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이야기] 감투할미
[규방공예이야기] 감투할미
  • 구본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05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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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경이 규방공예가

바쁘게 지나는 일상을 뒤로하고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에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심취하게 된다. 오롯한 집중으로 마음의 잡다한 먼지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육아를 끝내고 아이가 자는 시간은 비로소 바느질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늦은 시간 조금만 더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바느질에 푹 빠져 어느새 밤을 지새우기 일쑤이다.

바느질은 나에게 휴식이자 조용한 놀이다. 평소 소비가 많지 않지만, 바느질 관련 재료 구입에 있어서는 큰손이다. 하나, 둘 사다 보니 원단이 많이 쌓여 짐스럽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마음에 드는 원단을 보면 뭔가에 홀린 듯 구매해버린다. 하나하나 바느질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뿌듯해 좀 더 빠른 속도로 해보고자 재봉틀도 장만했지만, 여전히 손바느질이 주는 재미에 밀려 재봉틀은 관심 밖이 되었다.

두꺼운 원단을 사용하거나 바느질을 오래 하다 보면 손이 아프기 때문에 꼭 필요한 도구가 있다. 지금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골무이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이 골무를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골무 원단 안에 종이 심지를 넣어 딱딱하게 만들거나 명주실을 둥글게 감아 두껍게 만들기도 했다. 손끝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다. 자수가 놓인 자수 골무, 조각 원단을 이어 만든 조각 골무,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경상도 골무 등 종류들도 다양하다. 단순히 손끝을 보호하는 역할을 넘어 골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옛 여인의 미의식도 엿보인다.

최초의 한글 소설인 ‘규중칠우쟁론기’에서 바느질 도구인 척부인(자), 교두각시(가위), 세요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낭자(인두), 울낭자(다리미) 가 등장한다. 바느질 도구를 의인화하여 각시, 부인, 할미 등으로 지칭한 상상력이 무척 흥미롭다. 골무를 감투할미는 모양이 감투처럼 생겼을 뿐 아니라 머리에 쓰는 것과 손가락에 씌우는 것을 동일시한다. 또한, 오랜 세월 바느질과 함께하는 만큼 할미라는 의인화가 잘 어울린다. 소설 속의 규중칠우들은 옷을 짓는데 서로 자기의 공이 더 많다며 다툰다. 그리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잠이 들다 깨어난 주인이 이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이들을 쫓아내려 했으나 감투할미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 모두가 무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감투할미인 골무가 바늘에 얼굴을 항상 찔리지만, 낯가죽이 두꺼워 이제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또 쉬운 일 어려운 일 가리지 않고 전장에 방패처럼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에 교만하지 않고 우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사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손끝을 보호해 주는 골무에서 느껴지는 듬직함 때문일까. 옛 여인들은 결혼 전 100개의 골무를 만들어 골무 상자에 담아 장수를 기원했다. 시댁에 솜씨를 보여주는 역할도 했다. 결혼 전 100개의 골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았을까.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더해 만들어진 골무를 보면 숙연함이 느껴진다. 바느질을 위해 필자도 골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시중에 판매하는 인조가죽이나 쇠로 된 간단한 모양의 골무이다. 전통골무 하나쯤 소장하고 싶었는데 아예 옛 여인처럼 100개의 전통골무를 정성을 쏟아 만들어볼 작정이다. 백세 장수를 기원하는 전통적 의미와 더불어 골무의 교만하지 않은 우직함을 닮아가리라 다짐하면서.

필자소개
2018 계간문예 수필부문 등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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