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⑰]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홍미희의 음악여행 ⑰]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0.10.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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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슈베르트

단순한 듯하지만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심연을 흐르는 음악, 그것이 슈베르트의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위로를 주었지만 정작 개인사는 매우 불행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생을 마쳤고, 못생긴 데다 키도 작았다. 또, 평생 결혼도 못 하고 경제적으로도 가난했다. 그런 그에게 조그만 행운이 있었다면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끼 식사도 어려웠던 그는 세상을 뜨기까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는데 그들은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모임을 만들어 음악적 후원을 했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고 악보집을 만들어 세상에 알린 것도 그들이다.

그는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곡 등 음악의 전 영역을 넘나들며 작곡했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은 가곡이다. 그의 노래는 특히 예술가곡(Lied)이라고 부른다. 물론 슈베르트 이전에도 예술가곡은 있었지만 ‘시’와 ‘피아노’가 함께 융합된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곡은 슈베르트로부터 시작됐다. 우선, 그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가락이 아름답고 가사가 아름답다. 예술가곡의 가장 큰 특징은 문학적으로 훌륭한 시(詩)를 가사로 사용한 것으로 이전 시대에서 볼 수 있었던 종교적이거나 일반 음유 시인에 의한 내용이 아닌 괴테, 빌헬름 밀러, 하인리히 하이네 등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주가 아름답다.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사조와 함께 하는데 당시 낭만주의 서정시와 동시에 발전한 피아노라는 악기로 표현된 반주에서는 다양한 표현과 천재적인 암시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괴테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실 잣는 그레첸(Gretchen am Spinnrad)’의 피아노 반주는 물레가 도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초조한 마음을 나타낸다. 또 ‘보리수(Der Lindenbaum)’에서는 피아노 반주로 나뭇잎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 나뭇잎의 일렁임은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한다. 폭풍우와 말발굽 소리로 반주를 표현한 ‘마왕(Erlkonig)’도 있다.

아픈 아이를 껴안고 폭풍우 속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아버지의 심장이 터질 듯한 마음을 나타내는 빠른 셋잇단음표는 듣는 사람들에게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긴박한 반주, 긴장을 고조시키며 계속 올라가는 음은 이들의 불안과 함께 마지막 독백과 같이 쾅-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음침한 결말을 맺는다. 역시 괴테가 시를 쓴 마왕에는 설명하는 사람, 불안에 떠는 아버지, 간교한 마왕, 놀란 아이 등이 묘사된다. 이 4개의 목소리는 한 명의 연주자가 각자 다른 목소리로 표현해야 하므로 연주자 입장에서는 괴로운 곡이기도 하다. 괴테의 시는 슈베르트뿐 아니라 모차르트나 베토벤,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작곡자들까지 가사로 사용할 정도로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슈베르트가 친구들과 함께한 작은 음악회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가 친구들과 함께한 작은 음악회 슈베르티아데

그의 가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겨울 나그네’이다. 연가곡이란 시인이 같은 주제로 쓴 연작시를 사용한 곡으로 책의 제목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라면 그 안에 있는 20개의 시가 서로 연관된 내용을 가진다는 뜻이다. 이 2개의 연가곡은 모두 시인 빌헬름 밀러의 시를 가사로 사용하였는데 빌헬름 밀러의 아들은 ‘독일인의 사랑’의 작가로 유명한 막스 밀러이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작곡한 ‘겨울 나그네’의 24곡을 일관하는 분위기는 절망이다. 곡 전체의 대부분이 단조로 구성돼있는 것이다. 외롭게 방랑하는, 사랑에 상처 입은 영혼을 이보다 더 아프게 그려 낼 수 있을까. 그렇게 떠나가는 나그네의 제1곡이 ‘밤 인사(Gute Nacht)’라는 사실은 참으로 마음을 저미게 한다. 겨울 나그네의 첫 장면은 사랑했던 그녀의 집 대문에 조그만 쪽지를 붙이고 잠시 왔던 이 도시를 다시 떠나면서 시작된다. 전주곡마저 간단하고 연속적인 음의 나열로 아무런 희망도 없는 미래를 예고하며 밤 인사를 하는 장면이 첫 곡이다.

