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바뀌는 세상살이
[해외기고] 바뀌는 세상살이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03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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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우리사회는 힘든 인관관계의 시대로 변환되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끊어버렸고 헛기침 한번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하늘길이 막혀서 그리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고 친밀함을 표하는 악수조차 눈치를 보며 나누는 세상이 됐다. 백신 주사가 개발됐지만 깨어진 인간관계의 회복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유명한 미래 학자들은 우리의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측을 말하지만 실제적인 해결 방안은 그 누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뚫어질까 해서 오랜만에 한국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기에는 모든 면에 걸쳐서 힘든 현실임을 알기에 실시간 뉴스를 잠시 보았다.

뉴스의 대부분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과 서민들의 힘든 삶을 우선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보도내용 중의 하나는 정부가 기초생활비를 주는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에 배달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역병이 번지면서 배달사업이 커져가니 수입이 늘어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거리의 신 풍경으로 음식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자전거 뒤에 큰 가방을 올려놓고 바쁘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사회생활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입맛에 맞는 요리를 골라서 모바일폰으로 클릭만 하면 문 앞에 배달해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는 탓이다. 부엌에서 주방기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점차 현실화되어가는 사회현상으로 여겨진다. 특히 역병이 퍼진 이후로 음식배달은 낯선 이와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접촉을 줄이는 방안으로 일종의 면역 처방처럼 인식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달사업은 일종의 배달문화로서 새로운 사회콘텐츠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의 배달의 역사는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 도성은 새벽 4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밤새 술을 마신 술꾼들이 술자리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장안의 유명한 맛집의 해장국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 조선실학자인 황윤석의 일기에 “수년간 과거시험을 공부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고 난 다음 날, 귀향하기 전에 동료들과 점심 메뉴로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주로 궁중에서만 먹던 고급 냉면이 부유층 양반들에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어서 유명 맛, 집에서는 냉면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상업이 발전했던 조선 중흥기에는 장터 곳곳에 유명한 맛, 집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정조 시대에 들어서 술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정조는 신하에게 조사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 시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채제공은 정조에게 백성들의 일상에 대한 자료를 이같이 제출했었다.

“애주가들의 술안주는 김치와 자반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근래에는 백성의 습속이 교묘해져서 신기한 술 이름을 내기에 힘써, 현방의 쇠고기나 시전의 생선을 따질 것도 없이 진수성찬과 맛있는 탕이 술잔 사이에 어지러이 늘려 있으니, 시정의 연소한 사람들이 술보다는 안주를 탐하느라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발췌)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해장국이 있다. 남한산성의 한 유명한 맛, 집에서 만들어서 통금이 해제되는 시간에 맞추어서 밤새 술을 마시던 사대문 안의 양반들에게 배달을 했었다는 재미난 기록도 남아있다.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 성내의 맛집이 유명했었는데 배추속대, 콩나물, 표고버섯, 쇠갈비, 전복에 토장을 풀어서 온종일 푹 곤 해장국이다. 푹 끓인 해장국을 단지에 담은 후에 솜으로 싸서 밤새 달려서 새벽 무렵에 재상의 집으로 뜨끈한 해장국을 배달했었다는 기록이 ‘해동죽지’에 적혀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음식 배달의 문화는 1930년대에 들어서 대중화하게 이르렀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한 시간에 약 이십 리를 걷는데 하루 밤낮을 달린다면 거의 오백리가 된다는 기사가 동아일보 (1931년 1월 2일)에 실리기도 했다.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싶다. 꼬불꼬불한 장안의 길은 힘든 다리품을 팔아야만 했던 그들에게 바로 삶의 전쟁터였던 것이다.

1906년 7월14일 만세보 신문에 “회갑연, 각 단체의 회식 모임이나 관, 혼례에 필요한 분량의 음식을 요청하시면, 거리가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에 모시겠습니다”는 배달 광고가 처음으로 실리기도 했다. 또한 조선 최초의 한식전문 음식점이었던 명월 관에서는 주문받은 음식들을 다양한 그릇에 담아서 교자상까지 차려주는 출장 배달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한정식 출장 뷔페서비스의 시초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음식을 담아 나르던 통도 나무통에서 가벼운 철가방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2009년, 한국 디자인 문화재단은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 생활 디자인 중의 하나로 중국집 철가방을 선정했었다. 배달문화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호주에 살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식 배달문화, 오토바이를 타고 철가방에 담긴 짜장면, 짬뽕 같은 국민요리를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정부가 배달 자들을 위한 특별 위험 상해보험의 특혜라도 인정해준다면 그들의 배달 직업에 작은 보람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고된 현장에서 배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거리의 질주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으면 좋겠다. 배달사업이 점차 바뀌는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서로 공존하는 편리한 배달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나에게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한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연둣빛 나뭇잎 새에 반사되는 눈 부신 햇살, 마음껏 들여 마시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누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 게 너무 많은 날을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바람에 살랑대는 작은 나뭇잎 하나에서도 세상의 행복과 평온을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넓은 파초 잎 위에 동글동글 맺힌 이슬방울이 너무 맑고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엄마, 너무 신선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사는 이 행복에 두 손이 절로 모인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우리가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쟁반 같은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이 곧 다가온다. 팔을 한껏 뻗쳐서 보름달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안아보고 싶다. 환한 빛이 어둠에 가려지는 이 세상을 걷어낼 수 있도록 달님에게 절하며 소원을 한번 빌어 볼까···.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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