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97] 성균관
[아! 대한민국-197] 성균관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1.06.26 07: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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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성균관은 오늘날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 인재양성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교육기관이다. ‘성균(成均)’은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아직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국가지도 이념이었던 유학을 가르치고 공부해 인재를 길러내는 그 중심적 역할을 했다. 공자의 사당이 성균관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성균관에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한 축이었던 생원시, 진사시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성균관에 입학할 기회와 자격이 주어졌다. 성균관의 정원은 세종 때 200명으로 정착됐다. 성균관 학생인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하면서 일정한 출석 점수를 얻으면 다음 단계의 과거시험인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밭과 노비 등을 제공했고, 교육 경비로 쓸 수 있는 곡식도 지급했는데, 이는 경제적 걱정 없이 기숙사에서 오직 학업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묵묵히 공부만 했던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집단으로 임금에 글을 올려 충언했고(儒疏), 그들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捲堂), 아예 성균관을 나가버리기도 했다(空館). 조선시대에 공관과 권당이 모두 아흔 여섯 차례나 벌어졌는데, 초기에는 국왕의 불교 숭상에 대한 것이 제일 큰 이슈였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들이 모두 성균관 출신이었고, 근대의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도 조선조 말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했다. 때로는 왕이 성균관을 방문해 나라의 앞길을 물어보기도 할 만큼 인재의 텃밭이었다. 1515년 조선조 11대 왕인 중종이 찾아와 이들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했을 때, 당시 성균관 유생 조광조는 이렇게 말했다.

“법도와 기강의 큰 줄기를 세우십시오. 군주 혼자 정치를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십시오.”

조선 후기에는 나라의 교육 재정이 줄어들고 과거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지 않으면서 성균관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반면 지방 곳곳에 생겨난 서원에서의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인재를 키우는 명문 교육기관으로 떠올랐다. 말하자면 성균관이라는 국립대와 서원이라는 명문 사립대가 경쟁하는 양상이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어 과거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에 나섰고, 그것이 1946년 9월 사립 성균관대학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오늘의 성균관대학교는 예전의 성균관과는 그 태생과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그 경내에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보물 141호)가 아직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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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6-26 22:49:38
Royal성균관대는 왕립대학임. 해방후의 일제잔재 중심 비신분제 국립대학과는 성격도 다르며, 패전국 노예.천민(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이며, 한국영토에 주권없는 패전국 일본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이 대중언론에서 발호하는 가운데, 주권.자격.학벌없는 토착왜구잔재들의 자격없는 침략.폭동에 시달리고 있음.

윤진한 2021-06-26 22:44:20
* 참고자료.
1.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2.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http://blog.daum.net/macmaca/1467

윤진한 2021-06-26 22:41:30
성균관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시키기로 법을 발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고문: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김창숙 선생)과 남북유림들이 모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형식임)키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여 국사로 가르치는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대학자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시작된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한것.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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