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18] 김정은은 왜 평양민속공원을 뒤엎었을까?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18] 김정은은 왜 평양민속공원을 뒤엎었을까?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1.01.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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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떻게 바뀌어왔으며, 또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1989년 이래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해 취재한 송광호 토론토 주재 언론인이 방북 때마다 보고 느낀 점들을 시리즈로 정리했다. ‘바뀌어온 북한’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은 현재와 같은 남북경색국면에서 긴 눈으로 북한의 새로운 변화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평양 민속공원(2013)

지난해(2020년) 여름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에 큰물(홍수)피해가 났다. 엄청난 폭우로 제방이 터져 9백여 동의 살림집과 수백 정보 논이 침수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수해현장을 둘러보며 “내 양곡과 물자를 풀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북한 내 모든 것은 김 부자 개인소유나 다름없으니 그런 식의 명령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예전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내 것을 나눠줘라”는 식의 노골적인 지시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북녘땅에선 김 부자 것이 꼭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국가의 공공물품은 모두 그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북 주민들은 “수령님이 주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국가 또는 나라에서 주었다”고 말을 한다. 평양에서 주민 집(아파트)을 두세 번 방문했을 때도 집주인은 대형 TV를 가리키며 “저건 국가로부터 받은 겁니다”라고 자랑스레 말을 했다.

17=18세기 “짐은 곧 국가다”라고 선언한 프랑스 루이 14세 생각이 났다. 루이 14세 별칭은 ‘태양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기간 프랑스는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으나, 과도한 사치와 낭비 등으로 많은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루이 16세 때인 프랑스혁명시기 그는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때 루이왕조도 끝이 났다. 약 4백 년 전 전제군주시대 우리들이 다 기억하는 스토리다.

평양 민속공원 내 왕릉

아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사후 3년 상이 끝난 지난 1997년 “김일성 주석은 태양과 같다”며 4,15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명명했다. 또 주검이 놓여있는 장소를 ‘금수산 태양궁전’이라 불렀다. 루이 14세와 묘하게 태양이름을 사용해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처음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1980년대 말과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한 태양 관련 호칭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즉 1997년 주체연호(김일성 태어난 1912년을 원년기준)를 채택하면서, 비로소 ‘태양절’로 일컫게 된 것이다. 김정일 생일(2월16일) 또한 공휴일로서 ‘광명성절’이라고 불렀다.

김일성 생일은 공식 북한민족 최대명절 중 하나다. 김일성 광장에선 각종 대규모행사와 성대한 열병식 등을 치른다. 오랜 세뇌작업을 통해 주민들 사이엔 어느 틈에 조선민족이란 이름보다 김일성민족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듯했다. 아직 젊은 김정은 위원장 생일(1월8일)은 국가공휴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적절한 기회에 김정은 생일의 공식 공휴일 선포도 시간문제로 생각된다.

지난 2016년 5월6일.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만 36년 만에 열렸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국내 그의 입지를 더욱 굳히는 중요한 날이었다. 지난 1980년 제6차 대회이래 당 대회는 중단된 상태였다가, 이날 오랜만에 대회를 통해 명실공히 조선노동당위원장이 됐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명칭 외 백두혈통의 3대 세습을 인정받고, 새삼 당위원장으로서 권력행사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이때 당 규약에도 핵보유국 내용을 집어넣었다. 바야흐로 김정은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사실 서방국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진작 정권을 잡은 터라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평양 민속공원에 있는 석굴암

한 달 뒤 6월. 김정은 위원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을 벌였다. 그것은 북한 김정일/김정은 2대에 걸쳐(2009-2012) 공들여 완성시켰던 ‘평양민속공원’을 갑작스레 해체했기 때문이었다. 이 평양민속공원은 김정일 사후 다음 해인 2012년 9월 60만평의 광활한 부지 위에 건설된 대규모 민속공원이었다. 새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뜻깊은 ‘민족문화유산’으로 소개되던 녹지 환경의 공원이다.

이 공원은 평양 북부지역 대성산 안학궁 터 인근에 위치했다. 우리민족 고대부터 오늘까지의 역사흐름을 보여주는 각종 유적 물 등을 선보였다. 남한의 석굴암 등도 포함됐다. 공원완공 후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원건설을 계획한 김정일 장군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조총련신문도 현지답사를 통해 “민속촌박물관에는 원시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반만년 민족사와 당대 풍습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고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이후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은 “이 평양민속공원을 방문한 인구수가 3년간 약 117만 명이 관람했다”고 밝혔다. 특히 평양민속공원은 외부관광객과 더불어 평양 신혼부부들의 필수코스로 소문났다. 과거 신혼부부들은 결혼 당일 김일성 동상 참배 후 시내 건축물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보통 과정이었다. 그러나 민속공원이 생기면서 평양에서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해 약 1시간 정도 거리의 시외공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양민속촌에서는 다양한 옛 시대의 각종 의상 물 체험과 결혼사진 촬영 등도 가능했다. 조총련 신문은 공원 내 숙박시설도 갖추었다고 선전했다. 당시 나도 관심을 갖고 평양민속공원에 전시됐던 많은 유물, 유적사진 등 자료들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이젠 완전히 사라진 유적 사진들(첨부)만 남게 됐다.

