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8] LA 동포 백건우 누나와 같은 호텔에서 묵어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8] LA 동포 백건우 누나와 같은 호텔에서 묵어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0.11.1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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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떻게 바뀌어왔으며, 또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1989년 이래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해 취재한 송광호 토론토 주재 언론인이 방북 때마다 보고 느낀 점들을 시리즈로 정리했다. ‘바뀌어온 북한’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은 현재와 같은 남북경색국면에서 긴 눈으로 북한의 새로운 변화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원산 겨울풍경

원산 송도원호텔에서 만난 여인은 말을 계속했다. “평양에서는 함흥 출신들이 일을 가장 잘한다고 평이 나 있어요. 일본으로 치면 오사카인들과 비슷하지요.” 그녀는 함흥사람들 성격을 ‘얄개 성격으로 세차다’고 표현했다. 도시도 원산보다 훨씬 크고 인구가 많으며, 옛날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함흥엔 유물, 유적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 큰 도시에서 왜 원산에 와서 물건을 사려고 하세요?” “원산은 관광도시라 함흥에서 못 구하는 물건들이 있어 가끔 내려옵니다.” 안내원에 따르면 원산은 6.25 전쟁 때 미군 함포사격으로 도시가 완전 초토화 돼 버려 옛 건물은 광석동의 교회당(현재 문화회관/극장) 단 한 채만 남았다고 한다.

명사십리 원산은 말 그대로 고운 모래가 10리 거리나 바닷가로 뻗은 절경의 항구도시다. 그 금모래가 파르르 떠는 아름다운 물속광경을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다. 원산은 (북)강원도 수도로 개발이 진행됐지만, 2013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래 개발속도가 가속화됐다.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그의 어릴 적 고향인 원산을 관광특구화 해 마식령 스키장(스키 리조트)과 호텔을 먼저 완성했다. 곧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도 새로 고치고, 갈마국제공항과 공항청사를 신축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원산개인별장을 자주 이용해 지난번 잠적 시는 원산에 은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신평(황해북도)

내가 다시 원산에 내려온 것은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취재 뒤 2월 하순 경 차가운 날씨 때였다. 원산은 평양보다 더 추웠다. 평양에 외투를 두고 점퍼 차림으로 훌쩍 떠나온 것이 후회됐다. 원산행 직전 잠깐 평양에서 만난 최건국(최덕신 전 서독대사 장남) 고교 선배 얘기부터 한 줄 적어야겠다. 평양극장 예술 공연 참관을 마치고 나오던 길이다. 평양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선배와 마주친 것이다. 최 선배는 3년 전 평양 청류관 회식 때 처음 만난 4년 선배(프랑크푸르트 거주)다. 그때 고교동문(서울사대부고)임을 발견하고 서로 얼마나 반가워했던지.

“어이구 웬일인가. 평양에 또 왔구먼. 나는 내일모레 곧 떠나네. 시간이 없으니 오늘 저녁이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겠나?” 사실 방북할 때마다 고역은 저녁 시간이다. 동행이 없으니 빈방에서 채널이 거의 없는 TV를 보거나, 호텔 지하 또는 2층 바(Bar)에서 술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예전 지하 바(Bar)에서 만났던 구소련 타스통신 알렉산더 주재원도 없어 심심하던 참이다.(세상은 좁다. 알렉산더 기자는 2년 후 러시아 특파원 때 모스크바에서 다시 해후하게 된다.)

고려호텔 근처 일식집에서 정종과 사시미 등을 시켜놓고 둘이 마음껏 마셨다. 학창 시절부터 그의 북한사업 얘기, 해외생활 등 온갖 사연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문득 선배가 일어선다. “자. 우리 2차 가세. 가까운 곳에 가라오케(북한명 화면반주음악장) 집이 있으니.” “아, 평양에도 가라오케가 생겼습니까.” 늦게까지 호텔에서 대기하던 안내원도 함께 갔다. 평양에 처음 생긴 가라오케 장소다.
 

나진  유치원
나진 유치원

홀은 이미 만원이었다. 손님은 전부 일본 (조)총련 교포들이다. 접대원은 다른 방을 안내하며 10분 정도 기다리라 한다. 대기실에서 계속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최 선배는 한때 삼성 이건희 회장과 친했던 모양이다. 동기동창으로 삼성에 입사해 부장으로 일하던 중 부친(최덕신)이 북한으로 망명하는 통에 집안이 풍비박산됐다. 직장은 자진해 사표를 내고 독일로 이주했다. 나머지 형제자매 동생 4명은 서울과 미국 등지로 뿔뿔이 헤어졌다.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긴 셈이다.

