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거짓말
[이영승의 붓을 따라] 거짓말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20.11.16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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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국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 고의적으로 하는 나쁜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 선의의 재미있는 거짓말을 무지갯빛 거짓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심한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렇고 보면 거짓말에 색깔에 있다고 함은 동서양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거짓말은 분명 나쁘다. 절대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거짓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비싼 장난감을 사 달라고 막무가내로 울며 조른다고 하자. 돈이 없어서 사 줄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월급 타면 사 주겠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우선 달래야만 할까? 삼척동자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는 신뢰가 바탕이며 신뢰는 말부터 정직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가끔 있다.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실화다. 골프 약속이 잡혀있는 줄 모르고 친구 두 사람과 저녁 약속을 했다. 그것도 내가 초청한 모임이었다. 약속 날짜 며칠을 앞두고 일정이 중복됐음을 알게 됐다. 골프는 네 명이 함께하는 운동이라 ‘본인 사망과 세컨드 출산’ 외에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친구들과 약속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데 참 난감했다. 사실대로 말하고 이해를 구할까 생각도 했으나 내 신뢰에 흠이 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등산하다 미끄러져 걷기가 어렵다’는 거짓말로 임시 모면했다. 미안했으나 죄책감은 갖지 않았다. 불가피한 하얀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사수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을 내보내면서 자신은 남쪽으로 피신했다. 후일 역사는 거짓말을 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렇다면 ‘전세가 불리해 나는 작전상 서울을 비우고 후퇴하니 국민들은 각자 알아서 대처하라’고 사실대로 알려야 할까? 그럴 경우엔 극도의 민심 동요로 서울은 일시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며, 인명피해가 더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쟁이 난 사실은 다 알려졌고 상황은 급박한데 참으로 난감했을 것 같다.

15여 년 전에 직접 겪은 사건이다. 다른 생각에 몰입하다가 신호 대기 중인 영업용 택시에 미세하게 접촉했다. 내 스스로 접촉 여부가 긴가민가할 정도라 그냥 있을까 하다가 혹시나 오해를 받을까 싶어 차에서 내렸다. 두 차 모두 범퍼에 접촉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하며 앞차 창문을 노크하니 운전자가 목을 만지며 내렸다. 브레이크를 늦게 밟은 것 같다고 인정한 후, “흠은 보이지 않지만 세차비라도 얼마 드리겠다”고 했더니 “지금은 바쁘니 명함을 주고 가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좋은 분이구나 생각하며 집에 도착하니 저녁에 전화가 왔다. 목이 아파 입원했으니 보험회사에 신고하기 바라며, 더 이상 연락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황당했으나 도의상 일단 문안을 가야 할 것 같아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병원에 갔다. 9시도 되지 않았는데 베개만 덩그러니 있을 뿐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집에 들어갔는데 오늘은 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만 듣던 나이롱환자가 분명했다. 보험회사에 사실을 알리니 “상대가 그 방면에 전문가라 도리가 없다며,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분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으나 보험회사에서 상당액의 합의금을 지불했으며, 내 보험금도 얼마간 인상됐다. 이런 거짓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하기사 요즘 정치인들이 쏟아 내는 막무가내 거짓말에 비하면 그 어떤 거짓말도 비난할 바는 못 된다. 한때 대통령의 측근으로 권력의 실세였던 모 전직 장관은 증거 인멸을 위해 컴퓨터를 빼돌린 엄연한 사실을 ‘증거 보존’이라 했으며, 모 현직 장관은 여당 대표 시절 아들 관련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국회에서 27번이나 거짓말을 했다는데 검찰 조사결과 사실이 들어나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으니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이없는 거짓말에 국민들은 이제 분노하다 못해 허탈할 지경이다. 이러한 거짓말의 색깔은 아마도 까만 정도를 넘어 시커멓지 않을까 싶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에 네다섯 번 거짓말을 하며,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정도 많단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거짓말은 “딱 한잔만 했어”와 “내일부터 술 담배 끊고 운동할 거야”라고 한다. 이런 거짓말에는 틀림없이 고운 분홍빛이 날 것이다. 진실만을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쁜 색의 거짓말을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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