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하원의원 4명 당선은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
“미국 연방하원의원 4명 당선은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0.11.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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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상원 미주한인재단 전임 전국총회장
박상원 미주한인재단 회장
박상원 미주한인재단 회장

지난 11월3일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한인이 4명이 당선됐다.

메릴린 스트릭랜드는 워싱턴주 제10선거구에서, 앤디 김은 뉴저지주 제3선거구에서, 미셸 박 스틸은 캘리포니아주 제48선거구에서, 영김은 캘리포니아주 제39선거구에서 선출됐다.

미국 한인 중 연방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해는 1992년(김창준)이었다. 하지만 1999년 김 의원이 예비선거에서 패한 후 2018년 앤디 김의 당선까지 19년간 한인 연방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한인 4명이 동시에 미국 연방의회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4명 중 3명이 여성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메릴린 스트릭랜드, 미셸 박 스틸, 영 김은 순자, 은주, 영옥이라는 친근한 한국 이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SNS에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이분들은 순자, 은주, 영옥 같은 정겨운 이름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에 미주 한인이 4명이나 연방하원의회에 입성하게 된 것은 모든 미주 한인들의 자랑입니다. 한인들의 역량이 미국에서 이만큼 커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미국에서 주류 사회로 진입했다는 증거입니다.”

11월20일 박상원 미주한인재단 전임 전국총회장이 본지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 영 김은 LA에서, 미셸 박은 LA 인근 오렌지카운티에서 활동하는데 박 회장은 특별히 캘리포니아주 미셸 박 스틸과 영 김의 당선에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며 이들이 한인들과 함께 성장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영 김은 중학교 때, 미셸 박은 대학교 때 미국에 온 소위 1.5세 한인입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미국 주류 정치계로 진입한 것은 실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영 김 의원은 중학교 때인 1975년 가족과 함께 괌으로 떠나면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괌에서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해변에서 빈 캔도 주웠으며, 어머니는 이것을 모아 한인교회 구입에 기부했다고 한다. 괌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고등학교는 하와이에서 다녔다. 미군에 입대한 막내 언니의 주둔지였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섬을 떠나 본토에 있는 대학을 지원해 남가주대학(USC)에 입학했고,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으며, 시민단체 ‘한미연합회’ 활동을 하는 남편 찰스 김을 만나 결혼했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에드 로이스로부터 파트타임으로 의원실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은 것은 남편 일을 돕던 1990년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에드 로이스 의원의 아시아 정책보좌관으로 20여년간 활동했고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2013년엔 캘리포니아에서 유일한 한인 주의원이 됐다.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로 일했던 2016년, 미셸 스틸 박 의원이 박상원 회장과 공화당 캠페인 행사에 참석했다.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로 일했던 2016년, 미셸 스틸 박 의원이 박상원 회장과 공화당 캠페인 행사에 참석했다.

미셸 박이 처음 외국 생활을 한 곳은 일본 동경이었다. 중학교 시절 미셸은 아버지의 일본 파견근무 때문에 동경으로 이주했다. 동경 한국학교에 다니며 첼로 연주를 계속했던 그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음악대학 진학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장래 전문직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부모의 판단 아래 일본여자대학 영문과에 진학했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셸은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76년 미 서부에 있는 페퍼다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경영학 공부를 시작한 것.

그가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1992년 LA 한인 폭동이었다. 1993년부터 6년간 방송 코멘테이터로 나서 발언을 했고, 이와 함께 남편과 정치적 인맥이 닿는 딕 리오단 LA시장의 추천으로 LA 소방국 커미셔너로 활동했다.

“영 김, 미셸 박 모두 미주한인재단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미주한인의 날 제정에 앞장섰고 매년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미주한인재단은 지난 2003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각 지역 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를 승계해 전국조직으로 발전시킨 조직이다.

영김 의원과 남편 찰스 김.
영김 의원과 남편 찰스 김.

재단은 매년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으로 일한 영 김,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로 일한 미셸 박이 각각 캘리포니아주 미주한인의 날, 오렌지카운티 미주한인의 날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은 영 김 의원의 남편인 찰스 김과 매우 각별한 사이다. KAC(한미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찰스 김과 협력해 미국한인100주년기념사업회 사업을 진행했다.

“이제 한인 의원이 4명이나 배출됐기 때문에 미주 한인사회가 더욱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한인들은 이들이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해 헌신하는 의원이 되도록 묵묵히 지원해야 합니다. 모범적인 한인사회를 만들고 한인사회가 단합하는 것이 이들을 돕는 길입니다.”

2015년 미국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주의회에서 열린 미주한인의 날 선포식. 가운데가 영김 의원.
2015년 미국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주의회에서 열린 미주한인의 날 선포식. 가운데가 영김 의원.

박상원 회장은 이번에 4명의 연방하원의원뿐만 아니라 스티븐 최(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3선), 데이브 민(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신디 류(워싱턴주 하원의원 6선), 샘 박(조지아주 하원의원) 등 한인 다수가 각 주 상·하원의원이 됐다고 전하며, 한인사회가 힘을 모아 한인 정치인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2년 미국으로 이주해 LA에서 정착한 박상원 회장은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녑사업회 남가주 사무총장에서 시작해 미주한인재단 전국 총회장을 역임했고, 세계 각국 한인 지도자들과 뜻을 모아 세계한인재단을 설립했다.

개인 비즈니스로는 남양운송주식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현재 박용만기념재단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용만 장군은 1910년 4월1일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에 소년병학교를 창설했는데, 이는 미국 대륙에서 최초로 조직된 한인군사조직체였다. 이 학교는 유일한 유한양행설립자 등 실지로 한인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이밖에 한국의 뿌리를 차세대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성씨총연합회 미주총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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