최덕신 부친인 최동오(최 선배 친조부)는 상해임시정부 요인이며 독립운동가로서, 김일성의 옛 학교 스승이다. 최동오는 남북한 양쪽에서 인정받는 애국열사로 한국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한편 최 선배 동생 최인국(46년생, 서울 거주)은 최 선배 타계 후 친형과는 달리 지난해 2019년 7월 부모 묘소가 있는 북한으로 불법 망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양에서 순수 서울말을 쓰는 고교동문을 만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가라오케 홀로 들어가 만취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재일동포 위주라 자막이 전부 일본말이고 일본노래였다. 우리가 노래할 때는 오히려 가라오케를 멈추게 하고 생 노래를 불러댔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흘러간 노래들. 재일동포들은 난데없는 무법자가 나타난 줄로 생각했겠다. 마이크를 넘기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훗날 북한은 호텔마다 가라오케 룸이 늘어나 있었지만 실상 아는 노래라곤 거의 없었다. 노래목록에 사우(, 동무생각) 이름이 눈에 띄었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곡이다.

북한 인민(초등)학교 돌 표식
북한 인민(초등)학교 돌 표식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이은상 시, 박태준 곡) 이 노래는 이후 내 18번 곡이 됐다. 한편 북에는 가고파 작곡가 김동진 가족도 살고 있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이은상 시) 음악가 김동진은 6.25 전쟁 후 홀로 남하해 나머지 식구들은 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방북 중 그 아들을 만난 한 토론토 교포가 김동진 작곡가 가족의 헤어진 애타는 사연을 전해줬다. 아, 살피면 사방팔방에 이산가족 천지다.

그날 밤 선배와 헤어지고 호텔 방으로 들어가며 장난스레 옆방 벨을 눌렀다. 옆방에는 LA 교포인 북미 민족문화위원장 백정자(피아니스트 백건우 누나, 미술가)씨와 김진옥(코리아 문화연구소장)씨가 묵고 있었다. 그들은 북경에서부터 같은 호텔에 숙박해 친숙해진 관계였다. 새벽 벨소리에 깜짝 놀라 잠옷 바람인 채로 내다보는 그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 누님들 우리 같이 술 한잔합시다. 기분도 좋은데.”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술 취해 갖고. 참. 빨리 들어가 자요. 여기는 평양이에요.” 시계를 보니 2시에 가깝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정말 실수를 했구나.’ 두 사람 다 이화여대 출신이다. 내가 손아랫사람이라 웬만한 실수나 장난은 못 본체 눈감아 줬다. “제발 짓궂게 좀 하지 말아요. 왜 새벽까지 잠도 못 자게 이 야단이에요? 혼자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무슨 소리예요. 두 사람이 있으니 그런 건데.” 나중 최 선배 어머니인 류미영 위원장에게서도 꾸지람을 들었다. “술을 그렇게들 많이 마시면 어떡하나? 새벽까지 아들이 집에 안 들어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정말 애태웠다.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누구도 오기 힘든 이 북한 땅에서 우연히 반가운 사람 만난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쁜 일인 줄 아시나요?”하고서.

류미영 청우당 위원장
류미영 청우당 위원장

이산가족들은 남이고 북이고 양쪽 정부에서 불이익을 당해왔다고 알고 있다. 혹시 무슨 국가에 반하는 은밀한 행위가 있나 의구심 때문에 늘 감시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변변한 직장 하나 갖기 힘든 것으로 안다. 한편 나는 북(주민)에서 요구하는 가족 두 가구를 찾아준 적이 있다. 이 얘기도 나중 기회 되면 하자. 다만 불발로 끝난 캐나다의 한 경우를 소개한다.

평양 거주 이산가족인 ‘옥()’씨 할머니는 죽기 전 여동생을 꼭 만나고 싶었다. 일본교포로부터 내게 연락이 왔다. 북미주에 살 것이란 막연한 말만 듣고 수소문 끝에, 밴쿠버 사는 친동생 할머니를 찾아냈다. 캐나다 대도시 한인 주소록들을 뒤졌다. 길에 떨어뜨린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옥 씨는 희성이라 비교적 찾는 데 어렵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세상에. 어떻게 연락이 됐군요. 속히 평양을 방문토록 하겠어요.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항공료는 캐나다여행사에 문의하세요. 중국을 거치니 중국 비자도 필요합니다. 혼자 힘드시면 누구 식구랑 잠깐 다녀오세요. 방문 날짜가 결정되면 알려주십시오.” 다음날 딸이라는 한 여성이 전화를 했다. 처음부터 흥분된 상태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우리 엄마, 북한에 절대로 못 가요. 못 보냅니다. 왜 갑자기 빨갱이 나라에 죽으려고 갑니까. 댁은 누군데 남의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는 거예요?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나중 연결된 할머니도 어쩔 수 없어 했다. “딸이 울고불고 계속 난리네요, 안 되겠어요. 나야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어쩝니까. 포기하겠어요.” 결국 무산됐다. 남을 돕다가 낭패 본 대표적 케이스다. 뒷맛이 씁쓸했다. 일본 지인에겐 동생할머니를 찾긴 했으나, 지병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두 가족은 전부 성공시켰다. 하나는 미주지역, 또 한 명은 한국이다. 8번 방북하며 우연히 나 자신 5촌 친척도 찾았고, 남의 가족을 찾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여성복(한복) 상점
북한 여성복(한복) 상점

