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亦이 易으로 바뀌는 삶
[대림칼럼] 亦이 易으로 바뀌는 삶
  • 문민 서울국제학원장
  • 승인 2021.03.04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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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 이르기를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学而时习之不亦悅乎)”라고 했다. 이 글귀가 하도 좋아서 붓으로 옮겨 적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学而时习之不易悅乎”라고 썼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학생이 틀린 글씨가 있다고 바로 지적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붓을 들었다. 붓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적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学而时习之不易悅乎

나는 더 이상 고쳐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흰 화선지에 먹물로 쓴 이 글귀를 눈에 잘 띄는 내 사무실 출입문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오늘부터 공부(学)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易)로 했다.

십 대 때 나는 오로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했다. 성적이 높아야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에 가야만 초록색 농촌 호구수첩이 붉은색 도시 호구수첩으로 바뀔 수 있었다. 공부는 오로지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친구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없었고, 나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공부를 했다.

그때는 머리만으로 공부했다. 시험 봐야 할 과목은 많고 복습할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좋은 성적이 나오는 과목에만 올인하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과목은 가차 없이 포기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듣고 저녁에 한번만 복습을 더 하면 머리에 잠깐 머물러 시험에 좋은 성적을 딸 수 있는 과목만 골라 했다. 가장 먼저 포기한 과목은 역사였다. 그때 배웠던 역사는 오천 년의 방대한 중국의 역사였다. 나와 전혀 관계 없고 재미도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외워도 외워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결국 60점을 넘긴 기억이 없다. 중학교 시절의 역사 공부는 나에게 지울 수 없는 흑역사로 남았다. 그 후 ‘역사’두 글자만 들어가는 책은 아예 펼쳐 보지 않았다. 상위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신나는 체육시간도 반납하고 즐거운 음악시간도 반납했다. 미술 수업은 했던지 기억조차 없다.

요즘 나는 중학교 때 찌질하게 못했던 역사 책을 다시 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라도 배우는 한국사(韓國史) 교과서를 출판사 별로 사서 보고 있다. 비상출판사, 미래엔출판사, 천재출판사··· 중고등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무려 아홉 종이 된다. 출판사 별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조선 오백 년 역사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에 대한 짤막한 서술을 보고 김훈 작가가 쓴 <남한산성> 장편소설을 읽기도 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을 찾아 온라인으로 시청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의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었는데 그때 머물렀던 곳이 바로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 소가툰이다. 언젠가 중국에 가거든 심양의 소가툰에 꼭 찾아보고 싶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오십이 되니 종종 옛날 얘기를 하고 옛날 사진을 뒤적이게 된다. 나에게도 나만의 역사가 두꺼운 자료로 만들어 져 가고 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내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 평가하고 또 평가를 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갖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역사 교과서였다. 역사 교과서에는 선인들은 어떻게 살았고 후세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소상히 적혀 있다. ‘역사 공부’는 나의 나침반이다.

일 년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집콕하는 시간이 늘면서 공부하는 과목도 늘었다. 나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짬짬이 음악공부도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과목이다. 그때는 필수 과목도 아니었다. 그런 음악 공부가 요즘 나의 필수공부가 되었다. 예전에는 자투리 시간이 나거나 특별히 할 일없을 때만 간간이 음악을 들었다. 요즘은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녹음해서 내가 부른 노래를 감상하는 취미가 생겼다. 노래만 부르니 음악이 심심했다. 그래서 악기를 배워 직접 반주도 해보고 싶었다. 요즘 기타 연습을 하느라 하루가 빈틈이 없다. 열 번 연습하고 녹음한 것과 스무 번 연습하고 녹음한 것이 질적으로 달랐다. 연습을 할수록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 지고 그 과정에서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음악은 수학처럼 머리만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온 몸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 공부와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공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현(聖賢)의 말씀이라고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는 오로지 성적을 위해 공부했다면 지금은 성취하고 자 공부(工夫)하고 있다. 예전에는 오로지 남보다 출세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면 지금은, 나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공부(功夫)하고 있다. 예전에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공부를 했다면 지금은, 남과 함께 나누기 위해 공부(共富)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험에 나오는 공부(空符)만 했지만 지금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찾아 즐겁게(悦)배우고 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易) 게 아니다. 배움을 통해 변화(易)지 않았다면 그 역시(亦) 제대로 배운 게 아니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 이주동포정책연구원(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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