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⑨]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우간다 취업률을 높이다 - 진유하 텔라 대표
[아프로⑨]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우간다 취업률을 높이다 - 진유하 텔라 대표
  • 진유하 텔라 대표
  • 승인 2021.06.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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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텔라(tella)’는 우간다, 필리핀의 현지 거주 원어민이 카카오톡 일대일 채팅을 통해 영어를 첨삭 지도해주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8만 명이 넘는 누적 이용자를 기록하고 최근 삼성, PUBG 등에 비투비(B2B) 서비스를 개시한 텔라는 현재 해외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거듭된 성장을 보여 온 이 서비스는 진유하 대표가 대학생 시절 한 소셜벤처대회에 낸 아이디어를 뚝심 있게 밀고 온 결과다. 진 대표는 대학생 때 기독교 학생회를 통해 부룬디에 선교 활동을 갔다가 그곳의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처럼 대학을 졸업했을 뿐 아니라 2~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재임에도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 구조상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었다. 진 대표는 그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국내 수요를 연결하면 아프리카의 취업률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고, 실제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채팅을 통한 실시간 영어 교육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품은 소명의식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우간다의 취업률에 작지만 확실한 영향을 주는 그녀는 요즘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인식의 전복이 아이디어로 연결되다

목회의 소명이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일까. 어려서부터 소외된 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자연스럽게 기독교 학생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그 학생회를 통해 여름방학에 해외로 선교 활동을 나갈 기회가 생겼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둘 중 목적지를 골라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아프리카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부룬디였다.

내가 속해 있던 기독교 학생회는 역사가 40여 년 됐으며, 부룬디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지도 20년이 넘었다. 선배들의 이야기가 워낙 생생했기에 부룬디가 열악하고 척박한 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는 중학생 때 참여했던 기아체험캠프에서 느꼈던 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결과이기도 했다. 기아체험캠프에서 나는 아프리카의 내전과 기아를 간접 경험하며 그들의 힘든 상황을 누구보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막상 첫발을 디딘 부룬디는 내 상상과 많이 달랐다. 선교활동을 하며 만난 부룬디 사람들 중에는 대학을 나오는 등 우리와 비슷한 교육 과정을 밟았을 뿐 아니라 현지어인 룬디어(kirundi)는 물론 프랑스어, 영어, 스와힐리어 등 2~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나는 그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어학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화 수준이나 내용이 한국에 있는 대학생들과 다를 게 없었고, 때로는 우리보다 더 기품있고 진정성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부룬디에서 그들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가난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도임에도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등 생활환경이 열악했다. 하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다고 우울해하거나 후원을 독려하는 TV광고처럼 절망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충분히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를 만끽했다.

부룬디에서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머릿속은 온통 부룬디와 아프리카를 향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호기심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아프리카 국가의 청년들의 실업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 부룬디에서 만난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 그 유능한 사람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니 이 문제가 내 일처럼 여겨지며 당장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프리카 대륙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한국의 일개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전공인 경영학을 활용하여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마침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가 소외된 계층에 기여하는 비즈니스모델을 연구하는 소모임을 꾸린다고 했다. 나는 부룬디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엮으면 무엇인가 기발한 구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임에 선뜻 동참했다. 모임에서 친구들과 머리를 맞댄 채 토론하며 나는 진로의 방향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보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모임의 경계를 확장하여 동아리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사회적 기업을 교육, 연구하는 일을 돕는 사단법인 ‘SEN(Social Enterprise Network)’의 동아리를 모교인 성균관대에 조직한 것이다. 나는 SEN 사무국을 통해 미국 대학의 자료를 구해 사례 연구를 했으며, 실제로 관련 기업가를 만나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 북한 이탈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힘

2012년 SEN이 주관하는 아시아소셜벤처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가장 주목하여 파고든 주제는 아프리카 국가의 많은 아동들이 초등교육을 채 마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상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 월급이 밀리는 등 교사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학생들이 아무리 배우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교사가 없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우리는 교사들에게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면 그들이 학교에 남을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간 그들의 유창한 어학 실력이 떠올랐다. 특히 부룬디와 함께 동아프리카에 속한 우간다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로 인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부룬디와 마찬가지로 우간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사회적 이슈인데, 통계에 따르면 우간다의 실업률은 80%에 달하고 이러한 현실은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 구직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미 국내에서 시장이 형성된 전화 영어에서 실마리를 찾아 우간다의 교사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그들을 전화 영어 강사로 활용하는 비즈니스모델을 고안했다. 꽤 그럴싸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모의 시험할 충분한 시간도,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만큼 우리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를 느꼈다. 관련하여 조언을 해줄 만한 우간다 사람을 국내에서 연을 맺은 부룬디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는 우간다 정보통신부에서 한국으로 파견 왔다가 당시 KAIST에서 ICT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코넬리우스 칼렌지(Cornelius Kalenzi)였다. 칼렌지는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할 수 있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무척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간다에 있을 때 자국의 학생들에게 IT 기술을 교육하고 취업을 돕는 비영리단체를 미국 대학생들과 설립해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그 활동을 통해 몸소 깨달은 바는 혜택을 보는 대상자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기부를 통해 계속 운영을 해야 하다 보니 결국 지속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라 했다. 반면 우리가 고안한 아이디어는 수익 창출이 가능한 모델인 만큼 지속 가능성이 클 수 있다며 크게 공감하고 지지했다. 우리는 그의 찬동에 용기를 내어 대회에 참가했고, 그 결과 3등을 차지했다. 상금은 200만원이었다.

