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60] 신징비록(新懲毖錄)
[유주열의 동북아談說-60] 신징비록(新懲毖錄)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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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외교부 입부 후 두 번째 해외 근무지로 도쿄의 주일대사관에 발령됐다. 이 사실을 평소 좋아하는 선배에게 알렸더니 선배는 축하의 말과 함께 신숙주의 유언을 들려주었다.

1475년 7월 영의정 신숙주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성종이 친히 찾아와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신숙주는 “일본과 화친을 잃지 마소서”(叔舟臨卒 成宗問所欲言 叔舟對曰 願國家毋與日本失和)라는 말을 남겼다.

선배는 ‘징비록’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류성룡은 임진-정유 7년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참회와 염원을 담은 쓰라린 반성문을 썼다고 했다.

류성룡은 전쟁의 원인으로 일본의 무모한 침략과 함께 조선지배층의 무능과 위선 부패와 무책임에 있지만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신숙주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음도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일념으로 ‘징비록’을 남겼음에도 후세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과거 한반도로부터 찬란한 문화를 전수 받고도 침략을 감행한 일본의 배은망덕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할 뿐 국력을 키우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격동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무능한 조정이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일본에게 국권을 상실했음을 잊지 말고 일본의 심장부에 가서 새로운 ‘징비록’을 써서 돌아오라고 당부를 했다.

도쿄에 와서 보니 시내는 세계적인 도시답게 고층 건물이 즐비했지만 뒷골목에 가면 과거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 보았던 ‘적산가옥’이 많았고 현지 지명도 일제강점기 유학생들의 글 속에서 읽어서인지 낯설지 않았다. 다만 7층 대사관 건물이 가끔 흔들려 일본이 지진의 나라임을 실감했고 날씨가 좋으면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눈 덮인 후지산을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했다.

도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후 천하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세운 막부의 중심으로 옛 이름은 에도(江戶)였다. 에도 막부 260년은 ‘팍스 도쿠가와’라고 불릴 정도로 평화로운 시대였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인지 19세기 후반 미국의 페리제독 내항 등 대외정책에서 갈팡질팡하자 과거 라이벌 관계였던 조슈번(長州藩)과 사쓰마번(薩摩藩)의 존왕세력이 일어나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다. 이른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다.

그들은 막부의 잔존세력에 미련을 두고 있는 에도의 민심을 잡기 위해 어린 천황을 앞세워 교토에서 에도로 수도를 옮기고 이름을 도쿄(東京, 동쪽의 수도)라고 개명했다. 일반적으로 왕정복고를 하면 왕실의 권위와 왕권의 강화를 위해 왕궁을 새롭고 크게 짓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의 신정부는 부국강병과 조국 근대화를 위한 재정을 고려, 국방대신 격인 도쿠가와 쇼군(將軍)의 에도성을 접수해 왕궁 즉 고쿄(皇居)로 사용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시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둘째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키고 조선판 막부라고 할 수 있는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축출했다. 그는 왕실의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경복궁 중건을 착수 민심을 잃고 국가재정을 바닥냈다.

두 나라의 국가운영은 동갑내기(1852년생)로 소년왕이 된 조선의 고종(12세 즉위)과 일본 메이지(15세 즉위)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16세기 마젤란에 의해 태평양 횡단항로가 발견되자 동아시아의 오지였던 일본이 지리적 요충지로 변하고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해양세력에 의한 기독교 포교와 무역의 대상이 됐다.

도쿠가와 막부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독교 포교는 적극 막았지만 무역은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규슈 나가사키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네덜란드 상인을 상주토록 하고 매년 에도 막부를 방문, 아편전쟁 등 주요 국제 동향과 함께 서양의 기술발전 등에 대해서도 보고토록 했다.

데지마는 일본 속의 서양으로 젊은 지식인들은 나가사키를 찾아와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난학(蘭學, 네덜란드 학문)을 연구했다. 도쿠가와 막부의 나가사키를 통한 선택적 개방으로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터득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읽는 근육을 만들어나갔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난학에 정통한 인재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이용, 청일 및 러일 두 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아시아의 패자가 된 일본이 청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전리품처럼 보호·합병하겠다는 데 시비를 거는 나라가 없었다.

대한제국의 지도층은 일본의 무력위협에 눌리고 황실을 유지해 준다는 감언과 작위 등 뇌물 공세에 현혹돼 결국 나라까지 잃게 됐다.

‘징비록’의 배경이 된 임진왜란의 원인은 도쿄보다 나고야에서 답을 찾았다. 14세기 아시카가(足利) 집안이 무로마치 막부를 세워 230년간 무단통치했으나 후반 100여 년간은 최고 지도자 쇼군의 무능으로 막부의 권위가 크게 실추됐다.

고삐 풀린 전국의 다이묘(大名, 영주)들이 할거하고 하극상을 일으켜 난세 내란의 센고쿠(戰國) 시대가 도래했다. 센고쿠시대의 영웅들은 나고야와 그 인근 지역의 출신들이 많았다. 천황과 귀족이 중심이 된 헤이안(平安) 시대에 ‘오와리’라고 불리었던 이곳에서 수많은 무사들이 배출됐다.

‘오와리’라는 뜻은 ‘국경’이라는 의미로 이곳은 정복되지 않은 야만인 에미시(毛人)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헤이안 귀족사회에서 천대받은 무사들의 활동지역이기도 했다. 국내에서 ‘대망(大望)’이란 책으로 번역된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오와리’ 출신의 영웅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1582년 나고야 출신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센고쿠 천하를 통일해 갈 무렵 그의 측근인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에 의해 혼노지(本能寺)에서 피살된 후 천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넝쿨째 굴러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유업을 계승 전국을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명나라 정복과 조선의 지배를 목표로 침략에 나섰다. 1592년 4월 일본군의 부산 상륙에서 시작된 7년 전쟁은 조선을 처참한 전쟁터로 만들어 수백만의 양민이 희생되는 참혹한 결과를 내고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1598년 12월 침략군의 부산 철수로 전쟁은 끝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을 너무 좋아했기에 망했고 조선은 전쟁을 너무 싫어했기에 망할뻔했다”는 어느 역사 평론가의 말이 생각난다.

지난해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를 방영했다. 주군을 배신한 것으로 알려진 아케치 미쓰히데를 재평가한 내용이었다. 무력으로 천하를 잡겠다(天下布武)는 신념을 가진 전쟁광 오다 노부나가가 혜성처럼 나타나 일본을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출임에도 크게 발탁된 보답으로 오다 노부나가에 충성을 다해 맹종하지만, 아케치 미쓰히데는 달랐다. 그는 100년간의 센코쿠시대에 이어 새로운 전란으로 백성들의 피폐한 삶에 연민을 느끼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만 찾아온다는 전설의 기린(麒麟)이 오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다 노부나가를 제거할 것을 결심했다.

1582년 6월 대군을 이끌고 혼노지를 기습해 오다 노부나가를 자결케 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반격으로 삼일천하로 끝났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거사가 성공해 기린이 오는 일본이 됐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한 조선 침략은 없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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