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나의 일본 오카상
[대림칼럼] 나의 일본 오카상
  • 최해선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0.12.07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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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거나 친절을 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삶에 힘이 되고 보탬이 된다. 그 누군가가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그저 한번 스친 인연일지라도 오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을 닮고 싶어진다.

“내가 사이상(崔さん)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일본에도 오카상(어머니)이 있으니 슬퍼하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요.”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오카상이 해준 말씀이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고, 떠올릴 때마다 위로가 된다.

오카상은 내가 일본 유학 시절, 마츠야마(松山, 에히메현의 소재지)에서 하숙했던 죠신지(常信寺)의 주인이자, 선대 주지 스님의 부인이다. 일본의 불교는 스님에게도 결혼과 육식이 허용되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죠신지는 마츠야마의 명물인 도고온천(道後温泉)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있으며 아름다운 정원과 벚꽃으로 유명하다. 죠신지숙소는 이미 돌아간 선대 스님이 호주 유학생의 홈스테이 경험을 계기로 지어진 유학생용 숙소다. 원룸 두 채가 나란히 이어진 2층짜리 건물인데 시중에서 임대되는 원룸보다 훨씬 넓고 쾌적할뿐더러 아주 저렴한 임대료로 유학생들에게 제공됐다. 중국, 미국, 인도, 호주, 스웨덴 등 여러 문화 배경을 지닌 유학생들이 이 숙소를 거쳐 갔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죠신지에서 사는 동안, 오카상은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늘 챙겨 주었고 좋은 추억이 되라며 곧잘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었다. 코스모스가 한없이 펼쳐진 꽃밭에도 데려가고, 반딧불을 보려고 일부러 늦은 밤에 드라이브하기도 했다. 가끔 우아한 찻집과 음식점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직접 입혀 주며 체험하도록 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호텔에서 예식장 시뮬레이션 행사에 모델로 발탁됐을 때도 손녀딸과 함께 응원차 행사장을 방문해서 기를 세워주기도 했다. 특히 시집간 딸과 둘째 아들이 본가로 올 때면 나도 가족 모임에 초대해서 함께 어울리게 했다. 그런 오카상 덕분에 마츠야마에 있을 땐 외롭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이 즐겁게 잘 보냈다.

죠신지숙소는 입주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마당 청소였다. 대개 이른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오카상과 함께 마당을 쓸거나 정원의 풀을 뽑거나 법당 마룻바닥을 닦는 일이다. 한 주일에 한 번만 있는 일이지만, 올빼미족인 나에겐 아침 약속을 지켜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구석구석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다 보니 어느덧 나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일도 일이지만, 오카상은 이 시간을 이용해서 철 따라 정원에 피는 꽃들을 구경시켜 주며 꽃들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주곤 했다. 1월이면 동백꽃, 2월이면 매화꽃, 3월이면 수선화, 4월이면 벚꽃, 5월이면 철쭉, 6월이면 수국… 그야말로 죠신지의 정원은 지루할 새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세시풍속이며 역사,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일본 사찰의 문화 등등 내가 일본을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나에게 반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정확하고 예쁘고 품위 있는 일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학생과 조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며느리인 리츠코씨가 어느 유학생과 마찰이 있어서 괴로웠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죠신지숙소를 폐쇄할까 망설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일본 사찰의 울안에는 묘지도 있다. 죠신지에도 정원 깊숙이 들어가면 고인들을 모신 묘지가 있다. 게다가 숙소의 위치도 바로 주인집의 옆인지라 지켜야 할 에티켓이 많았고 사찰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즉 죠신지를 방문하는 신자들이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널거나 소란스럽게 구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특히 저녁 9시가 지나면 사찰 전체가 고요한 적막이 흐르기 때문에 밤늦게 친구를 초대해서 홈 파티를 즐기거나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 암묵적 룰이다. 행동 제약이 많으니 젊은 청춘들에게는 어쩌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서로의 문화 습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트러블도 가끔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카상은 몇몇 유학생들과 생긴 마찰로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않고 더욱더 유학생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숙소를 운영하였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유학생이 좋은 환경에서 일본의 문화를 접하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끼리도 가깝게 어울리면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때 옆집에 하숙하고 있던 인도 유학생 람과 두터운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면서 정든 죠신지를 떠나 코베로 이사하게 됐다. 떠나는 날, 오카상은 나의 손을 잡고 “사이상이 여기 살아줬기에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 고마워요”라고 하셨는데 헤어짐의 슬픔보다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서 한동안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오카상과 죠신지에서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기억들은 훗날 살아가면서 늘 나에게 힘이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도록 힘이 됐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력이 됐다.

한편, 일본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겉치레 관계가 많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지레 겁먹고 접촉하기도 전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카상 덕분에 나 또한 일본인들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사람은 처한 환경이나 몸담고 있는 문화 배경에 따라 보이는 표상은 달라도 내면은 같을지도 모른다. 어느 개인의 행동을 보고 섣불리 일반화하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한 개인 혹은 집단의 1%를 보고 99%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난 오늘도 오카상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필자소개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일본 에히메대학 사회학 석사, 일본 칸세이가꾸인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 모 IT회사 해외마케팅팀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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