2021년 김정은 새 내각구성 기념촬영

그렇게 인기 높던 평양민속공원이 아무 소리 없이 갑자기 폐쇄되니 주변의 놀라움은 컸다. 폐쇄까닭에 대해 평양주민들뿐 아니라 해외언론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북한당국이 그간 평양 민속공원건설을 위해 쏟아 넣은 돈이 자그마치 수억 달러에 달했다. 엄청난 금액뿐만이 아니다. 동원된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은 또 어떠한가. 전부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셈이다. 도대체 그 잘 나가던 평양민속공원을 완전히 뒤엎은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이유는 김정은 본인의 발설로 곧 밝혀졌다.

그건 2013년 처형당한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과 관련돼 있음이 드러났다. 당초 장성택은 김정일 위임아래 평양민속공원건립을 주도한 장본인이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민속공원을 볼 때마다 “장성택이 생각난다”며 계속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한다. 급기야 친척인 장성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공원폐쇄라는 극단조치를 취한 것이다. 해외언론은 김정은의 평양민속공원 폐쇄조치는 곧 ‘장성택 흔적지우기’라고 단정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의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라고 부정적으로 평했다. 일본 도쿄 신문도 ‘단락적 (신중하지 못하고 짧은)인 사고행위’라고 혹평했다. 평양공원이 사라지고 대신 부근 평성(평남 도청소재지)에 소규모 새 민속공원이 생겼다는 소문을 접했다. 일반 박물관 규모에 속한다는 들었다.

그때 나는 만 32세의 젊은 북한 김정은(84년생) 지도자의 전횡적인 결단에 좀 충격을 받았다. 어려운 북한살림에도 선대부터 공들였던 수억 달러 국가 대형 프로젝트를 순간에 임의로 파괴하는 행위에 경악했다. 앞날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남북대화도 그리 순탄치 않게 보였다.

평양 민속촌
평양 민속촌

북한을 이해하려면 가능한 알고 있어야 하는 관련 상식이 있다. 재미없는 딱딱한 북한주민 관련한 기본사항 얘기다. 사실 이 북한 글이 아니라도 우린 북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듣고 있다. 오히려 부정적으로만 듣고 있다가, 어느 경우 한번 북한방문을 하고난 뒤, 평소 생각과 다름에 친북성향으로 변한 사람도 봤다. 북한 지도층과 일반주민을 꼭 같이 취급하면 안 된다. 주민들은 일생을 바깥 세계와 자유 없이 절연된 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간 북한 얘기는 귀동냥으로 스쳤을 수도 있다. 관심이 없다 해도 알아두면 북한 시스템을 보다 이해하기 쉽다. 북한에서 폭동이나 시위가 좀체 발생하기 힘든 이유도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북한에도 북한헌법이 있고 온갖 법률규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븍한 헌법보다 상위에 놓여있는, 초헌법적인 원칙이 있다. <10대원칙>이다. 북한주민은 노동당 당규나 사회주의 헌법은 몰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 10대원칙을 모르면 살아갈 수가 없다. 반드시 알아야 하며 누구든 이 10대원칙을 생활화 실천해야 한다. 원칙을 위배하면 정치범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정치범수용소 수감자 90% 이상이 이 10대원칙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반세기도 더 이전인 1967년 김일성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10대원칙“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제4기 16차)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원칙은 10조 60항으로 되어있다. 그 후 1974년 4월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에 의해 비로소 북한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이때부터 북한주민들은 이 10대원칙내용을 무조건 외워야 했고, 주민들의 개인생활도 이 원칙에 입각해 살아야 했다. 사실상의 보이지 않는 김정일 시대의 서막이었다.

북한 당 유일사상 10대원칙
북한 당 유일사상 10대원칙

10대 원칙이란 내 중학 시절 겪은 5·16쿠데타 당시 외워야 했던 혁명공약 6개 조항처럼, 북한주민에겐 뇌리에 박히도록 달달 외워야 하는 필수원칙이었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당시 장도영(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공포한 처음 1, 2구절이 남아 있다. 비교해 보자. 운동장 조회 시간에는 학생 전체가 함께 6개 항목을 외쳐야 했던 구절이다.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북한의 10대원칙은 물론 한국과는 판이한 성격이고 내용이다. 10대원칙은 조항전부가 김일성부자의 장기집권을 위한 내용뿐이다. 60개 세부항목도 10개 조항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밖에 없다. 한결같은 김일성 부자 가족만을 위해 기술한, 100% 주민들의 복종을 요구한 내용이다.

