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모던걸 윤심덕의 사의 찬미(死의 讚美)
[선비촌만필] 모던걸 윤심덕의 사의 찬미(死의 讚美)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11.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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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1926년 봄에 죽은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장례일 기해 학생들이 중심이 된 6·10 만세운동으로 어수선했던 그해 늦가을, 실의에 찬 식민지 백성들의 가슴을 후벼 판 ‘사의찬미(死의 讚美)’라는 대중가요가 경성의 뒷골목에 울려 퍼졌다.

“… 눈물로 된 이 세상에…”
“…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이런 가사의 노래가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단음계의 구슬픈 선율을 경성의 남녀들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염세적 가사에 취해 불렀던 이 노래의 사연이 알려지자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동경 음악학교를 관비로 유학한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 윤심덕이라는 신여성이 유부남(有婦男) 김우진과의 맺지 못한 사랑을 비관해 함께 현해탄에 투신한 정사(情死)의 주제가(?)였다는 것이다.

‘사의찬미’ 노래 가사는 당시의 모던보이(modern boy), 모던걸(modern girl)들에겐 바로 자신들의 신세 한탄사(恨歎辭)였던 것이다.

20세기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 대중문화와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사상의 영향으로 지식인 사회와 젊은이들 사이에 정체성 혼란과 함께 염세적(厭世的) 허무주의 풍조까지 만연했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동경제국대학 학생이나 동경 제1 고등보통학교의 천재들이 ‘인생은 불가해(不可解)’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던 자유연애 풍조에다 기생 강명화나 카페 여급 김봉자 정사사건 신드롬이 경성에 화제가 되고 있던 시절 윤심덕과 김우진의 유언 같은 ‘사의 찬미’라는 가요를 남기고 정사(情死)했으니 조선의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집단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심덕은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등과 함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던걸 들이자 ‘낭만좌파’ 여성들이었다. 기독교 영향으로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이들은 여성들을 옥죄던 봉건적 신분질서와 남녀 차별적 인습의 굴레에 도전하던 여전사(女戰士)들이자 자유연애의 선구자들이었다.

당시 신여성들의 시야에 들어온 또래의 모던보이들은 이미 부모의 강권으로 조혼(早婚)했거나 자녀를 거느린 유부남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들이 연애하고 사랑의 감정으로 결혼할 상대는 흔치 않았다.

대화가 통하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낭만적, 지성적 모던보이들은 이미 기혼자이다 보니 그들의 사랑은 곧 불륜이요 이루어질 수 없는 신기루였으며 사회적, 가정적 비난의 대상일 뿐이었다. 사회적 지탄의 화살은 오롯이 모던걸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자유연애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거나 본부인을 버린 비정한 모던보이들의 파경이 세간에 화제가 되던 시절에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 정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윤심덕이 직접 작사했다는 이 노래의 가사는 지극히 염세적 인생관을 담고 있다.

봉건적 인습의 장벽에 가로막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로망을 자살을 통해서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정사사건에 슬퍼하는 모던세대와 패가망신을 자초한 모던풍조를 개탄하는 기성세대의 탄식도 함께 흘러나왔다.

‘사랑은 지고지순한 도덕’이며 ‘죽음이란 일체를 정당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극단적 연애 지상주의는 당시 일본에 풍미했던 사조를 맹목으로 수입한 불량 외래품이라고 폄하하는 가하면 “연애의 진정한 가치는 차라리 실연(失戀)에 있으며 실연의 아픔을 사랑의 열정으로 죽음을 불사(不辭)하는 것이야말로 절대미(絶對美)의 극치”라며 옹호하는 부류도 있었다. 당시의 정사(情死) 풍조에 대한 세간의 반응도 양극화되고 말았다.

사의찬미를 유언처럼 남기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은 일본의 악풍(惡風)에 놀아난 지극히 부정한 자살로 매도를 당하면서도 그 음반은 일본과 조선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발매 6개월 만에 1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그들이 현해탄에 투신하기 3일 전에 닛토(日東) 레코드사에서 녹음한 음반은 대박이 났고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 윤심덕은 오늘까지 ‘정사의 화신’이 된 신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사랑했기에 ‘죽음’이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물음에 윤심덕은 ‘사의찬미’라는 노래로 대답해 놓았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윤심덕이 쓴 ‘사의찬미’ 가사 중에서)

여자는 사랑을 말해선 안 되는 봉건적 인습과 20세기까지 지속된 조혼 풍속에서도 자유연애에 탐닉하던 모던맨들의 염세적 인생관을 노래한 이 가요는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란 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이고 동생 윤성덕의 반주로 녹음했다고 한다.

오늘날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는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의 모던맨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자유연애와 사랑의 방정식, 그리고 ‘사의 찬미’ 가사에 녹아있는 허무주의 감성들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대중가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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