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굿바이, 2020!
[해외기고] 굿바이, 2020!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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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에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서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202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여운 때문이었다. 20이 두 개 겹치는 귀한 숫자가 왠지 예견하지 못할 행운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을 가졌었다. 그러나 새해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엄청난 경험을 했으며, 지구가 분노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게 들었다. 한해가 끝나가는 지금 사람들은 얼마나 반성했으며 또 다른 자연 파괴를 자제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정말 궁금해진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끝없이 펼쳐진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사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 서 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힘든 경험을 한 뒤에야 더 강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굿바이! 2020 쥐띠의 해! 모든 힘든 일들을 이제는 과거라는 이름으로 띄워 보내고 싶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한동안 메말랐던 갈증을 풀어주며 답답했던 기분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느낌이다. 태풍에 떠밀려 휘몰아치는 비바람이지만 메마른 흙먼지를 씻어내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으니 한결 상쾌하게 보인다. 나는 한 여름날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좋아하며 가늘게 흩뿌리는 이슬비도 좋아한다.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방울의 맑고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져서다. 청춘의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작은 물방울의 흐름을 보며 감성을 느낄 수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속에서 마무리하는 한해의 끝자락은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시작을 실감하지 못한 채 보내게 된다. 아열대 도시에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건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12월은 매서운 찬바람과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을 치는 거리의 인파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켜준다. 태어나서부터 이미 깊숙이 입력된 무의식의 기억이다. 기억이란 잊힌 것 같아도 무의식 세계에 남아서 꿈을 통해 영상처럼 의식으로 끌어 올려지기도 한다.

지난주에 아주 특별한 분들을 만나서 이른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오래된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슴에 안고 사는 할아버지들, 그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인 베테랑 군인들이다. 연세가 90세를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들은 ‘노병은 살아있다’는 듯, 과시하는 모습으로 굽어진 어깨를 펴며 노병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골드코스트한인회(회장 전주한)와 민주 평통이 주관해서 퀸즐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 노병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만찬을 주최했다. 매년 중요 행사로 치르는 만찬이지만 해마다 참석인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연세가 많은 노병이 70여년의 세월을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안전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내놓고 위험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가슴에 작은 선물 바구니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보은’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노병들은 남은 생애를 보내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픈 기억의 끈을 놓지 못할 것만 같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여생을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텔레비전 앞에 앉는 시간도 길어진다. 역사물을 즐겨보는 편이라서 지나간 드라마까지 찾아서 다시 보기를 하게 된다. 보면 볼수록 역사 속의 정치와 인간관계가 현재 내가 사는 이 시대와 맞아떨어진다. 최근에 보았던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인지 역사물인지 헷갈리는 장르인지만 어김없이 정쟁을 일삼고 죽이고 죽이는 일이 반복된다.

터무니없는 스토리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권력은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지금의 한국 정치를 보면 수백 년 전 양반계급들이 저질렀던 패악들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변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역사물은 흥미롭고 늘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긴 여름방학을 맞았으니 역시나 한국드라마의 중독성에 빠져 들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는 새해를 맞기 위한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따른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항상 새로운 길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 가슴 안에 쌓여 있는 기억을 정리된 하나의 글로써 표현하는 것도 자아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잊고 싶은 2020년이지만 절대 잊히지 않을 한 해가 될 것 같다. 2021년, 소의 해에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되찾을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우리 동포들에게 새해에는 가정에 복된 일들이 많이 생겨서 대문 밖으로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파이팅!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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