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의 역사이야기] 고양시 서삼릉 탐방기(2)
[이동호의 역사이야기] 고양시 서삼릉 탐방기(2)
  • 이동호 월드코리안신문 명예기자
  • 승인 2021.02.08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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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孝昌園)·의령원(懿寧園)

정자각에서 바라본 왼쪽에 문효세자 원(효창원)과 오른쪽에 의소세손 원(의령원), 정조가 새긴 문효세자 신도비(오른쪽)가 입구에 서 있다. 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 왕의 사친들에게 부치는 무덤이다.

♧효창원(조선 22대 정조선황제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원)♧

문효세자(1782~1786)는 정조선황제와 의빈 성씨의 아들로 1782년(정조 6)에 태어났다. 2년 뒤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정조 10) 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창원은 처음 효창묘라 하였다가 1870년(고종 7)에 효창원이라 하였다. 원은 1944년 서울 청파동(현 효창공원)에서 옮겨왔다.

♧의령원(추존 장조의황제의 맏아들 의소세손의 원)♧

의소세손(1750~1752)은 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아들로 1750년(영조25)에 태어났다. 이듬해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나, 1752년(영조28) 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령원은 처음 의소묘라 불렀으나 1870년(고종 7년)에 의령원이라 했다. 원은 1949년 서울 북아현동에서 옮겨왔다.

서삼릉 비공개 권역

서삼릉 공개 지역과 비공개 지역 전체 종합안내도. 지난 2009년 북한에 있는 무덤 2기를 제외한 조선왕릉 40기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문화재청은 서삼릉, 태릉, 의릉 보존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서삼릉은 예릉, 희릉, 효릉(孝陵)으로 구성된다. 효릉은 인종과 인성왕후 무덤. 하지만 예릉, 희릉과 멀찍이 떨어진 효릉은 문화재 수리·보존과 학술조사에 필요한 경우에만 출입할 수 있어서 일반 관람객은 가지 못한다. 효릉은 젖소개량사업소 안에 섬처럼 고립돼 있다.
희릉 옆으로 위치해 있는 한국마사회 소속 경마교육원에서 기수가 말을 타고 훈련 중이다.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무덤인 회묘(懷墓), 일제가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이전한 빈·후궁·왕자·공주 묘,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태를 묻은 태실(胎室)이 모여 있는 영역도 젖소개량사업소로 인해 관람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에 회묘, 빈·후궁묘, 왕자·공주 묘, 태실 관람은 인터넷 3일 전 예약으로 관람이 가능하게 되었다.

효릉(조선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

인종(仁宗·재세 1515~1545, 재위 1544~1545)은 중종(中宗)과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들로, 1520년(중종 15)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544년 창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9개월 만에 1545년(인종 1) 31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12대 인종 이야기♧

중종이 엉겁결에 반정 공신 등에 업혀 왕위에 오르면서 첫 번째 왕비 단경왕후가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되면서 새로 맞이한 중전 장경왕후 윤씨와의 사이에서 인종 임금을 낳았다.

인종은 6살 때(1520년)에 왕세자로 책봉된 이래 1544년 중종이 사망하기까지 무려 24년간 세자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생모인 장경왕후가 자신을 낳고 바로 산후병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중종이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를 새로 맞이하면서 인종은 순탄치 않은 세자생활을 보내게 된다.

야심만만한 문정왕후였지만 중전이 된 후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는 못해 그런대로 세자의 위치를 고수했으나, 중전이 된 지 무려 17년 만에 왕자를 생산하며 문정왕후의 핍박은 시작된다.

문정왕후는 세자(인종)를 제거하고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왕으로 만들고자 남형제들(윤원경, 윤원로)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하였고, 이에 맞서 세자를 지키려는 세력도 세자(인종)의 외삼촌 윤임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전자를 소윤(小尹), 후자를 대윤(大尹)이라 불렀다.

문정왕후는 중종이 죽기 전 세자를 바꾸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은 가운데 중종은 승하하였고, 세자였던 인종이 정상적으로 보위에 올랐다. 효심이 지극했던 인종은 아버지의 상을 치르면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해 결국 몸져누울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매우 위중한 본인의 상태를 예견한 듯 유언을 남긴다. 조광조의 명예 회복을 유언으로 남기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문정왕후는 후사에 대한 유언을 받아내고 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종은 자신의 이복동생 경원대군으로 하여금 보위를 잇게 하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다. 재임 기간 9개월, 조선 왕 중 최단기간이다.

필자소개
월드코리안신문 명예기자
중국 쑤저우인산국제무역공사동사장
WORLD OKTA 쑤저우지회 고문
세계한인무역협회 14통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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