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돈벼락이 날벼락이 된 재미동포 이옥자
[이계송칼럼] 돈벼락이 날벼락이 된 재미동포 이옥자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1.06.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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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자(제닛리)님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가발 가게를 하며 혼자서 1남 2녀를 기르며 힘들게 살다, 1997년 하루아침에 큰돈(1800만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유명인이 된 분이다. 클린턴 대통령, 카나한 미주리주지사, 게파트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와 같은 거물 정치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신분이 급상승했었다. 한인회장, 평통위원도 역임했다. 돈의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 그의 행보는 당시 세간의 부러움과 또한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복권 당첨 후 8년 만에 그 많은 돈을 탕진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 보조 임대아파트에서 영세민 보조금을 받으며 고독과 노구와 싸우다 지난 3월,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검은 가족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장례 문제 등으로 두 달이 지난 뒤에야 전·현직 한인회장들이 나서서 비용을 갹출, 한인노인단체 몇몇 회원들만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묘지(Bellerive Garden) 납골탑에 간신이 안장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가 아마 그가 복권을 탄 2-3년 직후였을 거다. 그가 이곳 워싱턴대학교 법과대학에 150만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은근히 그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한국 여성 월간지 두어 권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자신의 얘기부터 털어놓았다.

“내가 복권을 타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가 기른 1남 2녀의 생모(生母)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다행히 찾았다. 이 얘기가 여기 잡지들(여성동아, 여원?)에 실려있다. 당신이 발행하는 <한겨레저널>에도 게재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얘기했다. 결혼 첫날밤을 지낸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너의 남편에게 아이들 셋이 있다. 이것도 너의 운명이니 받아들여라”는 청천벼락이었다고 한다. “총각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셋이라니….” 기가 막혔지만, 결국 받아들였다며, 평생 자신은 아이를 낳지 않고 남편 아이 3남매만을 길렀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대 150만불 기부의 실제 동기도 그가 기른 딸 하나를 입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기여입학을 한 그 딸은 졸업 후 변호사가 됐다. 그밖에 알려진 기행(奇行)과 선행이 수없이 많다. 8년간의 화려했던 삶은 다른 유명인사들처럼 수많은 화제를 뿌렸고, 찬사와 악담도 뒤따랐으며 공과 과에 대한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 극명하게 갈렸다.

납골탑 안장식에서 고인에 대한 회고담을 참석자들끼리 나누었다. “내가 가까이 본 고인은 아주 착한 분이었다. 눈물도 많았다. 우리는 고인이 살면서 행했던 자선(慈善)만은 그게 진심이든 가식이든 최소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면 말이다. 부정적인 면만 얘기한다면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가 이에 자유로울 사람이 있겠는가. 고인이 살면서 행했던 선한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의 삶을 그런 선행으로 채워가는 일이 중요하다.”

돈을 가졌다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복권을 탄다면”하고 너그러운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림처럼 예쁘게만 그려지지 않는다. 욕심 덩어리 인간이기에 그렇다. 식욕, 색욕, 물욕, 명예욕, 권력욕··· 끝도 갓도 없는 욕심, 욕심이 욕심을 낳고 욕심 때문에 결국 그림은 엉망이 되고 만다. 이게 보통 인간들의 실제 모습이다. 다만 욕심과 욕심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도 타인과 그 욕심의 부스러기라도 나누려는 착한 마음은 귀중하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신(神)이 계신다면, 아마도 그런 측은지심을 보시고, 최소한 연민의 은총을 내리실 거라 나는 믿는다.

워싱턴대학교는 법과대학 도서관에 이옥자님의 초상화를 여전히 걸어놓고 그를 기리고 있다. 고 이옥자님의 명복을 빈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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