대회 준비를 함께한 친구 중 일부는 취업하여 떠나고 넷이 남은 상황이었다. 세금을 떼고 나니 넷이 나누기 애매한 금액이었다. 우리는 이 돈을 밑천 삼아 구상한 비즈니스모델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우선 무료로 우간다 교사에게 전화 영어를 배울 사람을 모집했다. 교사는 칼렌지에게 도움을 받아 모았다. 때마침 칼렌지의 부인이 우간다에 들어간다고 하여 그녀 편에 교사 10명에게 줄 교재와 사례비를 전달했다. 사례비는 일인당 50달러였다.

전화 연결 방식은 스카이프를 활용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비스를 개시할 때가 다가오자 슬슬 걱정이 됐다. ‘인터넷 연결은 원활할까?’ ‘혹시 문제가 발생하거나 만족도가 떨어질 경우 되려 아프리카에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지만 이 두 문제는 오히려 난제가 아니었다. 인터넷 연결은 순조로웠으며, 시험에 참가한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무척 높게 나타났다.

생각한 것보다 인터넷 상태는 수업을 진행하기에 무리 없이 양호했으며, 우간다인이라서 오히려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이용자들은 기존에 접한 전화 영어 교사들보다 준비도 잘해 오고 진정성을 가지고 가르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며 하나 같이 우간다 강사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안심할 찰나,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발음 문제였다. 이용자들은 우간다 교사들의 억양이 낯설어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했다. 주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데다 여기에 현지의 억양이 가미되어 더 그런 듯싶었다. 한국의 영어교육시장에서 발음은 중요한 쟁점이다.

한편, 우리가 가장 우려한 요소들은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간다 강사들의 높은 영어 수준과 진지한 태도에 이용자들이 크게 만족하자 나는 발음 문제만 해결하면 이 아이디어가 제법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렇다고 발음부터 교정하여 차근차근 준비하기에는 영어 교육 분야는 워낙 급변하는 시장이었다. 발음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아무리 고민해도 찾지 못하자 우리는 사고의 틀을 깨고 발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교환학생이 당시 채팅으로 영어가 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채팅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서비스였다. 당시 유사한 서비스가 없었던 만큼 실현성과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으나, 최초이니 성공하면 우리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하여 2014년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우간다 사람을 강사로 활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웠다.

테스트 단계에서는 무료였던 만큼 이용자들이 관대했을지 모른다. 유료로 전환하면 기대치가 그만큼 높고 엄격해질 수 있었다. 만약 사업 초기에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용자들이 그 원인을 현지 교사에게서 찾으며 아프리카 국가와 대륙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까 봐 걱정됐다. 서비스가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교환학생, 교포를 강사로 활용했다. 1년 후 서비스가 어느 정도 틀을 갖췄을 때 필리핀 강사를 채용했고, 해외에 있는 강사와 일하는 경험이 쌓이자 비로소 우간다 강사를 채용할 용기가 생겼다.

텔라, 우간다의 첫 삽을 뜨다

2015년 말, 처음으로 우간다 강사를 채용, 교육하고 그들이 일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간다를 향했다. 첫 방문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구상해 온 퍼즐이 드디어 맞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는 국내에서 미리 선발했다. 칼렌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커뮤니티에 공고를 내어 일정 기간 이력서를 받고 그중 1차로 후보를 추려 문법 시험을 실시했다. 채팅 방식은 학생이 틀린 표현을 썼을 경우 첨삭을 해줘야 하기에 높은 문법 실력을 요했다.

사실 채팅을 통한 지도의 경우, 그 내용이 기록에 남으니 전화 영어보다 강사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져야 했다. 문항이 200개가 넘는 시험을 본 후 성적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시범 수업을 실시했다. 테스트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료를 낼 용의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 낸 강사 지원자를 최종 면접을 거쳐 채용했다. 처음에는 정원이 5명으로 적어 채용 사실을 소극적으로 공고했음에도 경쟁률이 10대 1에 이르는 현실을 보며 우간다의 높은 실업률을 새삼 실감했다.

