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합창단 지휘자 선임, 밀실의 재연인가
국립합창단 지휘자 선임, 밀실의 재연인가
  • 탁계석 (에술비평가협회장)
  • 승인 2011.06.20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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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나영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의 퇴임 기념연주회가 열리는 예술의전당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합창계 주요 인사들은 물론 평소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음악을 흠모하는 청중들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지휘자는 국립합창단을 만든 장본인이다. 생애 통산 3번의 상임 지휘자로 모두 21년 재임의 기록을 남겼다. 개인 예술단체가 아닌 ‘국립’ 이란 명예의 최고의 직분임을 생각하면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고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국립합창단은 척박한 한국 문화 토양에 ‘예술 고속도로’를 낸 것이다. 그 결과 50여 개에 이르는 ‘지방 도로’(시립합창단)를 새롭게 건설하는 인 프라도 구축되었다. 명실상부한 한국합창의 견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 영광만있었을까. 솔직히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럽고, 더 황망한 순간들이 없었겠는가.

합창에 대한 사회 인식은 아직도 타 예술 영역에 비하면 금밖에 있다는 생각을 할 순간이 많았다고 지휘자는 기회있을 때 마다 술회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예산 확보를 위해 불철주야 뛰었고 단원에 대한 처우를 위해서도 나 지휘자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그의 캐릭터가 된 백발 때문에(?) 순간 순간의 난관들이 뚫렸다고도 했다.

그의 업적은 창작에서도 빛났다. 국립의 정체성을 우리 음악에서 찾았고 그 첫 연주회에 우리 작곡가들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흥렬, 박태준, 정윤주, 김연준, 장일남, 최영섭, 김달성, 김희조, 나운영 선생의 합창곡들이었는데 당시 기자들이 이런 레퍼토리 때문에 실망했다니 그 때의 상황을 짐작할만 하지 않은가.

또 하나의 업적은 지휘자 양성이다. 국립을 지휘한 캐리어를 가지면 시립합창단 임용에서 절대 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국립이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게 나영수 지휘자의 신념이었다. 그 시도는 10년 전 쯤인가 성남시립합창단에서 시도하여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 오직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통산 전적은 창단 지휘자로서 9년 8개월, 3대 지휘자로 7년 11개월, 이번 7대 지휘자에서 3년을 했다. 원도 끝도 없이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동안에도 쉬지 않고 변한 것은 세계 합창이고 우리합창도 몰라보게 질적, 양적 발전을 했다. ‘경험 지휘’의 1세대에 비하면 지금은 ‘지휘 전공’의 지휘자 3, 4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합창계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안목과 세계 네트워크에 호흡할 신선한 능력을 가진 인재에 목말라 있고, 이런 정서 공감대는 합창계에 깊숙히 깔려있다.

다만 합창계는 나선생과 같은 합창 선각자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 아직도 많다. 또 기악에 비해 섬세한 합창인의 마음은 의견이 달라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위계질서도 작용한다.

말이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국립 지휘자를 성남의 경우처럼 돌려 테스트할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도, 인물 선정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 좁은 울타리에서 손으로 헤아릴 국립지휘자를 서류로 뽑아야 한다면 심봉사 찾기와 뭐가 다를까.

나영수 감독의 퇴임 기념 연주회에 올린 작품 이경재 신부의 ‘라자로의 노래’를 낸 이건용 작곡가는 지휘자를 위해 기립 박수를 주문했다.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와 기립 박수를 보냈고 누군가가 가슴에 큰 꽃다발은 안겨 주었다.

필자도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과연 퇴임 연주회에 팡파레를 울리는 ‘축하잔치’가 아닌 온 생애를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고 가신 ‘라자로의 노래’를 선택한 것이 무슨 이유일까. 오로지 ‘창작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이를 ‘따르겠다’는 뜻일까, 들리는 소문과 비빔밥이 되면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음악은 음악이고, 인생은 따로 분리해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그의 음악에 삶이 녹아 있지 않다면, 영 헷갈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나영수 지휘자의 후임 자리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어떤 이는 국가인권위, 청와대 등 요로에 부당성을 주장하는 항소문을 메일로 발송했다니 이 아름다운 축하잔치 이후가 석연찮다.

어떤 경우든 내가 세우고 내가 허무는 역사를 만든다면 바림직하지 않다고 본다. 노장(老將)의 백발의 카리스마가 '고집'이 되어 다시 한번 휘날릴 것인가, 아니면 평생을 짐진 나에게 후계자 문제 같은 것은 “이제 당신들이 좀 알아서 하세요”. 하며 돌을 던지는 큰 바둑을 둘 것인가. 후임자 선임에 평생의 승패가 달렸다.

과연 행정은 밀실(密室)의 어떤 데이터를 장관에게 올릴까.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통인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또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아마추어를 포함한 10만 합창 단원의 눈이 쏠린다. 아니 MB 정부의 문화계 인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길 것인가.

백발의 카리스마와 카리스마를 누르는 변화의 바람, 누가 이길까, 이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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