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싯날’(장이 서지 않는 날), ‘머드러기’(과일이나 생선이 크고 굵은 것), ‘달보드레’(달달하고 부드럽다), ‘나볏하다’(행동이 반듯하고 의젓하다)···
이런 우리말들이 길을 따라 병풍처럼 서예작품으로 전시돼 있다. 작은 것은 가로 두뼘, 세로 네뼘 크기고 더 큰 것은 가로가 네뼘이나 될 듯하다. 논두렁에는 현수막 같은 모양으로 학교 교가도 적혀 있고, 사람들이 쓰고 싶은 글을 적고 이름까지 넣은 것도 있다. 한글날 574돌을 맞아 세종대왕릉(영릉) 인근에 있는 여주 능서면 구릉마을에서 열린 우리말 논두렁 길거리 전시회다.
2박 3일간 열린 이 전시회는 여주시 주최, 여주세종문화재단 주관, 여주민예총이 진행했다. 이벤트 이름은 ‘능서면민과 함께하는 나랏글 574’ 전시회다.
“길 아래로는 아름다운 우리말, 중간에는 주변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들, 그리고 길 맨 위로는 방문자들이 직접 글을 쓴 것들을 전시했어요. 논에는 현수막으로 시와 교가 같은 것을 써놓았어요.”
이 전시회를 기획, 진행한 사농 전기중 서예가의 소개다. 전시 마지막 날인 10월11일 구릉마을회관에서 만난 그는 먹통과 붓을 건네면서, 참관자들에게 하나씩 써보라고 권했다.
“하늘이 두쪽 나도 서로뿐” “입마개 우짤꼬” 등을 써 내려가는 가운데, 이날 함께 한 최병천 전 중동중학교 교장은 “맷가마리를 쓸까”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맷가마리’는 ‘매 맞아 마땅한 사람’이란 뜻으로, 최 교장은 길 아래켠에 전시된 ‘요즘 맷가마리가 너무 많다. 혹시 나는 이 세상에 맷가마리가 아닌가’하는 글을 보고 공감했던 듯했다.
지역 매체에 따르면 이번 전시 작품들에는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만 담기며 한문과 영어 등의 외국어와 외래어는 금지했다. 특히 능서면민과 여주시민이 직접 쓴 서예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그 특별함을 더했다고 한다. 전시회는 한글날인 9일부터 3일간 번도5리 마을 거리 곳곳에 전시됐다. 관람객들이 직접 한글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백지현수막은 30여 개가 준비됐다.
전기중 서예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동네 이름을 ‘마을기업’이나 ‘마을공동체’의 이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면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능서면민들의 마음에 영릉에 대한 애착심과 자긍심이 깊이 자리 잡아 지역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새로운 한글 축제가 지속적으로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