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91] 벼·쌀·밥
[아! 대한민국-191] 벼·쌀·밥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0.12.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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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벼농사는 여름철 기온이 30℃ 이상이어야 하고, 벼가 자랄 수 있게 물을 담을 수 있는 논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가 시작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5천년 전 볍씨가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노리에서 출토됨으로써 한반도의 벼농사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벼농사는 한민족의 먹거리뿐만 아니라 생활태도와 의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벼농사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공동체 의식이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중국 강남에서 도입한 이앙법을 원용하는데, 그러자니 짧은 기간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집약농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이앙법은 볍씨를 준비해 모를 키운 후에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자면 ‘때’를 놓치지 않고 모내기를 해야 한다. 당연히 모내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김을 매거나 벼를 수확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공동체 문화다. 벼농사는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낳았고, ‘두레’라는 공동체 문화를 창출했다. 두레 문화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영에 맞게 개인의 생각을 맞추어야 한다. 또 농사일이 고된 만큼 거기서 노동요가 태어났다.

벼를 수확하여, 그 껍질을 벗긴 것이 쌀이다. 쌀을 헤아리는 단위로 ‘섬’이라는 말을 쓰는데 한 섬은 껍질을 벗긴 쌀 144kg을 일컫는다. 농사가 주업이던 시대에는 1인당 1년에 쌀 한 섬을 먹었지만, 탄수화물의 과다섭취가 복부비만 등 성인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 2019년의 그것은 59kg이었다.

그릇 위로 수북하게 올라와 있는 밥을 고봉밥이라고 하는데, 주인이 일꾼에게, 또는 생일날에 어머니가 담아주는 고봉밥은 후한 인심의 표현이었다.

쌀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혼분식 장려, 쌀 막걸리 금지, 보릿고개의 아픔 같은 것이 일상적으로 반복되었고, 새만금이나 시화호의 간척도 당초의 목적은 보다 많은 쌀을 생산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식량 자급도는 50% 남짓이지만 쌀만은 자급하고도 남는다.

벼농사 문화는 여름 들판의 푸르름, 가을의 황금 들녘, 타작마당의 인심 등 한국적인 풍경과 정서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쌀은 단순한 식량 이상의 것이었다. 삶의 원천이자 생명의 끈이었다. 한국인을 잇는 끈이 쌀이요 밥이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은 먹었니?”가 우리들의 인사법이었다.

‘밥이 하늘’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락 한 알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천도교 수운파 해월의 사상이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원군 옥산면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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