북한10대원칙 일부를 소개한다. (제1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 화 하기위하여 몸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제2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제3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 하여야 한다. 등등. 제10조까지 전부 위대한 수령 동지로 문구가 시작해, 수령님의 교시 신조화(4조)와 무조건성 원칙 지키기(5조), 혁명적 단결강화(6조) 등 끝까지 같은 맥락으로 주민을 강요하는 내용뿐이다. (제10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야 한다 로 매듭지었다. 마지막 부분에 ‘대를 이어’ 문구를 삽입해 김씨 일가의 소위 백두혈통 계승을 강조했다.

함흥 대극장
함흥 대극장

이 10대원칙은 어기게 되면 가차 없이 현장에서 체포해 즉시 농촌으로 추방당하는 공포의 원칙이다. 재판도 없다. 이러니 누구도 10대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북한의 조직구성은 조선노동당이 있고, 근로단체 조직으로는 직맹(직업동맹), 여맹(여성동맹), 사로청(사회주의 노동청년 동맹)이 있다. 당원이 못된 사람은 직업총동맹과 여성동맹에 가입한다. 당원이 되기도 쉽지 않다. 북한사회에서 당원이 안 되면 승진이 안 되고 사람구실을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군대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군인은 당원(만18세부터)되기가 보다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예전 얘기이니 또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 알 수 없으나, 기본 틀은 그대로라고 본다.

또 북한에는 평양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들을 관장하는 하부 조직단체로 ‘인민반’이란 게 있다. 인민 반에서는 인민반장을 선출하고, 모든 주민들은 직위고하를 불문하고 인민반장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한다. 인민반장은 주민가정에 대한 사상동향 등을 토대로 개인 사생활까지 모든 일을 종합해 국가보위부와 언전부지도원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또 인민 반은 5호담당제 라는 조직을 통해 5개가정이 한 조로서, 서로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매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체크해 무슨 부정이 있나 체크한다. 불의에 예고 없이 집을 방문해, 집집마다 있는 김일성저작물 등 인쇄물 훼손이나 낙서여부를 검열한다. 외국도서가 가정집에 있는 것은 금물이다. 이때 걸리면 유일사상체계 범죄행위로 정치범으로 찍어 밤사이에 수용소로 실어 보낸다.

북한에는 수령 움직임에 따른 1호 행사가 있다. 1호 행사는 김일성과 관련한 지도자의 모든 현지 행사나 시찰 등 나갈 때 행사다. 이때 인민반장은 어린애들까지 동원해 미리 길을 깨끗이 닦아 놓아야 한다. 이때 불참하게 되면 불참자 명단을 보위부에 제출한다. 불참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역시 유일사상 체계에 걸어 추방시킨다. 3명 이상은 모여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 혹시 공모할까 염려해서다. 누구든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함부로 못한다. 부부끼리도 정치얘긴 안 한다. 가족이라도 정치에는 완전 남남이다. 일종의 불문율처럼 돼 있다. 군중데모나 폭동 등은 상상할 수 없다.

평양 새나라길 시작점 표지판(김일성 광장)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등 김씨일가의 사생활을 노출시키면 가장 큰 죄가 된다. 내가 예전 만났던 김정일 첫째 부인인 성혜림 단짝이었던 탈북 무용가 김영순(37년생) 씨는 “내 친한 동무가 성혜림”이라는 말 한마디 발설한 이유로 악명 높은 요덕 정치범수용소로 9년간 잡혀있다 이후 탈북해 서울로 왔다. 그녀 자신뿐인가, 연좌제로 그녀 아들과 부모도 함께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하고 그녀만 구사일생 살아남았다 한다. 그녀는 세계적 무용가였던 최승희 (평양 애국열사릉 묘소)의 마지막 제자라고 주장했다. 최승희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다. 김 씨는 당시 인터뷰 후 미국 초청강연을 원했고, 당시 LA 와 보스턴 두 곳 교포사회의 강원도민회장을 통해, 그녀요청을 성사시킨 적이 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인민반장은 언급한대로 북한주민들의 대표이다. 매 주민가정에게 국가과제를 주고, 수령님 교시관철이란 이름아래 총동원령을 내린다. 한 탈북자는 “하부말단조직인 인민반장 역할이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토로한다. 또 인민반장 외에 위생반장이 있고, 세대주 반장도 있다. 이들과는 연계된 부서가 좀 다르다. 이쯤에서 수박 겉핥기지만 대충 북한조직관련 얘기는 그친다. 다음에는 캐나다생활 일부구조와 김일성 최측근이었다는 80대 노인 고위급탈북자 스토리를 전할 생각이다.(계속)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 대표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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