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서위심화(書爲心畵)
[미학의 사자성어] 서위심화(書爲心畵)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20.10.31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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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러니까 25년 전에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 공부했다. 컴퓨터 글자 꼴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공부하게 됐다. 어느 날인가 컴퓨터 글자가 정말 잘된 것인지 아니지를 검토를 하면서 한글 서체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으로 100포인트 정도의 글자로 확대하니 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글자의 밑바닥 모양이 드러났다. 대충 아무런 개념이 만들 글자와 한자씩 정성 들여서 만든 글자의 확실한 차이를 볼 수가 있었다.

그때는 글자를 키우면 그 글자를 만들기 위해 만든 원화를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찾아보니 생각보다 글자가 마음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의 글자체가 컴퓨터화하기 전에는 사식 글자였는데 그때 제대로 작업을 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는데 최정호 선생이다. 그분의 글자꼴 작업으로 명조체와 고딕체가 만들어졌다. 그분의 생각은 글자에는 각각 나름의 표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 표정을 살려 주어야 읽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의 후지쯔 컴퓨터였는데 글자를 키워보니 엉망이었다. 눈이 부담스러웠는데 그것을 키우면서 알았다. 최정호 선생의 생각인 글자마다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글자에 표정이 있다는 것은 결국은 그 표정을 짓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글씨를 쓰든 그리든 만들어내든 깎아내든 글자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글자에 남는다. 모난 사람은 모나게 만들고 둥근 사람은 둥글게 만드는 것이다. 글자는 서위심화(書爲心畵)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인 것이다. 마음이 없는 글은 기계적이다. 기계적인 글에는 글씨를 쓴 사람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대표적인 글이 바로 디지털 글이다. 디지털시계에서 드러나는 숫자는 디지털 글자이다. 이것을 통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글씨도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잘 만든 글자에는 표정이 담겨있고 만든 사람의 사상이 녹아 있지만 대충 만든 것은 그런 것을 느끼기 힘들다. 잘 쓴 글씨와 못 쓴 글씨의 차이는 충분히 그 마음이 글자 속에 녹아 있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글자를 만들면 그 글자는 바르게 나오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글자는 그저 무표정한 때로는 사악한 글자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글이 넘쳐나면 글자를 보아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해진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자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가장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을 이해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런 공부가 애플을 아름다운 컴퓨터 만들어내는 힘이 됐다. 만일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지 못했다면 빌 게이츠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글자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양의 서예에서는 글씨의 핵심을 3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골 즉 뼈이고 둘째는 근육 즉 살이다. 셋째는 기(氣)이다. 글 쓰는 사람의 기운을 말한다. 글씨의 뼈는 일종의 패턴이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배치를 해 놓아도 그 글자의 뜻을 알아본다는 의미다. 만일 말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어떤 변형을 하더라도 미음과 아, 그리고 리을의 기본 패턴만 지켜 지면 말이라는 단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글씨를 구별 짓게 만드는 핵심이 바로 골이다. 이것이 단단한 구조가 되어 글자를 글자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살은 그 크기와 각도 때로는 두껍기 흘려 쓰기 등등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뼈와 같은 패턴이 살아 있기에 그것은 변화되고 살아 움직여도 그게 어떤 글자인지 알 수가 있다. 마치 사람의 뼈가 근육으로 움직이면서 변해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빈약한 뼈만 있으면 빈곤해 보이지만 충분히 살이 제대로 있을 곳에 붙어 있으면 글씨가 풍부해진다. 뼈와 살이 사람을 구성해도 그 사람이 살았는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절망하는지 희망하는 제 등등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기운이 필요하다. 글자도 쓴 사람의 기운이 이식될 때 비로소 글씨가 살아나고 그 속에 마음이 담기는 것이다. 즉 서위심화(書爲心畵)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서예전에 가보면 다양하게 쓴 글이 있지만, 글의 내용보다 글씨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글자들이 표정으로 살아 있기에 마치 수 없는 얼굴들이 날 보아 달라고 쳐다보는 것 같다. 정말 경제에 도달한 사람은 글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맞추어서 글자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예술이 각광 받고 있다. 바로 캘리그래피다. 캘리그래피는 글자 하나 단어 하나에 집중한다. 그러니 글자의 의미와 글자만 만들어내는 표정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말을 말하면 말처럼 달려야 되고 꿈을 말하면 꿈처럼 몽환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캘리그래피의 발전은 메시지의 전달 방법에 대한 발전과 같다. 단순히 반복되는 글자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글자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그저 패턴으로 인식되면 끝이다. 그러나 글자가 캘리그래피로 표현되면 글자가 가진 의미보다는 그 글자의 이미지 또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캘리그래피가 급속도로 퍼지는 이유는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와 컴퓨터의 영향이 크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 방법으로 또는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강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런 그 바탕에는 분명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서위심화(書爲心畵)의 미학적 방법론이다. 캘리그래피는 아직도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다. 단순히 사업적인 목적으로 만든 글씨는 상업적인 이유로 사라진다.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만들어진 글씨는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최근에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의 글씨에는 바로 이런 마음들이 담겨있다.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글자들도 어울려 살아가도록 글씨를 썼다. 그 마음들이 남아 있기에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감동을 준다. 마치 소주병에 쓰인 처음처럼 마음을 울린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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