으니 여러분들이 많이 이용하시고 지원도 해 주시기 바란다는 요지로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1년 가까이 훈춘을 내왕하며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와 MOU 업무를 추진하면서 준비해 놓은 자료를 보시고 그대로 말씀하신 거다. 그때 현정은 회장께서 느낀 바가 컸던가 보다. 착공식 오찬을 마치고 떠날 때 현 회장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남북한 문제를 남북끼리만 풀려고 하지 말고 중국과 러시아로 우회해서 풀어가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현대아산의 목표인 통일과업도 이런 방향에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때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얼굴 위에 정주영 회장님으로부터 흘러내린 ‘현대가’의 통일비전이 대를 이어 생생하게, 꿋꿋하게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닷새간의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이 세편의 글을 쓰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여겨진 것은 현대그룹에 안겨진 ‘남북경협 희망고문’이라는 용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 ‘2019 기업인과 대화’에서 “현대그룹은 희망고문을 받고 있다”고 말한 데서 연유한 용어다. 현정은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격려의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북한에 심어 놓은 현대그룹의 그 엄청난 양의 ‘희망자산’들--’소 떼 방북’ 이래 현대그룹이 투자한 금액을 합쳐보면 얼마나 될까? 

5억 불 대북 송금은 차치하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버려야 했던 ‘생명 값’은 또 얼마 이려는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쏟아부은 투자액만 해도 상상을 불허할 판인 데,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이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2017년까지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사업중단으로만 입은 피해가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손실금을 ‘희망고문’이라고 에둘러서 말할 게 아니라 미리 북한에 심어 놓은 투자형’ 희망자산’으로 인정해서 장차 국가가 ‘희망매매’로 보상해 주는 방법이 가능한지를 검토해 보자고 건의하고 싶다.   
 
이게 어디 한 개인이나 한 기업의 일인가! 통일! 통일! 을 수백 번 외쳐보라.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현정은 회장에 이르기까지 희생적 투자로 흘린 ‘현대가’의 혈류-- 그 거룩한 통일 비전의 군자금(?)은 결코 일 개인의 영달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와 민족의 항구적인 발전을 위해 바친 통일 대업의 투자였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아무도 이런 말을 못 했다뿐이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사업자가 잘못해서 손실을 본 것이라면 당연히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 정부나 북측이 일방적으로 공단을 폐쇄하고 사업을 중단시켰다면 그 손실을 배상해 주는 게 원칙이라고 본다. 그러니 그동안 현대그룹이 입은 피해를 비즈니스 손실비용(죽은 돈)으로 청산하라 하지 말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인프라 기초공사비로 치부하여 후일 남북한이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그때 가서 장기 상환 방식으로 지급해주는 방안(이것을 나는 ‘희망매매’라고 부르고 싶다)을 한번 검토해 보면 어떨까? 그래야 제2, 제3의 정주영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목숨 바쳐보겠다고 나서지 않겠는가! 이 외침을 나는 ‘의로운 외침’이라고 믿는다. 이 모든 ‘희망을 위한 이야기’를 <실향민 정주영과 ‘현대가’의 통일비전>으로 삼가 드린다.  

필자소개
연변과학기술대학, 평양과학기술대학의 대외부총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장 역임
현 참포도나무병원 이사장, 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 북경대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중앙민족대학 민박동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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