우간다에서 2주간 머물며 그동안 강사들을 교육하고 사무실을 구할 계획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칼렌지가 소개해준 정보통신부 담당자를 만났다. 우리나라와 합작하여 지은 IT 관련 건물에 있는 컴퓨터 몇 대를 쓸 수 있을지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척 호의적이었지만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떠나기 전날까지 확답이 없자 부담스럽더라도 공동 사무실을 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보니 도둑이 들었는지 귀중품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현금과 휴대전화는 물론, 일행 중에는 여권을 잃어버린 이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출국 일정을 미루고 경찰에 신고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정보통신부 담당자를 찾아갔다. 우리가 도둑맞은 일이 마음에 쓰였던 걸까. 그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와 공간을 무료로 대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서로 교류하고 애정하는 소통의 장이 되다

우간다 강사를 서비스에 투입한 결과는 그간의 우려와 달리 긍정적이었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이 낯선 땅이다 보니 이용자들은 우간다 강사에게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가졌고, 그 마음은 곧 호감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강사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상당했다. 자국보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을 가르친다는 자긍심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런 순수한 열정이 이용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간다 강사와 국내 이용자들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친구 관계로 곧잘 발전했고, 우간다까지 선물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둘 사이의 채팅 내용을 보면 무슨 양국 교류의 장 같았다. 서로의 나라와 문화를 열심히 묻고 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애정을 가졌다. 특히 우간다 강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 큰 자극을 받았다. 6시간 느린 시차도 유리했다.

하루 중 저녁 시간대에 수요가 많은데, 우리나라가 저녁일 무렵 그곳은 한낮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최초였던 만큼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업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만큼 시간 약속이 중요하며 답변 속도가 빨라야 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시간 약속과 속도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텔라 강사들은 우간다에서 엘리트에 속하며, 이 일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적응이 빨랐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우간다는 비가 오면 교통이 아예 마비됐다. 초반에 지각한 강사들이 비를 이유로 들었을 때 핑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현지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비를 만났는데 정말 꼼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이용자들이 이해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변수가 발생할 것 같으면 새벽에 출발해서라도 제시간에 도착하라고 신신당부했고 그럼에도 늦었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컴퓨터 키보드로 글자를 치는 속도도 문제였다.

타자를 몇 달간 연습을 시켰는데도 속도가 늘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현지에 가서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를 활용한 일명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타자 속도를 높이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연습하게끔 하고 대회를 열어 이를 독려했다. 지금은 텔라에 지원하는 사람들 모두 타자 속도가 빠르다. 텔라에서 일하려면 타자 속도가 빨라야 한다는 사실이 현지에서 제법 잘 알려진 덕이다.

지난 3여 년간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옥석을 가리고 그들을 교육한 결과, 나는 우간다에서 텔라 직원이 가장 능력 있다고 자부한다. 최근 강사 중 한 명이 다른 업체와 이중 계약을 한 사실이 탄로난 적이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는 긍정적 신호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고무적인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가 우간다 젊은이들을 국제 사회의 규격에 맞는 인재로 성장시켰음을 의미하니. 최근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을 교육하여 전 세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능력을 지닌 개발자를 길러내는 미국계 스타트업의 약진이 눈에 띈다. 또 국제 사립학교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다.

나는 텔라를 통해 역량을 쌓은 분야가 교육이다 보니 이런 움직임에 관심이 절로 간다. 우간다인 강사를 교육한 경험을 토대로 우간다 젊은이들을 국제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으로 만드는 일을 어렴풋이 상상해본 적도 있다. 지금의 강사들이 기획자 혹은 강사로서 더 많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직업학교 말이다.

해외 기관 혹은 기업이 아프리카의 교육산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그들보다 교육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성공하면 대륙 차원의 관심을 받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일도 비교적 용이하다.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 아프리카 교육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일단 텔라는 그런 환경이 올 때까지 살아남는 일이 급선무다. 올해 비투비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내년에는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자체 앱을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에서 잘 버텼으니 여태껏 쌓은 역량을 해외에서 폭발시켜보고 싶다. 누구보다 텔라를 신뢰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우간다 강사가 있기에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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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6-25 01:21:54
국제법상 일본이 항복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일본의 모든 주권은 없어왔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현행헌법 임시정부 구절(한일병합 무효, 을사조약등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도 맞지 않는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임.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교육을 시켜온 나라 대한민국임.

헌법(을사조약.한일병합 무효, 대일선전포고),국제법, 교과서(국사,세계사)를 기준으로,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고자하는 교육.종교에 관심가진 독자입니다.Royal성균관대(국사성균관자격,한국 최고대),서강대(세계사의 교황윤허반영,성대다음Royal대)는 일류.명문끝.

국사 성균관(성균관대)자격뒤에서 왜구서울대극복은 서강대 학구파가유일.2차대전이전 세계

윤진한 2021-06-25 01:22:33
2차대전이전 세계지배세력 서유럽.교황윤허資格작용되면 가능한현실.패전국 일본 잔재니까 주권.자격.학벌없이 100서울대,국시110브[연세대>고려대]로살고 Royal성균관대(한국최고대)나 Royal서강대(성대다음예우)위로 점프不認定.대중언론통해 자격없는힘뭉쳐 이미지창줄수준.태학.국자감(北京大),볼로냐.파리대資格.

http://blog.daum.net/macmaca/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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