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의 역사이야기] 역사의 아이러니 우장춘 박사
[이동호의 역사이야기] 역사의 아이러니 우장춘 박사
  • 이동호 월드코리안신문 명예기자
  • 승인 2021.02.06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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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무뢰배)에게 시해된 일이다. 이를 두고 을미사변이라 부른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 일본 낭인과 일본공사 미우라에게 길 안내를 한 사람은 조선인 우범선이다. 우범선은 김옥균과 같은 개화파적인 사고로 무장됐던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친일파 청산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별기군 대대장이었는데 황궁을 지켜야 했던 군인이 오히려 적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이다. 이 일로 보복을 두려워한 그는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우범선은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 조선인 자객 고영근에게 피살된다. 고영근은 왕실에 소속된 근위 요원으로 오로지 충성으로 무장된 수구파적인 사고로 항일 저항 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우범선과 대칭점에 선 인물인 것이다. 고영근은 대한제국의 복수심에 불타 우범선을 살인한 후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 고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와의 담판으로 무기징역 감형 후 석방돼 고종과 명성황후 합장릉인 홍릉의 능참봉으로 봉직하다가 순직한다. 이런 연유로 고영근은 충신의 열사로 추앙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우범선의 아들은 고된 생활 속에서도 일본인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농림성에 취직을 한다.

그러나 창씨개명과 일본 국적 취득을 반대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도키이 종묘회사의 농장장으로 직장을 옮긴다.

해방 뒤 일본에서 채소나 과일의 종자를 수입했던 우리나라는 우범선의 아들이 육종학(종자개발) 전문가 임을 알고 그의 귀국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는 처자식 및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홀로 귀국해 한국 농업과학연구소 소장에 취임한다. 그 뒤 제주도 감귤, 강원도 감자, 병충해에 강한 무와 배추의 종자를 개발해 한국 농업의 근대화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다.

그러자 정부에서 그에게 농림부 장관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종자 개발에만 헌신했다.

농업 근대화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은 그는 1959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다. 그가 다름 아닌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다. 이 얼마나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이러고도 우장춘 박사를 연좌제 법에 의한 친일잔재의 표상으로 적폐 청산 대상으로 척결하자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2018년 명성왕후 시해 사건에 연루된 40여 일본 낭인들의 후손들이 한국을 방문해 선친들의 과오에 대해 고종·명성왕후 합장릉인 홍릉에 와서 진정한 사과를 하고 돌아갔다.

지금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를 일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회 분위기에 살고 있다. 이는 침략과 저항,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 불행한 역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역사 속의 한·일 관계를 정리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 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부자(夫子)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우장춘 박사를 떠올리며 제대로 된 역사 개념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나갔으면 좋겠다. 뜬금없는 반일감정으로 정치적 목적 달성이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킨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친일청산이 혹시 냉철한 현실과 당시 사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감정적, 정치적으로 흘러 진정한 청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친일청산’이라는 말이 성역이 돼 버리고 형식화, 관념화해서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지금도 진짜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우장춘을 친일파의 아들이라고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있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 사회는 제대로 된 답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월드코리안신문 명예기자
중국 쑤저우인산국제무역공사동사장
WORLD OKTA 쑤저우지회 고문
세계한인무역협회 14통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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