북한을 방문할 때 참고해야 할 내용이다. 한국 경우는 첫째 조건이 신변 안전보장을 먼저 요구하는 듯싶다. 문서로도 이를 명기코자 한다. 해외에서 방북하는 경우는 다르다. 신변 안전보장은 거론조차 안 한다. 북한 정부는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해외 방북 신청자는 아예 처음부터 비자발급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한번 언급했지만, 북에선 비자발급을 정부 기관(외무성) 한 군데에서만 검토하는 게 아니다. 보위부 등 서너 기관을 일일이 거친 후에 최종 발급된다. 이 때문에 누구든 신청한 비자발급만 잘 통과돼 나오길 학수고대했지, 신변보장 언급은 생각조차 않는다, 일단 비자가 발급되면 방북 후 본인이 엉뚱한 일을 벌이지 않는 한 다른 염려는 없다. 고의적 장난이나 실수는 절대 금물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식을 따라야 한다’는 속담 그대로다. 어느 나라든 북한 관광을 주선하는 여행사는 관광객 모집과정에서 고객들에게 철저한 사전교육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자유롭게 용인되던 장난스러운 행위는 북한에선 용납 안 될 수 있다. 심지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단체여행을 하다 보면 꼭 일탈자가 생기는 경우를 보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8년 금강산 한국관광객 중 여성 한 분이 아침 해변가를 펜스 넘어 산책하다가 피살당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 한국에선 순수관광객(민간인) 피살로 엄중한 북측 사과를 요구했지만, 북에선 사과는커녕 오히려 총을 쏜 초급 병사(여군)에게 잘했다고 포상을 줬다. 이를 비교하면 남과 북의 규정과 시각차가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평양 출근길 (여성들)
평양 출근길 (여성들)

나 역시 오래전 금강산에서 새벽 검문에 걸려 혼이 난 적이 있다. 내 철없는 경솔? 탓도 있다. 원산취재를 서너 차례 하다 보니 부근인 금강산도 가끔 다녀오곤 했다. 한번은 원산취재 후 금강산에서 1박하고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곧장 평양으로 떠나는 일정이 짜여 있었다. 그날 저녁 문득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대신 새벽 일찍 떠나 도중 동해 <시중호>에서 해돋이 일출 광경을 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예로부터 시중호의 해돋이 광경은 동해 정동진 일출 이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새벽 떠남을 꺼리는 안내원과 운전기사를 설득해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새벽 4시 반쯤이나 됐을까. 도로 전체가 갑자기 삼엄한 검문소로 변해 있었다. 검문소 보초병이 다가와 3명 증명서류를 요구했다. 나는 여권을 내줬다. 분위기는 무거웠고 아무도 한마디 말을 안 했다. 나는 보초병이 서류 검사를 하고 쉽게 놓아줄 줄 알았다. 그는 선 채로 서류 하나하나를 들추며 우리를 30분 이상 잡아놓았다. 지루한 탓인지 앞자리 운전기사가 조그만 소리로 뭐라 말했다. 뒷좌석의 나는 무슨 소리인 줄 듣지 못했다. 그러자 보초병의 “뭐요?(뭐야?)”하는 반말 같은 큰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깼다. 일개 보초병이 평양에서 내려간 중앙당원에게 큰소리치는 걸 직접 목격했다. 북한 군인의 파워(힘)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운전사는 조그맣게 “손님이라고요”라고 대답했다. 보초병은 아마 한 건을 하려다가 놓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한참 뒤 서류들을 돌려주었다, 이미 일출 시각을 놓쳤고 계획은 허사가 됐다. 이른 시간이라 시중호 상점이나 식당도 문을 열지 않았다. 맥들이 빠진 채로 차는 원산을 통과해 황해북도 신평 휴게소로 달려갔다. 북한군인 관련한 다른 건으로 평양 출국 시 공항에서 잡혔던 내용은 다음 호(9)에 전하겠다.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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