“이방인으로 이 고장에 왔다가 이방인으로 다시 떠나야겠네
화사한 꽃으로 가득 찬 5월이 나를 반겨 주었고
아리따운 아가씨는 사랑을 속삭이고 그 어머니는 결혼을 약속했건만
이제 온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고 나의 길은 눈으로 뒤덮였네···”

이제 나그네는 다른 도시를 지나며 지나온 도시에 두고 온 사랑의 기억들을 잡으려 한다. 제2곡 ‘바람개비(Die Wetterfahne)’는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그녀의 마음을 바람개비에 비유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제5곡 ‘보리수(Der Lindenbaum)’에서 나그네는 나무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던 추억을 회상한다. 제6곡 ‘홍수(Wasserflut)’에서는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강 하류에 있을 그녀에게 강물에 자신의 눈물을 담아 보낸다. 자신의 눈물을 감은 강물은 그녀가 있는 하류에서는 더욱 큰 물줄기가 돼 흘러갈 것이다. 제11곡 ‘봄의 꿈(Frühlingstraum)’은 잠시 장조로 변하여 밝은 느낌을 연주한다. 잠시 꾸는 꿈이라 더욱 허망한 밝은 곡이다.

제13곡 ‘우편 마차(Die Post)는 우편 마차를 보며 자신에게 올 리 없는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 설레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렇게 슬퍼하며 밤을 지새우고 나니 하얗게 변해버린 자신의 머리를 보며 또 한 번 마음 아파하는 곡이 제14곡 ‘백발(Der greise Kopf)’이다. 제15곡 ‘까마귀(Die Krähe)’도 유명한 곡으로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에게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곡인 제24곡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에 이르러 이 단순함과 쓸쓸함은 더욱 조용해지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가 없는 곳에 동전통을 놓고 부서진 손풍금(라이어)을 돌리고 있는 할아버지. 나그네는 노악사와 자신을 일치시키며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발걸음을 돌린다.

독일의 바리톤 가수가 피셔 디스카우 부른 겨울나그네(왼쪽)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연주한 백조의 노래.
독일의 바리톤 가수가 피셔 디스카우 부른 겨울나그네(왼쪽)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연주한 백조의 노래.

그가 남긴 3개의 가곡집 중 마지막인 ‘백조의 노래’는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14개의 유작을 모아 발간한 것이다. 렐슈타프와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이 가곡집은 백조는 죽기 전에 단 한 번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가장 아름답게 운다는 전설에 따라 제목을 붙였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제4곡 ‘세레나데’이다. 이 곡의 반주 역시 피아노로 연주되지만, 그 느낌은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작곡돼 있다. 세레나데는 소야곡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밤에 사랑하는 사람의 창문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곡이다.

그러한 정황을 생각한다면 피아노보다는 기타가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슈베르트는 기타의 음색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의 음악이 지닌 약간의 가벼움, 통속성 등이 기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뜯는 악기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일까? 확실히 기타에는 다른 악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수가 있다. 세레나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은 대중적인 선율과 다양한 화음의 변화가 있다. 단조와 장조, 다양한 화성 진행을 사용하여 단순한 멜로디이지만 울림이 있고 듣는 즐거움을 준다.그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면서 남긴 작품들은 인간이 가진 한계적인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많은 예술가가 젊은 한 시절의 작품이 대표작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활동하더라도 이후의 작품은 미미한 경우도 있다. 뛰어난 예술은 젊은 시절의 패기와 예리함, 정열과 인간 내면의 성숙이나 노력과는 거리가 먼 하늘이 준 천재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곡은 형식미나 구조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아름답고 어렵지 않아 기억에 오래 남는 선율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멜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속적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TV를 볼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가장 선율적이고 인간의 감성을 잘 표현한 슈베르트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매일의 생존을 위해 병과 가난과 싸우며 사소한 일상사와 슬픔으로 뒤엉킨 짧은 생애를 살았던 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인생과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빈 중앙공원. 왼쪽부터 슈베르트 묘지, 모차르트 기념비, 베토벤 묘지.
빈 중앙공원. 왼쪽부터 슈베르트 묘지, 모차르트 기념비, 베토벤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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