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58] 나폴레옹의 복수
[유주열의 동북아談說-58] 나폴레옹의 복수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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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이야기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라는 글이 있었다. 드넓은 미국을 며칠씩 걸려 기차로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으로 기억된다. 그 시절 시내 영화관에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서부극이 대세를 이루어 인디언(native American)과 푸른 제복의 기병대가 총격전을 하면서 싸우는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광활한 미국 대륙을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공무원이 된 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정부에서는 공무원의 해외연수를 2년으로 하고 가족동반과 함께 학비와 체재비를 전액 부담해주었다. 운 좋게도 2년간 국비 유학생이 돼 미국에서 가장 번화한 뉴욕시의 C 대학에 입학 허가를 얻었다.

출국하면서 시카고로 가는 동료 K와 첫 여름방학 때 미 대륙을 같이 일주해 보자는 약속을 했다. 당시 대륙횡단은 기차보다 거미줄 같은 전국노선을 가진 장거리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가 편리해 보였다. 일정 기간 패스를 끊으면 그 기간 내 언제 어디에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출발은 K가 있는 시카고에서 시작해 로키산맥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거쳐 시애틀에 도착했다. 시애틀에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와 샌프란시스코와 요세미티 그리고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과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세인트루이스에서 K와 헤어져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3주에 가까운 여행인데 화장실이 딸린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야간에는 아늑한 침실이 됐다. 어느 밤인가 차창을 통해 버스를 따라오는 대평원의 보름달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미국의 도시들이 대개 대서양 연안의 동부와 태평양 연안의 서부에 몰려있어 광활한 내륙은 하루 종일 달려도 창밖의 풍경이 바뀌지 않을 때도 많았다. 무료한 가운데 금방 어디선가 말을 타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타난 인디언이 우리 버스의 창문으로 도끼날을 밀어 넣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유럽이라면 수많은 나라로 나뉘어 있을 텐데 미국 한나라가 어떻게 이 넓은 땅의 주인이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 마침 승객 중 점잖은 노신사를 만나 대화의 기회를 가졌다.

노신사는 루이지애나 구입(Louisiana Purchase)처럼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큰 나라의 꿈을 가지게 됐던 미국에 대해 건국과 함께 부동산거래를 통한 영토확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북미대륙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은 대서양 연안에 여기저기 독립적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평화로운 정착이 목적이었기에 추수감사절에 이웃의 인디언을 초대해 칠면조를 잡아 축제를 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 무렵 프랑스인은 비버의 모피 교역(fur trade)을 위해 인디언 거주지와 비버 서식지를 찾아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은 좋은 모피를 구하기 위해 인디언과의 교류도 넓혀나갔다. 당시 프랑스 상류층은 난방이 불충분한 겨울철에 남녀 할 것 없이 겉옷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비버 모피를 좋아했다.

비버(beaver, 河狸)는 북미대륙의 로키산맥과 미시시피강 사이에 핏줄처럼 얽혀 있는 크고 작은 하천에 서식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모피 사냥꾼이 검은담비(sable) 등을 찾아 동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러시아 영토가 된 것처럼 프랑스인도 비버를 찾아, 퀘벡에서 시작해 세인트 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 오대호에 이르고, 다시 미시시피강을 따라 멕시코만까지 남하해 새로운 영토를 확보했다. 거대한 영토를 국왕 루이 14세에게 충성으로 바쳐 루이지애나(루이의 땅)라고 불렀다. 영국의 얌전한 식민지 정착민은 서쪽으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지 않았는데 프랑스인은 비버를 찾아 활동반경을 한없이 넓혀나가자 영국과 프랑스 간의 충돌은 시간문제였다.

