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㉚]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 스페인의 열정 ‘카르멘’
[홍미희의 음악여행 ㉚]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 스페인의 열정 ‘카르멘’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01.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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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혹의 여인, 치명적 팜므파탈의 여인 카르멘
세비야광장
세비야광장

스페인은 이국적이다. 동양인인 우리의 눈에는 서양적이고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동양적인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쨍쨍한 햇빛, 익어가는 포도와 올리브 나무, 게다가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의 알람브라 궁전을 품고 있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약 80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겪어 스페인 중에서도 더욱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안달루시아의 수도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르멘’ 등이 있다.

“스페인이 지금은 어렵게 사는 것 같아도 이 나라 사람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해요. 옛날 잘 살던 시대의 영광이 아직도 남아있으니까요.”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만 해도 언제였는지 모를 광개토대왕과 발해의 향수에 젖어 발해의 옛 지역과 지린성의 고분군을 찾아가 상념에 빠지곤 하는데 말이다. 지리상의 발견, 대항해시대, 콜롬버스, 마젤란 등 온 몸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고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다. 그곳에서 가져온 수많은 보물과 향신료로 부를 쌓고 문화가 융성했던 시절을 지나온 과거의 영화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스페인에 가서 신기했던 것 중의 하나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자들이 길에서 그냥 담배를 피우고 다녔다. 스페인은 쿠바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가지고 온 원료로 담배공장을 만들어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담배를 공급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클라크 게이블이 멋지게 피워 물던 시가는 이 시절 부유층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비야대학교(담배공장)
세비야대학교(담배공장)

오페라 카르멘의 시작 역시 담배공장이다. 우범지역인 공장 앞에는 군대 초소가 있다. 군인들은 순찰을 하고 공장이 쉬는 시간인지 여공들이 몰려나온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군인들의 농이 겹쳐진다. 이 군인들의 관심사는 카르멘이다. 예쁘고 매력적인 집시. 카르멘은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팜므파탈이 갖추어야 할 것은 매력뿐만이 아니다. ‘남자를 마침내 파멸시키는 여자’, 파멸과 죽음의 에너지는 팜므파탈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늘 모든 남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카르멘은 자신에게 초연한 돈호세가 궁금하다. 돈호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일반 사병과는 다르다. 아직은 젊어서 높은 신분은 아니지만 미래가 보장된 장교다. 엄마 말을 잘 듣고, 약혼자인 미카엘라도 있다. 미카엘라는 돈호세를 면회 왔지만 근무시간이라고 만나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성실하고 착한 여자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사랑의 화살은 그 방향이 늘 엇나가기만 한다. 카르멘은 돈호세 앞에서 하바네라를 부른다. 반음씩 내려가면서 마음의 흔들림을 표현하는 것 같은 노래를 -그러나 그 음정이 정확하지 않다면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될 것이다- 끝낸 카르멘은 돈호세에게 꽃 한 송이를 던진다.

공장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상관의 명령을 받은 돈호세는 공장으로 간다. 싸움의 주인공은 카르멘, 그녀는 싸움에서 이기고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손이 묶여 연행되지만 카르멘은 오히려 돈호세를 유혹하는 노래 세기디야를 부른다. 잠시 노래의 가사를 보자. 만자니야 꽃을 머리에 꽃고 파스티야 술을 같이 마시고 세기디야 춤을 같이 추고~ 운율까지 맞춰서 이렇게 속삭이는 그녀에게서는 세비야 거리의 오렌지꽃 향기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돈호세는 카르멘을 풀어주고 카르멘은 달아난다. 그리고 돈호세는 감옥으로 간다.

카르멘은 메조소프라노다. 많은 프리마돈나가 소프라노지만 이 곡의 경우 메조소프라노가 주인공이다. 사실 거칠고 매력적이고 춤도 잘 추는 야생의 그녀가 맑고 청아한 소프라노로 노래한다면 어색할 것이다. 오페라 카르멘은 왕족과 귀족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서민의 삶을 노래하고, 대사와 노래가 같이 섞인 오페라 코믹이어서 이해하기 쉽고, 당시로서는 과하게 치정과 폭력이 가득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인기의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이었다. 거기에 음악까지 훌륭하니 말할 것도 없지만 너무 급진적인 요소 때문인지 당시 초연에는 실패했고 작곡자 비제는 세 달 후에 세상을 뜬다.

왼쪽부터 마에스트란자 투우장(에스카미요가 투우경기한 곳), 세비야대학교(구 담배공장), 스페인광장(구글지도)
왼쪽부터 마에스트란자 투우장(에스카미요가 투우경기한 곳), 세비야대학교(구 담배공장), 스페인광장(구글지도)

막이 바뀌고 카르멘은 술집에서 놀고 있고 에스카미요는 유명한 투우사의 노래를 부른다. 에스카미요가 퇴장한 후 석방된 돈호세가 찾아온다. 그때 들려오는 군대의 나팔소리. “카르멘 점호 소리야. 나 가야 돼.” 돈호세를 위해 춤을 추고 있던 카르멘은 기가 막힌다. 따라따라? 나팔 부는 흉내를 내면서 비웃는 카르멘, 이에 돈호세는 품에서 꽃을 꺼내면서 자신의 진심을 노래한다. 예전에 카르멘이 던졌던 꽃이다. 이 곡이 꽃노래다. 이 때 상관인 수니가가 나타나 이런 어린 애랑 놀지 말고 나랑 지내자며 유혹하고 돈호세를 멸시하자 돈호세는 화가 나서 그와 싸우게 된다.

돈호세를 위해 카르멘이 추는 춤이 ‘플라멩고’다. 이 오페라의 바탕이 되는 소설을 쓴 메리메는 스페인을 여행한 후에 이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그래서 담배공장과 술집, 군대 위병소, 투우장 등의 장소가 현실에 있다. 사실 담배공장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세비야 대학 건물로 쓰이는 고색창연한 건물이다. 그리고 근처에는 김태희가 플라멩고 춤을 추던 스페인 광장이 있다. 광장 안의 타일로 만든 화려한 그림에는 과거의 찬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3막에서 갈 곳이 없어진 돈호세는 산속에서 집시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망을 보고 있다. 카르멘은 집시다. 일반적으로 집시는 갈 곳 없는 유랑민으로 한 동네에 정착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밀수와 도둑질을 일삼는 패거리로 묘사된다. 여기까지 찾아온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을 투우에 초청하고 이미 카르멘의 마음은 돈호세를 떠났다.

카르멘(마리아 칼라스)
카르멘(마리아 칼라스)

마지막 4막은 투우경기장이 배경이다. 이 경기장 역시 스페인광장의 근처에 있다. 이 곳에까지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노래하는 돈호세, 우린 이제 끝났다며 반지를 꺼내서 던지는 카르멘, 이들이 부르는 이중창은 애절하기만 하다. 결국 돈호세는 “같이 죽는 거야”라며 카르멘을 칼로 찌르고 나를 잡아가라며 무릎을 꿇는다. 멀리 투우경기장에서는 함성이 들려온다.

그러나 카르멘에게 애정을 구걸하고, 그렇게 사랑한 카르멘을 죽이고도 자신은 죽지 못하는 돈호세를 미워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카르멘과 에스카미요가 될 수 없는 우리는 돈호세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을 어떻게 유혹해야 될지 모르는 여자들은 카르멘을 주의 깊게 볼일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렇게 유혹하는 여자가 옆에 있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달콤한 맹세를 하는 그녀는 남자를 망치게 만드는 팜므파탈임에 틀림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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