18세기 유럽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서 시작된 7년 전쟁(1756-1763)은 북미대륙에서 인디언과 합세한 프랑스와 영국과의 패권을 다투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발전했다. 점차 전선이 카리브해로 확대돼 프랑스는 경제적 가치가 높은 서인도제도를 지키고자 북미대륙을 포기하고 퀘벡 등 캐나다와 미시시피강 동쪽을 영국에 할양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다. 국내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엄청나 재무대신 실루엣은 내핍생활의 일환으로 호화로운 초상화를 금지시키고 단순한 그림자 초상화(shadow profile)를 장려해 그의 이름을 딴 ‘실루엣’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영국도 재정이 고갈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준 식민지에도 과다한 세금을 부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본국 정부에 불만이 많았던 13개 식민지는 단합,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20년 전 영국에 대패한 프랑스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켰다. 그사이 독립을 반대하는 왕당파들은 대거 캐나다로 이주했다.

체사피크만 해전에서 세계 최강 영국함대가 프랑스함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을 계기로 1783년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미시시피강 동쪽도 넘겨주자 신생 독립국 미국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서로 영토가 크게 확장됐다.

미국은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했다. 비옥한 평야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이 미시시피강을 통해 남쪽으로 운송되는데 멕시코만으로 나오려면 프랑스령인 뉴올리언스를 통과해야 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제임스 먼로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프랑스에 파견, 뉴올리언스 구입을 타진했다. 쿠데타를 통해 최고의 권력자가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로키산맥의 동쪽까지 방대한 루이지애나의 구입을 권유했다. 뜻밖의 제안에 사절단은 당황했다.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미 대륙에 ‘뉴 프랑스’ 건국을 계획했으나 유럽에서의 전비 조달이 급선무이고 무엇보다도 미국에 매각하는 것이 숙적 영국에 대한 복수로 여겼다고 한다.

미화 1,500만불에 215만㎢의 거대한 루이지애나(현재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16배) 구입으로 영토가 다시 크게 늘어난 미국이 더 이상 대서양국가에 머물 수 없게 되고 태평양을 향해 본격적인 개척에 나서게 되자 선주민 인디언과의 마찰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이론이 유행했다. 하느님(神)이 미국을 축복해 북미대륙 전체를 개척, 지배하라는 신성한 의무를 부여했다고 믿으면서 영토확장(Go West)에 따른 비인도적 문제를 합리화시켰다.

미국은 팽창주의를 경계하는 유럽 열강의 간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다. 미국의 서부 진출이 계속되면서 인디언들은 졸지에 고향을 빼앗기고 새로운 정착지를 향해 강제이주되는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가야 했다.

한편 북미대륙의 남서부는 19세기 초까지 스페인영토였으나 유럽에서의 나폴레옹전쟁으로 스페인 왕실이 무너지자 이 기회를 이용 현지 식민지가 본국 정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1821년 스페인의 광대한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아 독립한 멕시코는 텍사스에서 미국과 국경을 접하게 됐다. 텍사스가 스페인령일 때부터 이주해 살아온 수많은 미국인이 새로운 멕시코 정부의 간섭에 반발, 미국의 지원으로 전쟁을 일으켜 독립을 성취하고 1845년 미연방에 합류했다.

유럽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끝없이 밀려오는 이민자를 수용하기 위한 미국의 영토확장은 텍사스를 넘어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멕시코와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은 1847년 전쟁을 통해 캘리포니아 및 애리조나 등 로키산맥 남단을 헐값에 할양받아 미국령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독립 당시 13개 주(88만㎢)가 70년 만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엄청난 영토(810만㎢)를 가진 대국이 된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어느 도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내릴 곳은 확인한 노신사는 “신은 미국에 특별한 은총(providence)을 베풀었다”는 독일 비스마르크 재상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제2의 루이지애나 구입이라고 할 수 있는 알래스카 구입은 또 하나의 “신의 은총”이라고 했다.

1867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미국에 뜻밖의 제안을 했다. 미화 720만불에 160만㎢의 광대한 알래스카 매각이었다. 크림전쟁의 여파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러시아는 교전국 영국이 언제든지 점령할지도 모르는 알래스카를 미리 미국에 팔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황제도 나폴레옹처럼 미국을 도와 영국에 대한 견제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노신사가 내린 후 우리 버스는 다시 원의 중심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God bless America(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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